만끽!2018. 5. 27. 21:59



다카하타 이사오 선생을 추모하며, 그의 유작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봤다.


- 원작이라 하기도 뭣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구전 민담을 애니메이션화 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큰 줄거리를 가져왔다는 것이고, 디테일한 이야기 전개는 감독의 역량이 채웠다.


- <가구야공주 이야기>에는 여성, 생태, 생명 존중, 본질적 행복 추구, 기성 체제에 대한 저항 등 다카하타 이사오 선생이 평생 작품 속에 녹여왔던 주제들이 모두 담겨 있다. 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친숙한 이 고전에 자신의 (다소 과격한) 작품 철학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지점이 놀라웠다.


- 작화의 완성도에 대한 고집스러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실사를 방불케 하는 디테일한 그림에 홀딱 반했던 기억이 있는데, 현대적 (미야자키 식)그림체를 버린 이후에는 그야말로 득도의 경지에 올랐다. <이웃집 야마다군>도 그랬지만, 여백을 한껏 강조해 단조로우면서도 그러나 있을 거 다 있는 이 애니메이션의 그림체에서도 그 특유의 장인 정신이 묻어난다. 특히 가구야 공주가 연회장을 박차고 산으로 뛰쳐 나가는 장면은 정말 기가 막힌다. 제작기간이며 막대한 제작비가 다 수긍이 간다.


- 산중의 노부부가 어린 딸을 얻게 돼 애지중지 키운다는 이야기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대표작이자 초기 연출작인 <빨간머리 앤>을 연상시켜 느낌이 찡했다. 딸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특히 이 이야기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행복은 세속적인 데에 있는게 아니라는 가르침, 삶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한 깊은 통찰은 양육자에게 짙은 울림을 준다. 괜히 거장이 아니다.


- 이 정도의 작품을 유작으로 남겼으니, 다카하타 선생은 분명 열반하였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