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18. 5. 30. 19:23


뒤늦게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마저 봐 치웠다.


- 사실 런칭할 때, 마침 당시 미투 운동과 맞물려, 이 드라마가 20대 젊은 여성과의 연애를 꿈꾸는 40대 개저씨들의 로망을 대리실현해준다는 세간의 비난 때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제목부터 해서, 그렇게 보일 여지가 다분했다. 그런데 앞서 이 드라마를 봐 오던 누나가 "그거 그런 얘기 아냐"라며 도리어 칭찬을 하기에, 비난과 칭찬 사이의 간극을 확인해 보고 싶어져 보기 시작했다.


- 드라마에서 20대 여성 이지안이 40대 남자부장 박동훈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좋아한다는 마음이 이성으로서 좋아한다는 건지, 사람으로서 좋아한다는 건지, 혹은 어른으로서 좋아한다는 건지가 불분명하다. 아니, 무게중심은 분명 뒤쪽에 더 실려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걸 '로맨스 드라마'로 두고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도는 무리수다.


-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는 '세대 간의 공감과 위로'다. 풍요의 시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대기업 정규직에 안착했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는 40대 중년과, 그 짧은 풍요조차 겪어 보지 못한 채 불행과 불안을 반복하고 있는 20대 청년 사이의 공감대를 넓히는 이야기로 읽는 편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 동훈과 형제들은 순탄히 대학을 졸업해 취업했지만, 이내 자영업 실패로 이혼위기에 몰리거나 영화감독의 꿈을 쫓다 만년 백수가 되거나, 혹은 착하고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도리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특기 하나 없어 노상 술이나 마시고 수다나 떠는, 더럽게 따분한 40대 남성들을 대변한다. 반면 가장 찬란해야 할 시기를 보내는 지안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만큼, 인생이 힘겹다. 불안하고 불행하고 불투명한 현실에, 그렇다고 앞날이 더 나아질 것 같다는 희망도 없는 어둠 속의 20대 청춘을 대표한다.


- 불안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의 절망 속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자신을 짓누르는 기득권에 불과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이용하고 착취하고 군림하는 자들이었다. 좋은 어른으로서의 기성세대는 없었다. 지안에게 동훈과 후계동의 중년들은, 비로소 처음 만난 '어른'이다. 훈계 대신 공감을 하고, 설교 대신 위로를 해 주는, 나아가 꼰대질 대신 기꺼이 연대를 할 수 있는 진짜 어른 말이다.


- 동훈이 자신을 이해해 주자, 지안은 동훈을 돕는다. 지안이 기를 쓰고 동훈을 돕는 것은, 동훈 개인에 대한 호감 때문만은 아니다. 나쁜 기성세대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좋은 어른'이 불행 속에 좌절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좋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세대간의 소통, 공감, 위로가 시대의 코드가 되어가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젊은세대는 자신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더욱 가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착한 어른들은 그걸 응원하고 뒷받침한다. 이제서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나의 아저씨>는 그런 바뀐 세상에 대한 메타포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