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23. 9. 15. 22:21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휘청이며 영화관을 나서는데, 앞서 가던 젊은 커플의 대화가 들려왔다. 여성 관객 왈, "나 깜빡 졸았잖아". 졸 정도였다고?? 그렇다. 이건 젊은이들은 쉬이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중년의 중년을 위한 중년에 의한 로맨스 영화다. 애들은 가라. 이 영화도 우리 꺼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이다. 표출하고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울 일이기는커녕, 아름다울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제도나 규범, 윤리, 이미 맺어진 누군가와의 약속과 신뢰, 다른 이들의 시선 등등의 조건이 따라붙으면 그렇지 않다. 무릇 중년에게 '새로운 사랑'이란 그래서 대체로 추하고 더러운 욕정으로 평가받곤 한다. 쉽게 말해 불륜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할 결심'같은 건 필요치 않다. 부지불식간에 불쑥 불쑥 올라오는 어떤 자연스러운 감정을 무던히 다스리고 내치고 억누르는 노력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걸 미처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말았을 때 필요한 게 아마도 '헤어질 결심' 같은 거겠지.
 
박해일은 원래도 믿고보는 배우이지만, 이 영화 이후로 그 믿음은 신봉에 가까워질 것 같다. 서래가 외국인인데다 대상화되어 있는 까닭에 신비롭고 아련한 매력을 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러하기에 영화는 전적으로 해준의 역동적인 퍼포먼스에 의존하게 된다. 박해일은 그간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누적해 온 순수함, 자상함, 품위, 똘끼, 유머러스함, 개구짖음, 그리고 애틋함을 이 영화에서 아주 있는 힘껏, 그리고 맘껏 쏟아낸다. 서래가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게 충분히 납득될 만큼이다.
 
해준의 아내 정안은 이과적으로 사고하며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답게 "완전히 안전"하다는 믿음 속에 원전에서 일 하는 연구자다. 남편에 대한 그녀의 믿음도 다분히 이과적이다. 논리와 이치를 앞세우지만, 사람의 감정이 어찌 단단하고 치밀한 논리나 이치대로 움직일 것인가. 그녀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믿는 원전도, 어지간한 파도야 감당하겠으나 그 파도가 지진해일과 같은 수준으로 덮치면 결코 안전할 수 없는 법이듯이.
 
서래를 탕웨이가 맡은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탕웨이는 <색, 계>에서 목적을 위해 전략적 접근을 하다 상대와 찐사랑에 빠지는 레지스탕스 역을 했었고, <만추>에서는 남편을 죽인 죄로 복역하다 가출소 중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애나 역을 잘 소화한 바 있다. 서래는 그 캐릭터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탕웨이를 빼고 서래 역을 맡을 배우를 쉽게 연상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가 의사 소통이 좀 어려운 외국인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사랑은 소통이 어려운 관계 맺음이다. 같이 쓰는 언어를 노골적으로 해도 발화의 의도가 온전히 전달되기 어려운 법인데, 언어가 다르고 서툰 관계에서의 소통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모호하고 막연하고 심지어는 생경한 문어체(혹은 AI 번역체)를 통해야 하는 소통 과정에서 두 사람은 역설적으로 행간의 의미에 더욱 집중하고 훨씬 섬세한 관계를 직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원래 영화의 메시지 전달이라는 게 텍스트 마냥 직설적으로 전하는 방식이 아니긴 하지만, 이 영화는 한층 더 그러하다. 관객과 밀당을 하기라도 하려는 듯 한껏 모호하고 은근하다. 관객이 밀어내려는 타이밍엔 기가 막히게 유머나, 수사물의 긴박감을 던져 넣어 주의를 환기시키고 몰입케 한다. 그리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관객 스스로 팽팽한 밀고 당기기의 게임을 포기하고 말게 만든다. 이거 아주, 선수다 선수.
 
폭풍같은 엔딩 뒤의 여운이 영화관을 나온 뒤 물에 잉크가 번지 듯 서서히 물드는 것 같더라니, 며칠만에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마음을 덮치고 있다. 자꾸 미결된 결말이 생각나고, 밤 늦게까지 이 영화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고,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 보는가 하면, 정훈희의 '안개'를 들으며 흥얼거린다. 처음엔 쉽게 이겨낼 수 있으리라 여겼었는데, 그만 나도 모르는 새 붕괴되고 말았다. 박찬욱 그가 원하던 대로, 마침내.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