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23. 9. 15. 22:28

영화 <에어>를 봤다. 나이키가 마이클조던을 전속모델로 영입해 에어조던 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리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란다.
 
마이클조던이 스스로 신격화되어 가는 과정을 학창시절에 리얼타임으로 지켜봐 온 세대이지만, 나에게는 그 시절의 추억같은 게 없다. 농구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놈들이 침을 튀겨가며 마이클조던을 추앙할 때에도, 나는 그저 심드렁했다. 그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신고 싶어했던 에어조던조차 사 본적도,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든 적이 없었다. 나이키라는 브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농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한 내게는, 그 때나 지금이나 최고의 스포츠브랜드는 아디다스다. 그러니 내가 이 영화에서 추억을 더듬으며 짜릿해할 만한 포인트는 별로 없다.
 
그 보다는 <굿윌헌팅>이후 다시 만난 맷데이먼+벤애플렉 조합이 내겐 더 반가웠다. <굿윌헌팅> 때 혼란과 도전의 20대 청춘을 그렸던 두 사람은, 이제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생존 투쟁하는 중늙은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굿윌헌팅>에서 번뜩이는 각본을 선보였던 두 친구는, 이제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를 제법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중견 영화인들이 되었다. 그 간극을 느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실화에서 에어조던 신화의 주인공은 마이클조던이겠지만, 이 영화에서 마이클조던은 재연배우로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서글프게도, 이제 갓 NBA 지명을 받은 신인 선수에게 자신의 운명을 거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주인공인 건데, 그가 운동하는 걸 더럽게 싫어한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나 같은 아자씨들에게도 공감을 사는 포인트가 되겠다. 에어조던에 대한 추억이 없이도, 중년 아저씨는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겠다.
 
<굿윌헌팅>에서 수학 천재를 연기했던 맷데이먼은, 이제 농구 천재를 한 눈에 알아보고 그에게 자신의 커리어를 올인하는 소니 바카로 역을 맡았다. (천재를 알아보는 안목도 실은 천재적인 거 아냐? ㅋ) 그는 마이클조던과의 계약을 통해 나이키가 3등에 머물러 있던 농구화 시장의 판을 뒤집어 보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려 하지만, 정작 마이클조던은 나이키를 싫어하는 아디다스빠이고, 사장도 무모하다며 지원에 소극적이다. 악조건의 환경이다 보니 결국 계약 성사 여부가 모 아니면 도의 하이리스크 상황으로 이어진다.
 
마이클조던과의 계약이 성사될지 안 될지 모르던 순간, 소니는 농구화 부문 직원들을 하나씩 둘러본다. 자기가 저지른 일 때문에 자칫하면 농구화 부문이 사라져 직원들이 생계 위협에 빠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낀다. 그 장면에서 괜히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기까지 했는데, 중년 남성의 호르몬 변화 때문이 아니라면, 최근 회사가 겪고 있는 위기의 상황과 그 장면이 중첩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중간 중간에는 극의 흐름에 따라 롭 스트라서가 만들었다는 나이키사의 10가지 원칙이 하나씩 나온다. 하나하나가 하필 나와 우리에게 던지는 말과 같아 주옥같이 가슴에 새겨진다. '늘 공세를 유지하라' '자급자족을 하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구는 마지막에 등장한 10번째 원칙이다. '옳은 일을 한다면 돈은 저절로 벌게 될 것이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해주었으면 했던 가장 듣고 싶은 종류의 말이 아니었나 싶다. 저 문구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별 다섯 개.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