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24. 12. 26. 14:29

앞서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소재로 삼은 다른 영화와의 차별화를 위해서도 그랬겠으나,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로서 OTT 창작물들과 차별점을 확보하기 위함인 듯 이 영화는 우선 '비주얼'에서 승부를 보려는 것이 느껴진다. 큰 화면에 그려지는 장대한 로케이션의 풍광이 극의 웅장미와 더불어 꽤 보는 맛을 준다.
 
그런데다 주인공을 맡은 게 현빈이다. 야 안중근 역에 현빈이라니 이건 좀 반칙이 아니냐 했는데, 이게 웬걸, 이동욱도 나오고 정우성도 나온다. 조우진과 박정민까지 준수한 미모를 자랑하는 걸 생각해 보면, 비주얼만으로 단숨에 대한민국 만세가 외쳐진다. 아무것도 안 하고 토끼굴 같은 데서 단체로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 대도 독립운동가들을 막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을 정도다.
 
\비주얼만으로 승부를 봤다고 하면 감독이 억울해 할지 모르겠다. 역사적 사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의 캐릭터들을 적절히 집어넣어 극의 긴장도를 유지하는 한편, 단순히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전체 독립운동가들이 보인 헌신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영리한 구성이다.
 
뮤지컬 영화였던 <영웅>이 신파와 다소 어설픈 유머코드로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대중화해 보려는 시도를 했다면, <하얼빈>은 극도로 그런 장치들을 절제한다. 마치 꽝꽝 얼어붙은 두만강처럼, 감정의 소용돌이를 저 아래 묻어둔 채 냉정을 두텁게 유지하며 절정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관객들에게도 좀처럼 감정의 동요를 꺼낼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거사가 치러지는 절정의 순간에는 부지불식간에 불쑥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고 만다. 뛰어난 연출과 연기력 덕분이기도 하겠으나, 그보다도 그건 아마 역사적 사실의 위대함에 기댄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부터 너무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중반까지는 연기들이 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영웅>이 뮤지컬 보는 느낌이었다면 <하얼빈>은 연극을 보는 느낌이 컸다. 그러나 중반 이후에는 극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배우들의 연기에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었다. 특히 고뇌하고 번뇌하는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현빈이 반짝였다. 결혼 뒤 연기 커리어의 변화를 모색해야 했을 그에게 이번 안중근 의사 역할은 뚜렷한 분기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신경의 한쪽 끝에 현실 상황을 염두에 두며 보게 되기도 했다. 선인들이 어떻게 싸우며 어떻게 되살리고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나. 너희가 믿는 신령이 누군지 몰라도, 의사와 열사들 영혼의 힘만으로도 천벌을 받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