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1.06 작별인사 2
  2. 2007.04.11 여덟 자 미학 8
  3. 2007.04.07 거침없이 하이총 4
후일담2009. 11. 6. 12:26


 장례식이 치러졌던 5월 29일에, 난 사회팀으로 파견됐다. 국민장 특집 뉴스에 사회팀 일손이 많이 필요했던데다, 반면 이런 특집 뉴스의 경우 경제팀에선 딱히 할 일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난 이례적으로 차출을 반겼다. 경제팀 농식품 부문을 맡은 까닭에, 노짱 서거 정국에서 기자로서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려있던 참이었다. 개인적으로야 그의 삶을 마음에 새기고 그의 죽음이 지닌 뜻을 기렸지만, 기자된 입장에서도 무언가 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국민장 특집 뉴스에서의 사회팀 파견은, 나로선 직업적으로 그를 추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내게 할당된 아이템은 '시민 분향소 7일의 정리'였다. 굳이 촬영하러 나갈 일도 없었다. 국민장 기간동안 덕수궁 앞에서 찍어온 무수한 테이프들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료들을 꼼꼼이 새겨 보고 녹취를 정리하고 잘 구성하고 편집하면 될 일이었다. 난 한 박스 되는 테이프들을 순서대로 챙겨서 편집실에 틀어박혀 부지런히 그림들을 스캐닝했다.

 테이프에는 말로만 듣던 시민들의 취재 거부 현장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카메라를 내려놓은채 마이크를 켜 놓아 현장을 담아낸 그 촬영본에선, 차분한 어조로 왜 취재거부를 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흥분하지 않았고 이성을 잃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취재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쯤 되면, 도저히 그들의 의사를 거스른채 취재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다. 현장의 기자가 느꼈을 곤혹스러움과 자괴감은, 그 장면을 뒤늦게 바라보는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시민 분향소의 7일을 함축적으로, 그러면서도 의미있게 담아내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의미있는 녹취를 추리고 영상을 구성했다. 첫 문장이었던 "낮에는 국화가, 밤에는 촛불이"는, 시민분향소에 있던 시민들이 썼던 그 문구였다. 그 외에 그 현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길은 없었다. 그리고 노짱의 삶과 죽음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긴 의미를 담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서 서로를 돕는 모습은 고인이 꿈꾸던 세상을 닮았습니다"라고 시민분향소를 평가했다. 말 그대로의 "깨어있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고인은 지하에서라도 바라보고 흐뭇해 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실 나 역시 덕수궁 앞 분향소를 다녀와 봐 느껴봤지만, 현장의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분노'였다.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은 그 다음이었다. 덕수궁 돌담길 주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격문에는 분노의 감정이 압도적으로 표출돼 있었다. 난 그걸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해서, 내가 애초에 썼던 원고는 "슬픔과 안타까움, 자책감, 그리움, 먹먹함,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분노... 시민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였다. 데스크는 "정부에 대한 분노"를 거론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최종 원고에서 그 부분이 빠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클로징 멘트 역시 원래 내가 썼던 원고는 "지난 7일 동안은 사방이 막힌 서울 광장보다 차라리 이곳이 시민들의 광장이었습니다" 였다. 이 부분 역시 데스크 과정에서 한결 다듬어진 언어로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방송이 '있는 그대로의 민심'을 실어 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송의 파급 효과 때문에 그것이 '정제'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그렇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한다. 데스크와 짧은 커뮤니케이션 뒤에 난 데스크의 판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난 노짱을 향해 기자로서의 작별 인사를 건넸다. 1주일 내내 마음을 짓누르던 먹먹함, 상실감, 미안함도 그제서야 조금 걷어낼 수 있었다. 리포트 BGM에 사용한 음악의 제목처럼, 그렇게 벚꽃이 지는 것과 함께, 그 봄날은 끝이 났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후일담2007. 4. 1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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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TV 제작팀 그러니까 편집 부서는 남이 만든 뉴스 꼭지들을 가져다 방송으로 내보내는 일을 하는 곳이다. 뉴스 진행도 있지만 그 밖에도 기사들을 모아 하나의 뉴스로 내 보내기 위한 각종 일감들이 있다. 새 팀에서 내가 받은 첫 번째 롤은 '어깨걸이', 이른바 '이펙트'다. 신문 용어로는 '미다시' 즉 기사의 제목을 뽑는 일이다. 앵커의 어깨에 얹어지는 그림에 붙을 제목을 만드는 것이다.

 신문도 단수에 따라 글자 수에 제약을 받겠지만, 방송 뉴스의 경우엔 어깨걸이가 늘 같은 사이즈이다 보니 글자 수가 아예 정해져 있다. 그러니깐, '8자를 넘기지 말라',고 한다. 어깨걸이 좌우 길이의 일정함 때문에 글자 수가 8자를 넘어가면 글자 모양이 위아래로 길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혹은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차 모양이 안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한 눈에 읽기 좋은 글자 수가 8자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이펙트 작업의 핵심은 8글자 안에 기사의 내용을 녹여내는 일이다. 기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메시지를 간파해 한 눈에 알 수 있게 전달하는 역할인 것이다.

 근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기사의 주제를 간파하는 일이야 평균적인 독해 능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걸 8글자 안에 우겨 넣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다. 8글자 안에 우겨 넣는 것 자체도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다. 딱딱하게 기계적으로 기사를 요약해 이펙트를 만들면 되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길을 찾는다거나 다른 어깨걸이들과 차별화 되고 재밌기까지 한 이펙트, 더 나아가 거기에 이펙트를 만드는 사람의 '숨은 의도'를 담아내려 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달효과, 차별화, 그리고 메시지 전달 등을 오로지 8글자 안에서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니 단순한 듯 보이지만, 이건 말하자면 사실, 고도의 창의력을 요구하는 두뇌 노동인 셈이다.

 쉽지 않은만큼 이게 또 썩 매력적이다. 뭐 솔직히 말해, 기계적으로 관성에 빠져 대충대충 적당히 할 수도 있다. 8자 안에서 노는 이펙트라는 게 실은 거기서 거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무게감을 주기 위해선 튀지 않는 건조한 이펙트가 적합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는 반짝 반짝거리는 이펙트를 만들어내는 재미가 적잖이 쏠쏠하다. 원고에 기대지 않는 독창적인 이펙트,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이펙트,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기사의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이펙트 말이다. 그런 게 부지불식간에 툭 튀어나오는 순간엔, 짧은 희열마저 느끼게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머리를 많이 굴릴수록 좋은 이펙트가 나온다. 난 딱딱하게 굳어있는 내 머리를 다시금 조금씩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후일담2007. 4. 7. 10:39



 

  시트콤이 허구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어딘가에 카메라를 박아놓은냥, 우리 삶은 한 편의 잘 짜여진 시트콤이 되곤 한다.

 아침 보고를 마치고 신문을 들척거리며 적당히 여유를 찾을 무렵, 캡에게서 전화가 왔다. 법조 파트에서 사이비 기 치료사에게 사기 혐의로 억대 배상 판결이 났다는 내용으로 리포트를 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그걸 받치는 꼭지를 맡아야 한다는 거였다. 기 치료가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허용 범위인지, 실태가 어떤지 등등에 대한 리포트를 준비하라신다.

 시간을 보니 얼추 아침 편집회의 직후 쯤이다. 대략 어떤 시츄에이션인지 상황이 그려졌다. 꼰대들, 법조 파트의 아이템 개요를 보고 한 마디씩들 했겠지.

"아니 그럼 대관절 기 치료는 어떤거래?"
"어디까지가 사기라는 거야?"
"시청자들이 이런 걸 궁금해 하지 않겠어?"

뭐 이런 말이 오간 끝에,

"그럼 뒤에 하나 더 받치지, 뭐",

... 이랬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팀장발 총은 대부분 그런 모양새로 발사되곤 한다. 이번 총알받이는 최근 몇일 좀 놀았던 내가 된 것일테고.

 일 할 때가 되었으니 주어진 총을 튕길 힘은 없다. 그렇지만 기 치료에 대해 백지상태인 사람에게 하루 안에 뚝딱 심층성 리포트를 만들어 내라는 고약한 요구가 어디 있나? 내 기가 다 막힐 지경이었다. 부담감에 짓눌려 난감해 하고 있던 차에 이 총의 빌미가 됐던 리포트의 주자인 법조 L선배가, 뒤에 받치는 리포트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화를 걸어 왔다.

"그 리포트는 뭐하자는 거에요?"
 아이구,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

"아침에 판결문 챙기면서 단신 용이겠거니 하고 올렸더니 법조 반장이 리포트 거리로 만들어 올렸더라고... 기 치료하고 별 상관 없는 사이비 교주라고 설명을 해도 듣지를 않아요."
 그럼 저는 어째요... ㅠ.ㅠ

"여하튼 내가 점심 때까지는 판결문을 반장 코앞에 들이대서라도 킬 시켜 볼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전 선배만 믿을 따름입니다... 아멘.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니 일단 오전 중에 속성으로라도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라인 안에 있는 수습 두 명까지 동원해 여기 저기 전화를 돌려대고 나니, 얼추 이야기의 얼개는 마련이 됐다. 기 치료라는 게 사실은 기 치유의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 기 치유는 라이센스도 없고 정통성도 딱이 없어 제각각이라는 것, 의료행위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전혀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의학계에서는 일종의 보완 의료 행위로서 기 치유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실제 미국에서는 에너지 힐링이라 해서 치료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

 문제는 '그림'이었는데, 기 치유를 하는 상황이 섭외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 치유소는 검증받지 못해 일정정도 사이비 성격을 띠고 있는지라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는 터여서, 일단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한 어느 기 치유 수련원으로 향했다.

 그 사람들이 홍보 효과를 노리고 부러 설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마침 기 치유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인터뷰를 하고, 그림을 '만들어' 댔다. 기 치유하는 장면도 찍고, 명상을 하는 상황도 부탁해서 마구 마구 '만들어' 댔다.

 열심히 그림을 '만들어' 대고 있는데 법조 L선배가 다시 전화를 해왔다. 오호, 희소식을 전해 주시려나? 한껏 부푼 마음으로 다소곳이 전화를 받았다.

"아 미안해서 어쩌죠? 킬 시켜 보려고 했는데 죽어도 만들래."
 OTL....

 "반장의 마지막 얘기가, 네 얘기는 충분히 수긍이 된다만 우리 리포트 때문에 사건 파트가 총까지 맞았는데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거에요.."
 아놔... 고양이의 쥐 생각... 주객의 전도... ㅡ,.ㅡ^

 이쯤 되면 그림도 '만들어' 대고 있겠다, 결국 하는 수밖에 없다. 급하게 인터뷰 해 줄 의사를 섭외하곤 또 냅다 뛰어 댕겼다. 그나마 다행으로 이 의사 양반이 비교적 영양가 있는 얘길 많이 해 주었다. 이로써 리포트는 겨우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됐고. 대략 1분 20초 정도의 제작은 가능한 분량. 휴, 빵구내는 일은 어쨌든 막을 수 있겠다는 작은 안도감이 들 무렵, 캡이 전화를 걸어 오셨다.

 "어떻게, 잘 되겠나? 편집팀에서 아주 큰 관심을 보이고 있던데... 1분 50초 잡혔다니까 잘 만들어 보소."
 반나절 시간 주고 심층성 총을 쏘더니 "큰 관심"을 보이다 못해 1분 50초나 할애해 주셨단다. 된장, 하나 마나한 소리일텐데 그 긴 시간동안 도대체 무슨 소릴 지껄여야 된담?

 1분 50초씩이나 잡혔다면 제작 시간이 넉넉한 것만도 아니어서 서둘러 회사로 돌아왔다. 들어와서 9시 뉴스 가편집안을 봤는데, 어절씨구? 이날 기막힘의 하이라이트가 거기 준비돼 있었다. 내가 맞은 총의 원인을 제공했던 L선배의 법조 리포트가 그만 단신 처리되는 것으로 결정난 것이었다. 그야말로 배 보다 큰 배꼽. 아놔... 난 대체 뭐가 된거니...?

 결국 난 시의성 없는 리포트를 또다시 감놔라 배놔라 하며 읊어대는 모양새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시간에 헐떡대며, 또 테이프를 들고 뛴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시트콤이 허구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트콤이 현실에서 펼쳐질 때, 지켜보는 이들에게야 '코메디'인 어처구니 없는 시츄에이션들이 정작 거기에 닥친 캐릭터에게는 눈물 없이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이라는 점 또한 분명해진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