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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4.08 Out of the pitch 4
토막2009. 2. 27. 21:34

기자를 꿈 꾸기 시작했을 때, 난 대책 없이도 자신이 넘쳐 있었다.
참 치기 어리기도 하지. 어떤 분야에서라도 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심지어 스포츠부도
난 잘 할 수 있다고,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잡지 기자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닥 매력 없어 보였던 법조 기자도 시키면 할 거 같았다.
딱 한 분야만 빼고 말이다.

경제부 기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상해 보지 않은 내 모습이었다.
경제의 ㄱ도 모르는 놈이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개념들을 읊어대야 한다는 건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난 '숫자 공포증' 비슷한 것마저 있다. 숫자가 싫고, 경제가 싫다. 

그러니 경제팀 발령이 다 웬 날벼락이냐.
전혀 그려본 적 없는 1년동안의 내 모습에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그저 절대자가 그려놓은 어떤 거대한 계획의 한 부분인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냥 흐르는 대로 흘러 간다고 생각하며 담대해져야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후일담2007. 4. 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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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경찰서를 떠나며 기자실에 남겨놓은 인삿말


 사회팀에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지쳤기 때문이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정신적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에 이른 듯 했다. 1년차 때 악을 쓰듯 1년동안 굴러댔고, 지역에서도 여유롭게나마 결국은 같은 일을 했던데다, 다시 돌아와 13개월을 역시 꼭두새벽부터 경찰서에 드나드는 일로 묶여 있었으니 별스러울 일도 아니다. 단독이고 나발이고, 나에겐 '여유'가 필요하다 느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생각해보면, 그동안 난 겁이 났다. 세상을 너무 몰랐고, 내 설익은 관념을 훨씬 뛰어 넘어 돌아가고 굴러가는 사회가 도무지 감당이 되질 않았다. 나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할 얘기들을 공중파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떠들어야 했던 상황이며, 누군가를 지탄 여론의 대상으로 만들어 조지고 까발려야 하는 상황이며, 사람을 이용하고 사람에 이용당하는 상황이며, 온갖 종류의 이권 다툼에 휘둘려야 하는 상황이 두렵고 괴로웠다. 쳇바퀴 돌듯 그런 상황에 얽혀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만 싶었다.

 해보고 싶었던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순수한 욕심에 취재하고 접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총체적인 진실을 그려내는 데 내 능력의 한계를 보고 말았고 좌절했다. 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도망을 계획했다.

 겁을 먹은채 꽁꽁 숨어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난 한숨을 돌리겠답시고 서둘러 필드를 빠져 나왔다. 앞으로 꼬박 1년동안은 그 잘나빠진 볼펜과 마이크를 내려 놓게 됐다. 악다구니 넘치는 취재 현장으로부터 한 발 뗀 곳에서 다시금 내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을 돌아볼 기회를 구했다.

  딱 1년이다. 이 1년은 그래서 너무나도 소중하다. 이것이 다시 비겁하게 숨어 들어가게 되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1년 뒤엔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난 이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그때까지만 잠시만, 아주 잠시만 필드에서 벗어난다. 필드 바깥에서, 다시 돌아갈 때 달라질 내 모습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