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쳐'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7.07 그의 마이크 6
  2. 2010.03.08 Mr. Tiredness 4
  3. 2010.01.05 "해직자의 겨울" 2
카툰토피아2010. 7. 7. 23:01


 나보다 한 해 뒤에 공장에 들어왔지만, 그는 여러모로 배울만한 친구다.
 조직 문화에 절어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이 공장 분위기와 다르게
 그는 제 할 말을 하는 데 거리낌이란 게 없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선 행동으로 나서는 데 역시 주저함이 없다.  

 주장이 선명하고 읽는 맛이 있는 그의 홈페이지는 내가 (그나마) 자주 찾는 개인 홈페이지 가운데 하나다.
 기자로서도 그는 명민하고 일 잘하는 친구라는 평을 받아 왔다.

 그런 그였지만, 마이크를 놓은 지 2년째다.  
 내근 부서로 편집부에서 1년을 보낸 뒤, 다시 취재부서로 나와야 했을 때
 본인의 강력한 희망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재차 편집부에 주저앉혀졌다.
 그의 까칠한 성정을 불편하게 생각한 취재부서의 꼰대들이 아무도 안 받았다는 게 그 이유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체제 하에선, 그가 취재 일선에 나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불투명한 전망 때문인지, 공장의 돌아가는 꼬라지에 대한 환멸 때문인지,
 그는 부쩍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염세적인 반응을 보인다.
 나는 그의 재능이 한창 꽃피워야 할 중요한 시기를 내근 부서에서 보내고 마는 것이
 그에게도 손실이고 회사로서도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시절이 언젠가는(!) 오기야 하겠지만, 그에게 너무 늦어버릴까 걱정이다.

 마이크를 빼앗기고, 대신 양심의 촛불을 든 그의 모습을,
 그냥 뜬금없이 그려보았다.
 그에게 작은 웃음이라도 주고 싶었던 의도였겠으나,
 너무 "새카만 토인"처럼 나오는 통에 당사자로부터는 면박만 들었다. ^^;;
 참 주책맞게도, 당사자야 어떻게 여기던, 나로선 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이 나온 편인데,
 사진 없이 인상에만 기대어 그려댄 통에 구체적인 생김보다는 
 이미지가 내 의도에 부합됐기 때문이다.

 그림의 주인공이 이 캐리커처의 품질에 대해 정색을 하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면,
 뭐, 그냥 '내 머릿속의 재석'이라고 해 두자. 

(포토샵 CS2에서 와콤 타블렛 인튜어스3로 선 작업 및 채색.)

calvin.
Posted by the12th
카툰토피아2010. 3. 8. 16:46

그의 별명은 '김피곤'이다.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는 뜻이다.
본인도 그 별명을 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가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내 경제팀 생활은 그로부터 시작됐다.
타고난 숫자공포심 때문에
경제팀의 '경'자와도 얽히기 꺼려했었지만,
시사보도팀을 나와 취재부서로 나가려 했을 때
'인력시장'에서 나를 찍어 데려가겠다고 해준 팀장은 그 뿐이었다.

사회팀 데스크 시절 봐 왔던 어떤 기대치가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그가 애초에 품었던 기대에 아마도 난 많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스스로도 만족스러워하지 못했던 1년이었으니까.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 때문에, 어떤 종류의 미련이 남아
6개월정도 더 이 팀에서 일해 보고 싶었고
거의 그렇게 될 것으로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김팀장은 얼마 전에 먼저 교체되었다.
후배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새 팀장과
짧게나마 새로이 경제팀 생활을 더 해볼 요량이었건만,
내 경제팀은 김 팀장과 함께 시작해
그와 함께 끝나게 됐다.

팀장 시절 "나는 안 그려 주냐"고
은근한 압박을 섞어 요청했던 그림을
이제사 그려 드린다.
사실 그간 그리기 싫어서 안 그렸던 건 아니고,
내 근무 평가의 칼자루를 쥔 팀장에게
마치 상납하듯 그림을 그려주고 싶지 않아 미뤄왔던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쓸쓸하게 자리를 떠났던 그가
이 그림 선물로나마,
팀장 시절을 불행하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경제팀의 지난 1년을
그저 피곤하게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카툰토피아2010. 1. 5. 22:46


 김현석 선배는 내가 미디어포커스에 있을 때
 그 프로그램의 앵커이자, 기자협회장이었다.
 
 MB가 권좌에 오르고
 공영방송 사장을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을 때
 그는 앵커직을 내던지며 "싸우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해 8월 8일, 
 권력이 공권력까지 동원해 공영방송 사장을 해임하던 날
 그는 정말 사활을 걸고 맨 앞에 섰다. 
 그를 따르던 후배들은 그 뒤에 섰다.
 그런 그가 기어이 공영방송을 접수한 저들에게는 
 눈엣가시였나 보다.

 이병순 체제는 김 선배에게 '파면'을 내렸다.
 그건 그에 대한 징계라기 보다는 저항하는 기자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까불지 말라, 잠자코 있어라, 비겁해지거라."
 제작거부까지 한 끝에 결국 김 선배의 파면은 막았지만
 그건 사실 우리의 승리가 아니었다.

 '정직 3개월'선에서 우리가 타협하면서
 저들은 우리가 가진 결기의 강도를 확인했을 뿐이고
 결국 저들이 노리는대로 '비겁함'은 우리 안에 확산돼갔다. 
 
 난 그 때 우리가 끝내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김 선배를 이용한 '도발'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본다.
 그 때 우리가 충분히 강함을 보여주지 못한 까닭에
 저들이 다시 김 선배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려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후 전개될 싸움은
 새로운 싸움이 아니라,
 그 때 마저 하지 못한 싸움이 되어야 한다.
 어설프게 타협하거나 물러섰다간
 아예 기자의 영혼을 저당잡힐 수도 있음을 가정하고 결연하게 싸워야 할 일이다.

 김 선배가 마지막으로 하려고 했던 프로그램의 제목은 "해직자의 겨울"이다.
 귀양이나 다름없는 지역 발령을 받은 그의 겨울이
 모쪼록 따뜻했으면 좋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