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1.05.04 네가 에이스다.
  2. 2011.04.21 겁없는 신인 2
  3. 2011.04.14 MBC 청룡 9
환호2011. 5. 4. 14:24


박현준의 등장은 세 가지 면에서 환영할 만 하다.

첫 째는, 항상 불안했던 마운드가 그로 인해 탄탄해졌다는 점.
지난 시즌에 봉중근과 김광삼을 빼면 '믿음'을 주는 투수가 없었는데,
시즌 초 봉중근이 없는 와중에도 그의 존재로 인해
마운드는 물론 팀의 근간이 튼튼해졌다.
이정도 구위라면 봉중근과 함께 좌우완 원투펀치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

두번 째는, 지긋지긋한 마이너스 트레이드에서 벗어났다는 점.
그동안 트레이드로 보낸 선수들은 상대팀에서 펄펄 날았던 반면 들여온 선수들은 죽을 쑤곤 해
언제나 손해보는 장사에, 전력 누수도 심화돼 왔었는데,
지난해 SK에서 데려온 선수들은 그런 트레이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줬다.
그중에서도 박현준은 그 트레이드를 확실한 플러스로 만들어 준 보석같은 존재다.

세번 째는, 미래가 밝다는 점.
아직 젊고 또 힘이 넘치는 신세대 에이스의 등장은
단순히 올 시즌 뿐 아니라 앞으로 LG의 행보를 밝게 해주고 있다.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한 그는,
LG의 오랜 '얼굴 야구' 계보를 이을만한
에이스로서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박감독의 경기 운영이 여전히 신뢰를 주지 못하고
팀의 타격 밸런스가 여전히 기울어 있고,
마무리가 여전히 불안해 지금의 성적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는 혼란의 와중에도,

박현준은 올 시즌 최고의 발견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11. 4. 21. 10:11


시즌 개막전은 절망적이었다.
지난 8년동안의 악몽이 올 시즌에도 되풀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끝내 터지지 않는 적시타, 될 듯 될 듯 안 되고 마는 희망 고문,
도망가기에 급급한 투수들과 뒤가 불안한 수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느새 팀에 깊이 스미고 만 패배주의...

그 때 녀석이 등장했다.
이미 승패가 기운 상황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 주제에
등에 감히 '에이스의 번호' 1번을 달고서.

아무 긴장감 없는 시건방진 표정으로
그는 두산의 중심 타선을 향해
정 가운데에 스트라이크를 꽂아 주었다.
승패와 상관 없이 모처럼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투구였다.

임찬규는 지리멸렬했던 8년동안
열패감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LG에게
반드시 꼭 있어야 했던
겁없는 신인이다. 

올 시즌은 정말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11. 4. 14. 09:30


 8년째 하위권을 맴돌며 '가을'을 잊은 LG트윈스를 응원하는 일은 고역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야구 얘기를 할 때마다 위로를 하거나 동정을 하거나 또는 그것을 가장해 은근히 염장을 지른다. 그리고 하다하다 막바지에 가서는 왜 그 팀을 응원하냐고 반문하거나, 심지어 더비 라이벌 팀이기까지 한 자기네 팀으로 옮기라고까지 말한다. 이쯤 되면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고 밟히기도 제대로 밟히는 거다. 갖은 모욕과 이죽임, 비아냥을 이겨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굴할 순 없다. 난 올해 - 가정은 물론 상상조차 해선 안 될 일이지만 - 또다시 가을 야구를 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이 팀을 저버릴 생각이 없다. 아예 야구에서 등을 돌리면 모를까.

 왜 LG트윈스냐는 질문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이 팀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MBC청룡.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했을 때, 나는 학교에도 채 들어가지 않은 어린이였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문방구에서 쏟아져 나왔던 프로야구 딱지를 갖고 놀면서 나도 한 팀을 응원하기로 했는데, 그게 MBC청룡이었다. 고민을 할 이유따윈 없었다. 그 때 내게 MBC청룡 이외의 팀에 눈을 줄 이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 팀은 유일하게 서울을 연고지로 한 팀이었고, 내 띠와 같은 '용'이 팀의 마스코트였기 때문이었다(76년 용띠인 내 또래 가운데는 그런 이유로 연고와 관계없이 MBC청룡의 팬이 된 친구들이 꽤 된다). 

 MBC청룡은 프로야구 출범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팀이었다. 3월 27일 개막전 9회말 이종도의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은 두고두고 거론되는 프로야구 30년사의 명장면이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이 팀은 그 개막전 이후엔 그다지 인상적인 팀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원년 우승은 OB베어스가 차지했고, MBC청룡은 이듬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긴 했지만 해태타이거즈 첫 번째 우승의 들러리에 머무르며 '야구 명가'의 시작을 도왔을 뿐이었다. 지지부진한 경기력과 고만고만한 순위는 응원하는 팬들마저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어린이 회원까지 가입하며 열심히 이 팀을 사랑했다. 왜? 우리 고향 팀이고 나의 팀이니까. 팀 성적이 안 좋다고 팀을 옮기는 건 팬이 할 짓이 아니다. 그 때 난 심지어, 5공화국의 나팔수였던 모기업 MBC도 사랑했다. 그런 줄 모르고 사랑한 것이긴 하지만.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던 MBC청룡은 그만 1990년 LG트윈스로 창씨개명을 이룬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난 자연스럽게 LG트윈스의 팬이 됐다. MBC청룡의 선수단을 그대로 고용승계했기 때문에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무렵 OB베어스가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 이전을 했는데, '연고 주의'를 강조하는 축구계 표현으로는 "패륜"과 같은 일이었고, 따라서 난 '상경 이주 팀'이 아닌 '토박이 서울팀'을 계속 응원하기로 했다.

 다행히 LG트윈스는 MBC청룡과 달리 야구도 썩 잘하는 팀이었다. 창단 첫해 MBC청룡이 거두지 못했던 우승을 단박에 거머쥐었고, 그 뒤에도 상위권을 유지했으며 1994년 우승으로 V2까지 달성했다. '자율야구'니 '신바람 야구'니 하는 새로운 개념을 한국 프로야구에 심으며 새 영역을 개척해 나가기도 했다. 늘 변두리에 머물러 있던 MBC청룡 팬들에게, 주목받는 야구팬의 기분이란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90년대 초반은 정말 찬란하고 그래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최근 8년동안의 성적은 실망감을 넘어서 절망감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MBC청룡도 그랬다. 아니, MBC청룡은 끝내 해주지 못했던 우승의 화려한 추억을 만들어 안겨줬던 팀이 LG트윈스다. 이렇다할 성적도 없었던 MBC청룡을 한결같이 응원하고 사랑했던 팬들에게 LG트윈스의 밑바닥 성적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바꿔 말하면, 성적 따위가 우리 팀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게 할 수는 없다. 그게 스포츠 팬의 기본 자세요, 의리이자 도리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