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2007. 12. 15. 04:4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날 저녁엔 예약된 일정이 있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엇>을 보는 것이었다. 원래 애초 영국 여행 계획으로는 없던 것이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비싼 물가에 뮤지컬 공연 관람은 왠지 사치인 것처럼 느껴졌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간 김에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영국 웨스트 엔드 뮤지컬을 하나 보고 오는 게 좋겠다는 주위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빌리 엘리엇>은 원작 영화를 너무나도 좋게 보았던 참. 아울러, 노래에 발레에 탭댄스에 연기까지 되는 10대 소년 주인공을 찾기 힘든 까닭으로 라이센스를 사들여 우리나라에서 공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도 이 뮤지컬을 볼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라는 울림이 돼 마음을 흔들었다. 예매 사이트를 알아내 17.5파운드짜리 가장 싼 티켓을 예매했고, 그 공연을 보는 날이 온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Victoria Station 바로 앞에 있었던 Victoria Palace Theatre. <빌리 엘리엇>을 장기 상연 중인 극장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극장 안의 티켓 박스. 예매한 사람들이 이름을 확인하고 티켓을 수령한다. 난 완기 형 집으로 배송을 받아둬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물론, 당일 현매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좋은 자리는 이미 예매자로 채워진 상황. 남은 자리를 보더니 그냥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입구와 티켓 박스 앞쪽으로 사람들이 스믈스믈 모여들자 별도의 통로로 사람들을 안내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들어간 관람객 대기장소는 기념품을 파는 매점. 공연 전 맥주 한 잔을 할 수도 있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 뮤지컬 공연의 특성상 <빌리 엘리엇> 역시 여러 배우들이 돌아가며 공연을 맡아하고 있었는데, 이 날 공연의 주인공은 Sam Angell이라는 아이였다. 이 뮤지컬의 초연 무렵 빌리 역을 맡은 배우 가운데 한 명이 Liam Mower였는데, 이쁘장한 외모에 뛰어난 춤 솜씨까지 가미해 <빌리 엘리엇>의 대박에 일조했고 그 스스로도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유명한 Liam은 이제 뮤지컬 무대에 서지 않는다. 유명세 탓도 있지만 자라 버리는 통에(!) 더 이상 소년 빌리 역을 맡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텔레비전 드라마로 영역을 넓혀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윽고 입장을 알리는 소리. 내 자리는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야 나오는 Grand Circle. 3층 격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자리에서 바라본 무대. 내 자리는 맨 윗 층 맨 끝 줄 맨 왼 쪽에서 7번째 자리였다. 전통적인 영국식 극장 모양인가 본데, 3층쯤 되면 거리도 거리지만, 경사가 가팔라 사실상 배우 얼굴을 보기란 불가능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금이라도 가운데로 가 볼까 싶어, 혹시라도 사람이 다 안 차면 좋은 자리 찾아 옮길 태세를 하고 있었는데, 언감생심이었다. 자리는, 만석이었다. 여지없이 꽉꽉 들어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보다 긴 공연. 2시간이나 할까 했는데 2시간 30분을 넘게 진행했다. 2막으로 나뉘어져 중간에 20분 가량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싼 값 때문에 주로 나 같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맨 끝줄 내 옆에 앉았던 동유럽 쪽에서 온 듯한 가족들은, 그만 공연이 끝난 줄 알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나 나가버렸다. "안 끝났다고 가르쳐 줄걸" 하는 생각과 동시에 돌아오지 않으면 좋은 자리로 옮겨 앉을 요량이었는데, 아마도 나가는 문에서 제지를 당한 뒤 설명을 들은 모양인지 다시 돌아와 앉는 통에 더 좋은 자리를 쟁취하진 못했다. 사진은 쉬는 시간에 가운데 와서 찍은 것.

 공연 중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것은 금지돼 있다. 이 동영상은 다른 사람이 찍은 것이고, 배우 역시 내가 본 공연의 Sam이 아니라, Liam과 같은 시기 명성을 양분하다시피 했던 Leon Cooke의 공연 장면이다. 원작 영화에서 난 이 angry dance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데, 뮤지컬에선 왕립 발레단 마지막 면접 장면이 더 많은 관객 호응을 이끌어내는 모양이다. 뮤지컬에서의 angry dance는 영화에서의 단단한 기합이 빠져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원작에서의 감흥 때문인지 난 이 장면이 좋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 커튼 콜 할 때 용기내서 찍은 유일한 공연 사진. 뮤지컬은 훌륭했다. 기립박수가 절로 나왔다. 영화 <빌리 엘리엇>을 거의 훼손 없이 그대로 뮤지컬 무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비록 영국 북부 사투리가 진하게 배인 영어로 이뤄져 있지만,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알고 있는 외국인에게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소소하게 툭툭 던지는 농담을 못 알아들어 웃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영화에서보다는 마이클과 할머니의 비중을 조금 더 키워 훨씬 입체적이고 풍요로운 느낌을 전했다. 비주얼을 강조하는 무대가 환상적이었고, Soilidarity나 Electricity와 같은 엘튼 존의 노래들도 훌륭했다. 나무랄 데 없는 공연, 그 자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뮤지컬 자체를 별로 본 바 없고, 영국 뮤지컬은 처음이었지만, 저 문구는 어쨌든 공감 백배. 우리나라 무대에 오를 날이 찾아올 수 있을까? 본토 공연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반드시 찾아 볼 것 같다. 이 날의 감흥을 재연하는 것만으로, 아니 그저 자극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을 것 같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7. 12. 15. 04:1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맨체스터에서 묵었던 곳은 Days Hotel이라는 곳이다. 한국에서 숙소를 정할 때 최우선 고려 사항은, 싼 숙박비도 숙박비였지만, 찾아가기 쉽도록 기차 역과 최대한 가까운 곳이었다. 그렇지만 맨체스터에 도착하던 날 밤 9시 반이 넘어 이 호텔을 찾아야 했을 때, 난 적잖이 애를 먹어야만 했다. 내 방향감각도 무척 둔했지만, 낯선 도시에서 후미진 골목을 뒤져야 나오는 호텔을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골목마다 붉은 조명의 술집과 술 취한 사람들은 어찌나 많던지,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을 해야 했었다. 설상가상으로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허리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 왔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 호텔을 찾아냈을 땐 정말이지 호텔 지배인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난 전날 밤 나를 쫄게 만들었던 그 분위기의 원인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게 금요일 밤이었기 때문이었고, 이 곳이 다름 아닌 대학 캠퍼스였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맨체스터 종합대학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동네였고, Days Hotel 역시 맨체스터 컨퍼런스 센터의 이름을 갖고 주로 학생과 교직원들이 세미나 등을 할 때 사용하는 숙소였던 셈이다. 숙박비가 비교적 저렴했던 까닭 역시 거기서 찾아낼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맨체스터에서 이틀 밤을 잤던 428호실. 앞서 설명한대로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위해 관리되는 방이어서 그런지 비교적 시설 또한 좋았다. 하릴 없는 밤에는 모처럼 텔레비전도 진득하니 볼 수 있었는데 리버풀로 떠나기 전이었던 토요일 밤에 했던 영화는 공교롭게도 비틀즈가 출연하는 <Help!>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텔 내부 풍경. 컴퓨터를 쓸 수 있는 방도 있어서 간단한 이메일 확인과 안부 인사를 전하는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만 가능했다. 너무 느려 터져서 더 이상 하다간 제 명에 못 살겠다 싶었다. 열쇠 키 사용 방법을 잘 몰라 헤매는 내게 친절하게도 방 까지 찾아와 줘 사용법을 설명해주었던 이 호텔 직원은 뚱뚱한 맨체스터 사람이었는데, 내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러 맨체스터를 찾았다 말을 하자 슬쩍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지길 바란다는 염장질을 놓기까지 했다. 맨체스터시티 팬이었던 것이다. 떠나는 날 아침, 그를 보고 득의양양하게 부러 "우리가 이겼다!"고 말을 던지고 빠져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시 리버풀의 기차 역에서 가장 가깝고 싼 곳으로 골라 잡은 Lord Nelson Hotel. 맨체스터의 Days Hotel과 달리 역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친절한 호텔이었다. 체크인 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간에 호텔에 도착했는데, 체크인 해도 되냐 물었더니 방 번호를 한 번 보고는 가능하다고 한다. 불 나면 도저히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복잡하게 생겨먹은 복도를 지나 방을 찾아 들어갔다. 영어로 된 그 복잡한 길 설명을 어찌 알아들었는지 내 자신이 기특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맨체스터에서 묵었던 호텔보다 싸기도 좀 쌌지만, 시설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났다. 텔레비전을 침대 옆에 놓은 센스라니... 게다가 벽에 붙지 않은데다 스프링이 마구 튀는 어정쩡한 침대 역시 가뜩이나 휑한 홀로 여행객의 마음을 더욱 휑하게 만들었다. 이 방의 압권은 '난방'이었는데, 난방기가 한 밤중에 느닷없이 꺼져 새벽 냉기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덕분에 그만 덜컥 영국 여행 기념으로다가 '리버풀 감기'를 얻어 달고 돌아와야 했다. 그 독한 리버풀 감기는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아주 오랫동안 영국 여행을 온 몸으로 추억하게 만들어 주었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7. 12. 15. 03:37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앨버트 독을 나와 리버풀을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유명한 리버풀 대성당을 볼 수 있었지만, 너무 이른 아침 찾아가 문이 꽁꽁 닫혔던 Mathew Street를 다시 돌아보기 위해선 리버풀 대성당을 포기해야 했다. 해서, 가는 길에 그저 이곳 저곳 다른 길에 들어가 보는 것으로 리버풀 '시내 관광'을 대신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버풀의 미술관은 런던 다음이라고 하는데, 그걸 글쎄 이 때는 몰랐다. 알았으면 미술관에 시간을 할애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일정은 워낙 빠듯했고, 내게 리버풀은 '비틀즈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침 일찍 나선 리버풀 거리. 지도 한 장 들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앨버트 독에 가는 길에 만났던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동상 머리 위에 앉은 것은 익숙히 보아오던 비둘기가 아니라 갈매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버풀의 횡단보도. 모두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특이하게도 신호등이 바라보는 맞은 편에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쁘장한 빨간 우체통. 그리운 사람에게 엽서도 한 장 띄우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큰 건물들이 일단 먹어주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앨버트 독에서 빠져나오던 오후 12시 반 무렵. 분주한 도시에서 발견한 리버풀 시청 청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 이런 골목 골목이 너무 반갑다. 더 싸돌아 다녀보고도 싶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버풀의 곳곳. 그리고 다시 도시 한 가운데에서 만난 생뚱맞은 놀이 기구. 런던과 맨체스터에는 대관람차가 있더니, 여기엔 아무런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느닷없이 회전 목마가 있었다. 타는 사람 하나 없이 헛 바퀴 돌고 있었던 것은, 이 놀이기구의 느닷없는 자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이때가 하필이면 월요일이고 대낮이었기 때문이었을게다. 분명, 그럴게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