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3.09.23 어느 LG트윈스 팬 부자의 사진
  2. 2013.09.23 가을야구의 결정적 순간
  3. 2011.05.29 야신의 저주
환호2013. 9. 23. 14:57

 

 

'11년만의 가을야구 티켓 획득'이라는 대경사를 마주하고 나니
문득 이 사진이 생각이 났다.
어느 LG트윈스 팬 부자의 사진...

경기를 또(!!!) 지고 풀이 죽어있던 아들과 
그 아들의 손을 잡고 미안함과 처연함으로 
발길을 옮기던 아빠의 애처로운 뒷모습.

언젠가 LG가 또(!) 가을 야구에 실패하고 냈던
신문 광고에서 이 사진을 일러스트로 그려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었다.

이 사진에 달린 
"아빠 왜 아빠는 LG팬이셔야 했나요"
"아들아, 아빠가 LG팬이라서 미안하구나"와 같은 댓글은
괜히 코 끝을 시큰거리게도 했더랬다. 쩝. 
그렇게 궁상맞던 시절도 있었어. ㅋ

지금 저 아이는 몇 살 쯤 됐을까?
이제는, LG 팬이라서, 아빠랑 줄무늬 유니폼을 입을 수 있어서,
이상훈 이름 마킹된 유니폼 입고 가을야구 볼 수 있어서,
기뻐하고, 또 행복해 하고 있을까...?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13. 9. 23. 14:43

 

 

 누군들 예상하고 있었겠냐.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보다는 기대를 안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아니다. 고백하자면 실은 일찌감치 체념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10년동안 양치기소년한테 속아봤다면, 지레 포기하는 팬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제대로 속았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뒷통수를 날리고 선뜻 가을야구 티켓을 들고 오다니. 그 기쁨을 아로새기고자, 이번 시즌 결정적 장면들을 자체적으로 엄선해 봤다. 주관적인 선정이건만, 팬들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1. 권용관의 홈스틸(!) / 5월 23일 vs삼성

 이미 매우 이른 DTD가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선취점을 빼앗겼고 겨우 겨우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정상적인(!) LG의 전력이라면, 그리고 정상적인 디펜딩챔피언의 전력이라면, 이 경기는 또다시 아깝게 지는 익숙한 패턴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 때 완전히 비정상적인 플레이가 나왔다. 이대형도 아니고 권용관이, 3루에서 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이 변칙적인 플레이는 그동안 LG의 팀케미스트리에 교란을 일으켰다. 어딘가 산만하고 흩어져 있던 팀의 체질은 이 날 이후 급속히 결속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한 난 그 때 생각했다. 어쩌면 권용관이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발끝으로 찍은 것은 홈이 아니라 LG를 둘러싸고 있던 그 저주가 아니었을까, 하고. 정상적인 경기와 정상적인 노력으로는 절대 허물어지지 않던 저주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기술로 깨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저주는 더이상 LG를 괴롭히지 못했다.

 

2. '경기 종결자'로 진화한 정의윤 / 5월 26일 vs SK

 시즌 초부터 LG 팬들에게 계속 욕 먹던 선수가 이대형과 정의윤이다. 박병호까지 포텐이 터진 마당에, 자조적으로 선수 본인을 위해서라도 이대형과 정의윤을 이제 그만 풀어줘야 하는게 아니냐는 얘기도 돌았다. '이닝 종결자'. 정말 누가 지었는지 절묘하고도 참 적확했던 그 별명은 이내 그에게는 또 하나의 저주가 되어 반복이 되었다. 1사 만루 같은 찬스에 정의윤이 나오면 이내 그러려니, 또 이 이닝이 이대로 끝나려니, 하게 되었으니까. 그랬던 정의윤이 끝내기 안타로 위닝시리즈를 가지고 온 경기였다. 이 역시 정상적인 플레이였다면 5-4-3 병살로 이어졌을테지만, 위장번트모션 덕분에 끝내기 안타가 될 수 있었다. 1루 주자가 문선재였다는 점도 다행이었고, 무엇보다도 그 마법같은 공의 흐름.. 최정 옆을 지나 라인을 타고 3루베이스를 넘어가 기가막히게 바깥쪽 펜스 깊숙한 곳으로 빠져나가던 그 공의 궤적은, 정말이지 기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상열-이동현으로 이어지는 계투진에 대한 믿음도 견고하게 만들었던 경기였고.

 

3. LG의 야구는 8회부터 / 5월 30일 vs 한화

 LG야구 색깔을 표현하는 몇 가지 가운데 하나가 경기 후반에 털리는 야구라는 점이다. 고질적으로 불펜과 마무리가 약하다 보니 경기 중반까지 리드를 잡다가도 뒤집히는 경우가 자주 있더랬다. 8점차 리드를 못 지킨 경우도 두어 번인가 있었고, 드라마틱한 패배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팀이 LG였다. 올 시즌 달라진 점이 이 지점이었는데, 대표적이었던 경기가 이날 한화와의 경기였다. 8회 초까지 0:3으로 뒤지던 경기를 8회말에 5득점에 성공하면서 뒤집은 경기. 경기 후반에 몰아친다거나, 2사 이후에도 집중력을 발휘하며 야구같은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경기 후반에 뒤집는 경기 수가 많아지면서, 아예 제 시간에 야구 보지 않다가 7회 이후 슬그머니 야구 채널로 돌리기까지 하게 되더라. ㅋ 물론 이렇게 경기 후반에 뒤집을 수 있는 밑바탕은 불펜 강화다. 앞서 26일 SK와의 경기에서도 이상열과 이동현이 환상적인 삼진쇼로 실점을 막으며 역전승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시즌 내내 LG의 불펜진은 감동 그 자체였다. 최근 지친 기색이 역력하여 페이스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으랴. 그리고 차명석코치는 정말 억대 연봉 안겨드려야 한다.

 

4. 기적 혹은 신화 / 6월 2일 vs 기아

 이날 경기는 내가 야구를 보기 시작한 때부터 다섯 손가락에 꼽을 명승부였다. 모든 게 기적의 조건을 갖췄다. 상대 양현종의 구위에 완전히 밀린 타선의 침묵. 0:4로 뒤지던 끝에 맞이한 9회초 마지막 공격. 상대 마무리 앤서니에게도 무력했던 8회. 그런데 그 마지막 공격에 들어서 기적을 일구기 시작했다. 4:4로 동점을 만들고, 가용 포수마저 동이 나 문선재가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10회초, 정의윤의 것과 비슷한 궤적을 그렸던 문선재의 적시타와, 아예 적토마가 돼 달린 이병규의 홈 쇄도로 끝내 역전을 일궜다. 그리고 마지막 10회말 수비 때 전문 포수가 아닌 까닭에 불안감을 노출하며 마지막까지 위태로웠으나 기예 위기를 짜릿한 삼진으로 마무리 해 냈다. 이날 경기를 보고, 난 다짐했다. 올 시즌 행여 가을야구를 못 하게 되더라도, 이 경기 하나로 이미 까방권을 하사하겠노라고.

 

 '진격의LG' 시절을 지나선 이 시기처럼 짜릿하거나 기가 막힌 경기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대신 그저 묵묵히 강팀의 면모 그대로 한 경기 한 경기 관리를 잘 하며 현재까지 왔다. 멘탈을 흔들려는 각종 음해와 훼방에도 불구하고 '즐기는 야구'와 '우리의 야구'를 표방하며 묵묵히 목표를 달성한 팀에 경의를 표한다. 요즘 내가 너희들에게 배우는 게 많다. 일찌감치 시즌을 포기했던 팬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11. 5. 29. 14:09

 야구는 '멘탈게임'이라서 징크스가 많다. 징크스는 때로 데이터로 누적돼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게다가 징크스가 지독해지면 심지어 '저주'로 불리기까지 한다. 야구에는 숱한 저주가 걸리고 또 풀리곤 한다.

 대표적인게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 보스턴 레드삭스가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못 알아보고 헐값에 뉴욕 양키즈로 내보낸 뒤에 100년동안 우승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저주를 풀기 위한 각종 노력 끝에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2년, 그 저주를 스스로 풀었다. 시카고 컵스가 아직도 안고 있는 '염소의 저주'도 있다. 염소를 데리고 야구를 보러갔던 염소 주인이 입장을 거부당하자 시카고 컵스에게 "앞으로는 우승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저주를 걸었다는 건데, 베이브 루스와 달리 이 염소 주인은 실제로 저주를 걸기까지 했던 까닭인지 여지껏 시카고 컵스는 저주를 풀지 못한 채, 저주 이후부터 지금까지, MLB 구단 가운데 최장기간 우승하지 못한 구단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화려한 플레이와 깨끗한 매너, '자율야구'로 90년대 한국 프로야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던 LG 트윈스가 8년동안 나락에 빠지며 허우적거렸던 것 역시, 지독한 징크스, 일종의 '저주'로 풀이되곤 한다. 이른바 '야신의 저주'다.
 
 좋지 않은 성적으로 전임자들이 물러난 뒤 김성근 감독이 맡았던 2002년의 LG 트윈스는, 사실 상위권 전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성근 특유의 조직력 극대화와 벌떼야구로 LG 트윈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고, 심지어 한국시리즈에까지 나서게 됐다. 비록 이상훈이 이승엽과 마해영에게 잇따라 홈런을 얻어맞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첫 우승을 안기며 준우승으로 시즌을 끝내고 말았지만, LG 트윈스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지도력에 갈채를 보냈었다.

 그러나 구단은 김성근 감독을 내보낸다. "LG 야구와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 이유는 이유대로 타당했다. 90년대 LG 트윈스의 이른바 '신바람 야구'는 선수들의 자율성을 중심으로 한 경기 운영에 방점을 찍고 있었지만, 김성근의 야구는 철저한 '감독의 감독에 의한 야구'였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결국, 준우승팀 감독으로는 유례없이 경질되고 만다. 그리고 그 후 8년동안 LG 트윈스는 두 번 다시 가을 야구와의 연을 맺지 못한다. 그 사이, 김성근 감독은 SK 와이번스에서 자신의 야구 철학을 완성시킨다. LG 트윈스가 바닥을 기는 동안 SK 와이번스는 김성근의 지도력 하에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3차례 우승을 했으니, '밤비노의 저주'에 비견되는 '야신의 저주'라 불릴만 하다.



 그 '야신의 저주'가 9년만에 풀릴 조짐이다. 해독제는 독을 만든 이에게 있다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그 저주는 야신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풀리게 됐다.
 
지난 시즌 도중 SK 와이번스로부터 트레이드로 세 선수를 영입했다. 박현준과 김선규, 그리고 윤상균이다. 최동수, 안치용, 권용관 등 4명의 즉시전력감 선수들을 내주면서 데리고 온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었다. 시즌 도중 들어온 선수들이라 지난 시즌엔 그다지 역할이 없었는데, 올해 이들은 LG 트윈스 돌풍의 주역이 되고 있다.

  지난 시즌 LG에게 없었고, 올 시즌 있는 게 에이스, 믿음직한 계투, 해결사인데, 이들 세 선수가 그 역할을 채워 주고 있다. 마치 김성근 감독이 애써 조련했던 알짜배기 선수들을 LG 트윈스에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로 인해 걸렸던 저주를 풀어준 것만 같은 모양새다. 저주는 풀렸다.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ㅎ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