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705'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1.03.27 "빨간 딱지"
  2. 2009.12.24 이웃의 섬나라 - <7> 떠남 2
  3. 2009.12.24 이웃의 섬나라 - <6> 가와이! 6
만지작2011. 3. 27. 22:14

 

 내가 처음 손에 쥔 디지털 카메라는 캐논의 IXY500이었다. DSLR이라는 개념 조차 생소하던 시절이다. 카메라를 잘 아는 누군가가 "디카는 캐논과 니콘"이라고 하길래, 두 브랜드의 제품들을 유심히 살폈는데, 이 녀석이 눈에 '쏘옥'하고 들어온거다. 나카타가 모델이었던 광고에서였는데, 정말 폼이 났다. 쓸데없는 장식 없이 반듯하게 각진 심플한 디자인이 특히 너무 좋았다,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일본 내수품으로 건졌다.  캐논 특유의 색감도 좋아서, 하늘이나 풍경 사진이 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오랫동안,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도 여행에서 즐겨 추억을 기록하던 친구였다.


 IXY500에 완전히 만족해 하고 있을 때, 이 녀석이 꽂혔다. 캐논 IXY L. 사실 누나가 먼저 샀는데, 카메라 사는 데 따라 나섰다가 나까지 홀딱 반하고 말았다. 특히 앙증맞게 작은 사이즈가 언제나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고 수시로 사진을 찍고자 하는 내 의도에 부합했다. 광학줌이 없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곤 했는데, 덕분에 단렌즈 특유의 선명한 사진을 만들어내 주곤 했다. 아직도 내 수중에 있는 애장품이다.



 카메라에 있어서 난 늘 캐논빠였는데, 캐논을 벗어나게 만든 첫번 째 카메라는 코닥의 EasyShare v705다. 정말이지 획기적인 카메라였다. 렌즈를 두 개 장착해 기존의 똑딱이가 보여줄 수 없는 광각을 표현해 주곤 했다. 그 광각으로 재미있는 사진도 연출할 수 있었고, 3번에 나눠 찍고 나면 알아서 붙여주는 특유의 파노라마 기능도 있어 사진 찍는 재미를 더해줬다. 블루투스도 탑재돼 무선으로 사진을 인쇄한다거나 전송할 수 있었는데, 당시엔 보편화돼 있지 않은 무선 신호다 보니 난 사용해 보질 못했다. 이후 새로운 똑딱이들이 나올 때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수 있었을만큼, 대단히 뛰어난 제품이었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던 물건이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고장이 나 버렸다.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렌즈 고장인 듯 한데, 어느 렌즈 고장인지 몰라 두 개 다 갈아야 하는 통에 무려 수리비가 30만 원이 넘게 나온다는 말에, 수리를 포기하고 안락사 시켜 주었다. 


 IXY500 이후, 디자인 다변화로 그만 캐논다운 디자인이 없다고 여겨질 즈음, 디자인 하나로 혹하게 만들었던 IXY10이다. 캐논 특유의 심플하고 강렬한 디자인이 살아있다. 집에서 가족들이 쓰던 IXY500을 팔아치우고, 돈을 조금 보태 이 놈을 영입해 들였다. 아끼던 v705를 제끼고, 나의 영국 여행을 함께 해줬다. 하지만 내 손에 쥔 것은 얼마 되지 못하는데, 가족들이 쓰던 카메라를 팔고 들인 녀석이라 애초부터 가족들에게 입양될 처지였던 까닭이다. 현재 어머니께서 쓰고 계시지만, 여전히 탐나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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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똑딱이로만 찍어 왔다. 작고 가볍고 사진 찍는 게 간단해서다. 사진을 찍을 때 뭘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난 싫다. 그냥 괜찮은 구도, 좋은 시선을 담을 수 있겠다 싶을 때 무심코 카메라를 피사체에 대고 '찰칵'하고 찍는 게 내가 생각하는 '사진'이라는 거다. 노출이니 조리개값이니 화이트밸런스니, 이런 걸 고민하고 계산해 가며 찍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내가 DSLR에 관심이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DSLR의 그 부피감은, 연출된 상태가 아닌 일상 생활 속의 찰나를 원하는 내게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똑딱이는 작고 가볍고 찍기가 쉬운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최근 아끼던 카메라들이 하나 둘 내 손을 떠나면서, 그냥 스마트폰 카메라로 대체되고 말았다. 500만 화소에 늘 함께 한다는 편의성 면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똑딱이 때에도 느꼈던 바이긴 하지만, 너무 얕은 심도는 늘 아쉬움을 남겼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괜찮은 구도의 '나만의 작품 사진'을 보면서, 조금만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스믈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뿌연 질감을 벗어나 조금만 사진의 퀄리티가 높으면 내 사진도 꽤 괜찮을텐데, 하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목마름이 있던 차에, 누나가 카메라를 산다기에 관련 정보를 좀 찾다가 그만 꽂히고 말았다. 미러리스 카메라, 이른바 '하이브리드 카메라'에 말이다. 특히 소니의 NEX-5에 홀딱 반하고 말았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원하는 앙증맞도록 '작은 사이즈'가 마음에 쏙 들었다. 저렇게 작은 사이즈로 고품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니, 정말 세상 좋아진 거다.

 하지만 누나는 내가 반한 NEX-5는 거들떠도 안 보고 파나소닉의 Lumix GF2를 샀다. 카메라 지름신이 내린 나는 괜히 갈등하기 시작했다. NEX-5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봤다. 그런데 한결같은 평가들이, 렌즈가 좀 별로란다. 아직은 적은 렌즈군에 그나마 있는 렌즈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반면 GF2는 렌즈에 대해 좋은 평가. 누나의 선택은 기능적으로 본다면 탁월했던 셈이다. 다만, 난 그 디자인이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향을 틀었다. 하이브리드 대신 '하이엔드' 컴팩트 카메라로 말이다. 이미 내가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였지만 가공할만한 가격에 그만 포기했던 카메라가 있었다. 라이카 D-Lux4. 파나소닉의 Lumix LX3와 쌍둥이 카메라인데 디자인과 라이카 딱지 하나로 곱절의 가격 차이가 나는 그 제품. 후속 모델이 나와 값이 떨어지면 노려보려고 했는데,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후속모델인 D-Lux5가 나오자, D-Lux4는 눈 밖에 나고 말았다. 역시 무서운 가격... 하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갈증... 그러다 결국 질렀다. 복지 카드로 단칼에 질러 버렸다.


 아직 매뉴얼을 한 번도 채 완독하지 못할만큼 기능이 꽤 많다. DSLR만큼은 아니겠지만 기능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에 맞춰 생각하며 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결국 똑딱이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라이카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 가슴을 뛰게 하는 "빨간 딱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진을 볼 때부터 마음에 품었던 그 브랜드. 연장이 좋은 목수를 만드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최소한 자신감을 부여하지는 않겠나. 나도 대가처럼 찍고 싶다. 나도 대가처럼 찍을 수 있다.
 
 늘 함께 하면서 일상을 기록하고 남길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들을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9. 12. 24. 21:39


 여행은 떠나는 일이다. 집에서 떠나고 도시를 떠나고 여행지에서 여행지로 떠나고... 그래서 이동하는 과정 역시 여행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진 속에 유난히 이동 수단이 많이 담긴 것 역시 여행의 그런 성격을 말해준다.



 일본에 도착해 처음 도전해 본 이동 수단, N'EX 다. JR특급 나리타익스프레스로, 나리타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쾌속선이다. 좌석이 배정돼 있어 편도가 무려 3천엔이다. 그러나, 여행객은 이걸 다 낼 필요가 없다. 스이카넥스를 사면 되니깐.


 교통카드인 스이카넥스다. 나리타 공항의 서비스센터에서 해외 여행객들에게만 파는 카드인데, N'EX 편도를 1500엔에 해주고 2000엔짜리 시내 교통카드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총 3500엔인데, 500엔은 보증금이라 돌아갈 때 카드를 반납하면 돌려준다.

 스이카는 우리나라의 T머니카드 같은 개념이다.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처리할 수 있고, 일부 편의점에서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보통 마지막에 자잘하게 남는 잔돈을 어쩌지 못하고 일본에 흘린채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도 마지막에 200엔 정도인가 남아서 난감해 했는데, 편의점에서 초콜릿 같은 주전부리를 사는 것으로 잔액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일본에 단돈 1엔도 흘리고 오고 싶지 않았더라, 이거지. 


 일본 지하철 역사의 안내 표지판에는 친절하게도 한글이 적혀 있다. 친한파 미유키 여사 덕분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한글의 존재 자체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구석이 있다. 사실 저 정도는 한자만으로도 우리나라 사람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우리나라 지하철 표지판은 일본인들을 배려했던가? 물론 일본인들 역시 한자만으로도 표지판을 식별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한글을 사용하듯이, 우리나라가 히라가나를 역사 표지판에 새겨놓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식민지의 아픈 경험 때문이다. 정서적 반발이 만만치 않을테고, 그게 불보듯 뻔한 마당에 히라가나를 쓰자고 덤벼들 정책 입안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한글 표지판을 보면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일일까? 우리나라의 국력이 이만큼이나 된 것같아 기쁘고 마냥 즐거울까? 우리나라 지하철 역사에는 발붙이지 못하는 히라가나에 비해 한글이 버젓이 자리잡은 현실에 만족스러운 것이냐? 정작 이기고 있는 건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관광객 유치에 더 적극적이니까. 한국 사람들을 위한 편의 시설은 한국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돈을 남기고 떠날 것이다. 우리나라에 일본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더 있다면,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더 많이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덕분에 자존심은 좀 지킬 수 있는지 모른다. 



 전철은 가장 도시다운 교통수단이다. 그래서 도시의 복잡함이 배어있다. 서울의 전철도 그렇고, 워싱턴DC의 전철도 그렇고, 가장 오래됐다는 런던의 전철도 그렇다. 도쿄의 전철도 그렇다. 하지만, 아마도 도쿄의 전철만큼 복잡한 전철은 없을 것이다. 노선마다 운영하는 회사가 달라 환승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여러개의 노선이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려면 역사를 나와서 다른 역사를 찾아 가 또다시 요금을 내고 타야 한다. 새삼 우리의 지하철 시스템이, 더욱이 버스와 함께 환승할 수 있기까지 한 서울의 교통 시스템에 안심이 됐다. MB 만세.




 도쿄엔 이런게 더러 있었다. 스카이 워크. 무빙워크인데, 굳이 '스카이'를 붙인 건 고가 무빙 워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철 역사를 어떤 번화가 앞에 짓지 않고 좀 떨어져 있다 보니, 사람들이 즐겨 찾는 번화가까지 가게 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던 거다. 스카이워크 아래를 보니, 세상에나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있었다. 공중을 그냥 휙 가로질러가는 길이다.

 

 오다이바를 가게 되면 타야 하는 수상버스. 은하철도 999의 캐릭터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배라고 하는데, 뭐 그냥 배였다. 그냥 평범한 유람선으로 보이지 않게 했을 뿐, 그냥 배였다.



도쿄에서 머물렀던 신주쿠워싱턴호텔. 싸고 신주쿠역과 가까운 곳을 골라잡았는데, 정말(!) 작았다. 캐리어가방을 둘 데가 마땅치 않았을만큼, 침대와 데스크와 화장실이 전부였던 콤팩트 사이즈의 호텔이었다. 특히 화장실... 무슨 비행기 기내 화장실인 줄 알았다. 컨테이너를 짜서 넣어놨더구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작고 실용적인 걸 강조하는 일본인들의 정신이 깃든 것 같았다. 저 건물의 촘촘한 창문들을 보라. 벌집이 따로 없다.




 도쿄에서 하코네로 우리를 실어나른 로망스열차. 온천지대이다 보니, 할머니들이 오니기리를 싸 와서 온갖 수다를 다 떠시더라.


 하코네유모토 역에 내리면 등산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하코네 프리패스를 사면 하코네 지역의 모든 탈 것은 해결된다. 등산열차를 타고 구불 구불 올라가 고라역에서 내린다.


 이게 고라에서 타게 되는 케이블카. 남산의 케이블카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건 또 따로 있다. 단선이고 유일하게 한 곳에서만 교차할 수가 있다.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역에서 타야 한다. 단선이다 보니 양쪽으로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잘못 내리면, 건널목이 없다. 다음 케이블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면 차를 가로질러 이동해야 한다. 

 우리가 묵어야 할 료칸은 나카고라역에 있었는데, 안내서에 왼쪽으로 내리라고 그래서 내렸다가 낭패를 봤다. 왼쪽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내려야 한다. 다음 열차가 왔을 때 잽싸게(!) 오른쪽 방면으로 옮겨가서야 료칸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케이블카라고 부르는 이것은, 로프웨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조운산역에 내리면 이런 로프웨이를 탈 수 있다. 이걸 타면 산 자락을 듬성듬성 건너 뛰어 원하는 오와쿠다니 같은 행선지로 갈 수 있다.



 로프웨이를 타고 마지막에 당도하려 한 곳은 아시노코. 거기서 범선을 탈 계획이었지만, 간발의 차로 마지막 배를 놓치고 말았다. 저기 멀리 보이는 게 마지막 배.... 다시 버스를 타고 료칸을 찾아갔다.



 급격한 경사의 케이블카 역. 그렇다. 여긴 산악지대인 것이다.



 다음 날 케이블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 풍경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5일만에 다시 찾은 나리타 공항. 여행을 떠났던 우리는, 그렇게 일본을 떠났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9. 12. 24. 20:40

 사실, 일본 사람들의 얼굴을 '도촬'해볼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똑딱이로는 아무래도 무리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용케 몇장 건졌다. 어디 넣을 구석이 마땅치 않아, 아이들 사진만 따로 모아봤다.


 메이지신궁의 전통 혼례 하객으로 온 것으로 보이는 유타카 어린이. 부모 친지들은 물론, 생판 처음 보는 관광객들마저 찍어보겠다고 하니 졸지에 아동 모델이 되어 주셨다. 철부지 동생은 덤으로 찍힌 셈인데, 덕분에 그림은 더 살아 주었다.


 메이지 신궁 가는 길에 있던 코스프레를 준비하던 청소년들. 주말 휴일엔 이 길목이 코스프레의 천국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날엔 이 그룹과 웬 서양 여자 하나 뿐이었다. 아니메를 꿰고 있었다면 누구 코스프레인지 알아맞추기까지 하며 즐겼을테지만, 그렇게 심취해 있지 못한터라, 소심한 마음에 옆 모습만 슬쩍 찍고 빠져나왔다.


 이노카시라온 공원이 부러워 보였던 건, 숲 그 자체의 울창함에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나와 뛰놀 수 있는 아주 넉넉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는 점에 있었다. 서울 어디에서 아버지와 캐치볼하는 아이, 엄마와 축구공 차는 아이를 볼 수 있겠나. 인라인을 타는(배우는?) 여자아이도 말이다.


 아사쿠사에서 오다이바로 가는 배에서 본 고딩 무리들.  신종플루 걱정에 쓴 거겠지만, 그 마스크 덕분에 좀 더 살벌해 보이더라. <캠퍼스블루스> 류의 학원물만 보다 보니 일본 교복 입은 무리들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하코네에서 만난 꼬마 숙녀들. 일본 아이들이 유난히 더 귀여울 건 없지만, 달리 말하면 일본의 아이들이라고 예쁘지 말란 법이 없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법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