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2007. 3. 22.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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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히딩크를 물색할 때부터도 난 귀네슈 옹립론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1. 그는 유럽의 변방 터키를 월드컵 3위로 올린 감독이다.
 2. 그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선수들을 데리고 전술적 조합과 조직력으로 강팀으로 만든다.
 3. 그는 외국인이지만 한국 축구에 강한 애정을 품고 있다.

 그 스스로도 히딩크 후임자로 스스로를 강력히 추천하며
 한국 대표팀 감독에 열의를 드러냈지만,
 애초에 학연으로 똘똘 뭉쳐 '간판'에 연연해 했던 축구 협회는
 이 변방에 있는 보석같은 명장에 대해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영어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외면당하자
 길을 달리 하기로 작심한 것일까?
 월드컵 3위의 지도력을 갖춘 감독이
 유럽에서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변방 리그인 K-리그에 감독으로 부임한 것을
 난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향한 포석으로 보았다.

 전문가들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 당초  
 FC 서울을 4-5위권 팀으로 분류했지만,
 그건 단순 스쿼드만 두고 봤을 때의 얘기다.
 그들은 감독의 전술적 역량을 간과했다.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 지난 해와 전혀 다른 팀을 만들어 놓은 그는,
 차기 대표팀 감독의 가장 유력한 후보다.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7. 3. 22.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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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러 잡은 대휴 날. FC서울과 수원삼성의 이른바 '수도권 더비' 매치가 있는 날이다. 진정한 더비 매치가 되려면 같은 연고 지역이어야 하지만, 각 도시마다 꼴랑 한 개 팀만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일단 K-리그에서 더비 매치라고 불릴만한 경기는 서울-수원 전밖에 없다.

 두 팀은 여러가지 면에서 라이벌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모 기업이 각각 GS와 삼성으로 라이벌 대기업이고, 수준급의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색깔도 서울이 전통적으로 붉은 계통이라면 수원은 파란 색이다. 그 때문에 서울의 안양 시절부터 두 팀은 수도권을 연고로 호각세를 보이며 라이벌 의식을 키워 왔다. 이번에도 박주영-안정환, 김병지-이운재, 이을용-이관우, 귀네슈-차범근 등의 맞조합으로 라이벌 전으로서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런 경기를 놓칠 수 있으랴. 감기에 걸려버렸고, 더욱이 날씨는 아침부터 비가 온 통에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애초 계획대로 놓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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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는데 축구를 하겠냐고? 축구가 야구와 다른 점은 '수중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비는 의외성을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하기까지 해 경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선수들은 예정대로 열심히 뛰어주면 된다.

 붉은 색의 서울과 푸른 색의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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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팀 서포터들의 함성소리도 높아져 가고... 수원삼성의 서포터즈 그랑블루는 최대 규모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서포터즈이다. 원정임에도 홈 서포터즈보다 더 많은 인원이 세를 과시했다. FC서울의 서포터즈 수호신은 규모도 그닥 크지 않고, 연고지 이전으로 다른 팀 서포터즈들에게 비아냥과 조롱을 듣는 처지다. 뭐, 괜찮다. 어차피 다른 팀 팬들의 '인정'까지 구하면서 하는 응원은 아니니. 하지만 조금 더 오밀조밀한 맛은 있었으면 좋겠다. 안양 시절의 어떤 결기같은 게, 이 서포터즈들에게는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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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저녁인데다 날씨까지 얄궂은 상태라 지난 번 일요일 경기 때보다 사람이 많을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더비 매치라는 홍보에 오히려 사람들이 훨씬 훨씬 더 많이 왔다. 늦게 간 통에 뒤쪽으로 자리 밀린 것 좀 봐라. 그리고 이번에 온 사람들은 단순 '나들이' 삼아 축구장을 찾은 게 아니라 온전히 축구를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탄식과 환호, 고함, 제각각의 해설, 골이 터질 때마다 벌떡 일어나 방방 뛰고, 나중엔 골 터질 때만 벌떡 벌떡 일어나던 관중들이 어느새 경기에 몰입해 결정적인 순간 때마다 들썩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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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속 된 골에 신이 난 FC 서울 서포터즈. 야간 경기의 맛은 역시 골 뒤의 화려한 불꽃 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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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전세가 장악된 뒤의 모습. 침통한 그랑블루와 신이 난 수호신. 오늘 경기는 빅 매치라는 이름에 걸맞는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었다. 라이벌간의 대결, 경기 초반 상대팀의 기습적인 선제골, 그러나 역전 승리, 게다가 대승, 옐로 카드 나올 정도의 선수들 사이 갈등, 해트트릭 히어로.... EPL 수준이라 해도 허풍이 아니다. 멋지고 훌륭했다. 안 왔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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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으로 옷 해 입은 야경 속 상암 경기장의 모습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고... ^^

 이만큼의 수준급 경기력만 유지된다면 K-리그의 발전은 먼훗날 얘기가 아니다. 월드컵 열기로부터 리그 열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리그의 발전은 곧 국가대표 경기력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늘 경기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