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07. 3. 1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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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됐든 아다치는 '야구'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나 '권투'라니, 타츠야가 괜한 고집으로 마우스 피스를 끼워 문 것과 뭐가 다르담? 아다치의 선은 치열한 난투의 파이팅까지 표현하기엔, 글쎄 너무 매끄럽지 않은가. 치바 데츠야만큼 되지 못할 바에야, 함부로 종목을 바꾸는 게 아니다.

 물론 아다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H2>이후 태어날 자기 만화들의 가혹한 운명을. 누구도 <H2>의 잔상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앞으로 나올 아다치의 만화들, 특히 그것이 야구를 소재로 한 것이라면, 사람들은 거기서 히로의 그림자를, 히데오의 자취를, 히까리의 데자뷰를, 하루까의 향기를 찾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진 방황이었겠지만, <카츠>를 서둘러 닫은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는 다시 자기 손에 맞는 글러브를 찾아 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H2>로 빚어진 독자들의 높은 기대치는 그 작품에 필적할만한 대작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그토록 정들었던 주인공들의 또다른 분신들을 만나고 싶었던 마음에 다름 아니었다. '아다치의 야구만화'라는 것에는 그래서, 뚜껑을 열기 전부터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다치 미츠루의 야구 만화 컴백작 <크로스게임>은, 누가 '아다치의 야구 만화' 아니랄까 봐, 여전하다. 하기사, 아다치 작품 치고 '여전'하지 않은 게 어딨었나. 여전한 주인공에 여전한 그림체에 여전한 유머감각에 여전한 연출력까지. <H2>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크로스게임>은 <H2>의 또다른 버전으로 기대되고도 남을만큼, 그래, 여전하다. 

 심지어 예기치 못한 '의외성'조차도 여전하다. 그는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인 인물의 죽음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확 트이게 만드는 연출력을 뽐내 왔다. <터치>에서 카츠야가 그랬고 <H2>에서 히까리의 어머니가 그랬다. 그들의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상에 파장을 던지고, 그들의 관계에 변화를 준다. 독자들에게는 예기치 못한 상황의 변화로 인해 다시금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오고 말이다. 우리는 이미 아다치의 전작들에 의해 이 의외성에 학습돼 왔다. '여전한' <크로스게임>에 역시 예의 그 의외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만화의 의외성은 보다 더 복합적이다. 의외성 안에 또다른 의외성이 숨어 있는 식이다. 그것은 '시점'이다. 여전히 결정적 인물이 결정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시기는 앞선 작품들과 달리 예기치 못한 때에 그야말로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 연출은 아다치의 여전함에 길들여져 앞으로의 전개방향을 손쉽게 짐작하던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아예 앞으로 이야기 전개에 목을 매게 만들어 버린다. <H2>에 빠져서 <크로스게임>에서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H2>의 흔적을 뒤져 내려고 드는 독자들과의 승부는, 사실상 여기서 갈리고 만다.

 그것은 이 만화가 <H2>와 별개의 이야기라는 선언적 승리다. 이야기의 물줄기를 크게 뒤흔드는 죽음의 설정은 <H2>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다치의 치밀함이 빚은 결과다. 따라서 그것은 사실 <크로스게임>에서의 다소 이른 터닝 포인트라기 보다는, <H2>에서 <크로스게임>으로 넘어가기 위한 전환점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덕분에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해졌다. 죽음을 맞는 캐릭터와 동화되기에는 이별의 시기가 대단히 일렀음에도, 애틋한 정서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까지 했으니 아직 연재 중인 이 만화의 앞으로 여정은 당분간 일정한 탄력을 계속해서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야구 글러브만 끼면 비범해지는, 평범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크로스게임>은 이래저래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목 빼고 기대하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07. 3. 1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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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램덩크> 1권부터 31권에까지 빠짐없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캐릭터가 있다. 김대남과 노구식이다. 이름도 생소하다. 다른 캐릭터들에게조차 별로 불리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두 명은 이른바 '백호군단'의 일원으로, 만화에서는 그저 백호를 골려 먹거나 쪼그만 택트에 엉겨 붙어 타 있거나 혹은 백호의 경기를 관전하는 모양새로 등장할 뿐이다. 리더 격인 양호열과 독특한 외모로 어필하는 이용팔에 이어 그저 '기타 등등'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 김대남과 노구식에겐 존재감이 없다. 이들이 만화 전권을 통해 가장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낸 때는 정대만 패가 농구부에서 행패를 부릴 때 그들에 맞서 싸웠을 때가 사실상 유일하다.  

 주변부에 남겨져 있기로는 이달재나 신호일 같은 북산의 후보선수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농구 만화'인 이 만화에서 농구팀 소속원으로 어찌됐든 (벤치에라도) 있어줘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아예 엑스트라에 불과할 정도의 캐릭터라면 또 말을 않는다. 김대남과 노구식은 주요 컷에서 꼬박꼬박 얼굴은 내밀기 때문에 낯은 몹시 익지만 이 만화에서 구체적으로 왜 필요한 녀석들인지 알 수 없다. 주요 캐릭터임에 분명한데도 뭔가 하는 게 없다. 그들은 꼭 그들이 아니어도 될만큼 만화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있으나 마나 하다.

 하도 자주 펼쳐봐서 이제 웬만한 스토리와 그림정도는 죄다 꿰게 됐기 때문일까? 다시 본 <슬램덩크>에서는 유난스레 노구식과 김대남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된다. 이 녀석들이 이런 표정을 하고 있었구나, 은근히 잘 생긴 얼굴이었네, 알맹이 있는 대사도 종종 하는군, 뭐 이런 생각까지 새삼 하면서.

 어쩌면 그들이 내 처지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