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18. 5. 27. 21:20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빌어먹을 세상따위>를 봤다.


- 성은애 쌤 추천으로 일부러 찾아 봤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정주행은 못했지만, 20분짜리 8부작이 다라서 보는 데 큰 부담이 없다. 처음엔 좀 지루했는데,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밀도가 끈끈해지면서 몰입도가 높아진다. 마지막 순간엔 해괴하다고 생각되던 이 아이들에게 감정이입마저 되면서 '울컥'하게 되더라.


- 20분이라는 러닝타임도 그렇지만, 편집 문법과 템포가 경쾌하고 직관적이어서 젊은 콘텐츠라는 느낌이 든다. 아니, 확실히 그러하다. 이야기 자체가 10대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거지같은 건, 모두 어른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저 격렬히 저항을 할 뿐이고.


-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그래서 스스로를 더욱 막장으로 내몰고, 자기 자신을 포기했던 그들을 붙잡아 준 것은 서로서로였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할 때, 사랑과 연대의 끈을 만든 그들은 그 서로가 있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 손을, 왜 우리는 내밀지 못하는 걸까?


- 원제 <The End of the F***ing World>를 직역했다면 <X같은 세상의 끝> 정도였을텐데, 난 <빌어먹을 세상 따위>라는 번역된 제목이 참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대한 아이들의 자세가 좀 더 도전적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체념하고 단념하지 말고, 그 까짓거, 너네 따위, 하며 좀 더 싸우길 바란다. 응전하는 과정에서라도, 우리역시 분명 배우는 게 있을테니.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18. 5. 27. 21:14



이창동의 신작 <버닝>을 봤다. 스포일링을 아무래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을, 미리 밝혀 놔야겠다.


- 영화는 알려진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삼았고, 그에 앞서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헛간 태우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두 소설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21세기 한국적 상황으로 끌고 들어온 점이 흥미로웠다. 곳곳에 숱한 메타포들을 장치해 놔, 영화를 보는 동안보다 도리어 보고 난 뒤 계속해서 영화를 곱씹게 되는 마력도 갖고 있다. 계급론, 청년의 분노, 굶주린 자들, 사회적 방화 등등 수많은 이야기가 계속 머리속을 맴돈다.


- 영화가 건네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특히 난 희생자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됐다. 앞선 두 작품에서 이창동은 어떤 사건의 희생자와 그로 인해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이 일그러지는 상황을 그렸는데, <버닝>도 그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읽혔다. <밀양>에서는 남자 어린이가, <시>에서는 자살한 여고생이 각각 희생자로 나왔다면, <버닝>에서는 마치 최근의 사회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20대 젊은 여성인 해미가 범죄의 희생자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 뒤를 쫓으며 내면의 분노를 점차 밖으로 꺼내게 되는 20대 청년 종수가 관객들을 이야기로 안내한다.


- 마치 "버려진 비닐하우스"같은 젊은 여성들, 돈이 필요하지만 고정적인 일은 없고, 카드빚에 쫓기며, 그 때문에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은데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없다. 젊음이 꽃피울 때라 유혹이 많고, 불편한 현실과 달리 꿈은 많아서 찾아온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 행방불명이 된 들, 신고도 안 되고 "한국 경찰은 관심 없"는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이 영화의 설정은, 너무나도 현실을 반영한 것이어서 소름이 끼쳤다.


- 해미의 행방불명 '미스테리'를 쫓는 과정도 그러하다. 해미가 한 이야기가 과연 진실인지, 종수는 처음에 알지 못하고 의심이 가득하다. 고양이는 진짜 있을까? 우물 사건은 과연 실재했나? 해미의 가족조차 그녀는 거짓말을 감쪽같이 잘 하는 아이라고 증언하는 마당이니 말이다. 그러나 결국 진실한 사람은 해미 뿐이었다. 종수의 시선을 함께 좇는 우리는 수많은 해미의 말을 과연 얼마나 믿어주었을까? 못 믿을만한 말만 찾아 주워섬기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진실을 부러 외면했던 것은, 정작 우리가 아니었나?


- 종수 역의 유아인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정도로 최적의 캐스팅이었다. 전종서나 스티븐연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유아인의 연기는 높은 기대치도 훌쩍 뛰어넘을만큼 찬란했다. 재미있게도, 유아인 개인이 가진 상징성 부분에서도 최적의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해미를 찾아 해미의 나레이터모델 선배를 만나러 갔을 때 그녀가 하필 종수를 향해 "여성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쏘아붙이는 장면은 그 대상이 하필 유아인이어서 새롭게 읽혔다.


- 소설 두 편을 엮은데다, 이창동 자신이 소설가 출신이라 영화는 이번에도 한 편의 문학작품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의 측면에서도 이 영화의 완성도는 매우 높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파주의 노을이 '불타는' 장면은 파주를 재발견했다는 생각을 줄만큼, 너무나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이밖에 미스테리를 좇아 비닐하우스를 관통하는 종수의 모습과 마지막 성에낀 트럭 차창의 모습 등 그림에도 각종 상징 장치들을 배치해 영화적 완성도를 높였다.


- 유아인의 아버지 역으로 최승호 사장이 등장한 점은 개인적으로는 영화 몰입에 좀 방해가 된 부분이었다. 그저 단순히 셀럽 카메오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튀는 캐스팅이어서, 그 의미를 억지로 되짚어 보게 되었는데... 표면적으로 포크너의 소설에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불을 지르는 아버지를 갖다 놓은 캐릭터이나, 그가 해직언론인이었다는 점이 자꾸 연상됐다. 그 때문에 '정당한 분노의 표출' 탓에 구금되면서 '청년' 종수가 직접 자신의 분노를 폭발하게 되는 동안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던 미디어를 상징한 것이 아닌가,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적폐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쌓인 분노를 불타는(burning!) 촛불에 실었던 청년들이지 않았나. 사람들이 찾지 않아 상영관에 오래 못 붙어 있을 것 같더라는데, 이 영화 아무래도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