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18. 5. 27. 21:40


영화 <원더>를 봤다.


- <신과 함께>를 보고 나니 누가 그 영화보다 <코코>가 낫다고 그래서 <코코>를 봤는데, 이번엔 또 누가 <코코>보다 <원더>가 낫다고 하길래 이 영화를 골랐다. 상영관이 많지 않더라. 줄리아로버츠와 오웬웰스가 나오는데, 예술영화전용관에 걸려 있었다.


- <코코>에 비교우위로 평했던 글에선 이 영화를 같은 가족영화로 놓고 평을 했는데, 사실 <코코>는 주제 자체가 ‘가족주의’ 그 자체였던 반면 <원더>는 사실 그보다는 ‘성장영화’에 가까웠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각자 일정한 어려움을 겪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숙해지고 자라나는 이야기.


- 물리쳐야 할 절대 악이 있는 <코코>와 같은 시원함을 느끼기는 어렵다.이 영화에선 악인이라고 할만한 캐릭터가 거의 없다. 주로 아이들이 나오는데 누구 하나 단정적으로 나쁘다고 할만한 등장인물이 없다. 실은 다들 나름의 사정과 실수가 있었을 뿐이다. 영화는 그걸 또 친절히 다 설명해준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럼으로써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딱 하나 끝내 찌푸려진 눈쌀을 풀지 못하게 하는 캐릭터들이 있는데, 그조차 나쁘다기 보다는 미성숙하다는 면에서 측은해 보이는 자들이다.


-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다. 지루하거나 식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적절한 긴장감으로 끌고 가는 내러티브의 힘도 그랬지만, 이야기의 중간 중간 은유와 복선으로 장면과 대사의 의미를 풍성하게 해준다. 영화가 끝날 무렵 그것들을 좀 더 곱씹어 보고 싶어졌는데, 영화를 한 번 더 보든가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 어기의 수업시간에 나오는 격언들이 특히 그러하다. 영화 마지막을 장식하고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할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라”는 말도 울림이 컸지만, 난 왠지 가장 처음 나왔던 격언이 계속 마음 속에 맴돌았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할 땐, 친절함을 선택하라” 


이 격언이 가리키는 곳은, 새로운 저널리즘을 세울 때 우리가 바라봐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Posted by the12th
만끽!2018. 5. 27. 21:37


애니메이션 <코코>를 봤다.


- 애초에 <신과함께>의 영화화는 이런 방식이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이 갖고 있는 그 재치스러움, 산뜻발랄함, 특유의 병맛스러움을 실사로 구현하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였다고 본다. <코코>가 그리고 있는 저승세계를 보라. 정확히 주호민이 그리고자 했던, 이승의 모양에 빗댄 재미진 그림이지 않던가. 아, 정말 우리에게도 픽사 같은 친구들이 있었더라면.


- 사실 <코코>도 뭐 따지고 보면 '가족주의' 계몽영화다. 디즈니가 만들고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언제 계몽영화 아닌 적이 있었나. 그런데이 영화는 내러티브의 힘으로 애들 따라 영화관을 찾는 어른들까지 자연스럽게 계몽한다. 영화의 제목을 주인공의 이름인 '미구엘'로부터 따 오지 않고 코코 할머니로부터 따 온 것 부터가 아주 명민하다. 이 '코코'를 링크로 이 영화는 아이에게는 아이에게 맞는 주제를, 어른에겐 어른에게 맞는 주제를 각각 내려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훌쩍이며 수건을 챙기게 되는 건 아이들이 아니다. 그 장면의 의미와 경험을 갖고 있는 어른들이지.


- 어렸을 때부터 제사라는 풍습이 그런 것이라 여겼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여 단 하룻밤이라도 죽은 이를 기억하며 그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그를 통해 가족의 결속을 강화하고자하는 것. 그게 제사의 본질이어야 하고 그 본질을 공고히 수행하게 하기위해 각종 형식적 장치들을 마련한 게 아니겠나. 막상 본질적 의미는 온데 간 데 없고 껍데기만 남아 절차니 형식이니 하는 것만 앞세우고 며느리들만 죽어나가게 하는 통에 제사무용론이 나오게 된 것이지만. 유교와 관계없는 멕시코를 통해 우리의 전통적 가족주의와 고인에 대해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던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 디즈니는 <뮬란>이나 <포카혼타스> 등을 통해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의 시각으로 다른 문명을 객체화해서 왜곡한다는 혐의였는데, <코코>를 보면서는 좀 다른 생각도 하게 됐다. 이런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면 동북아의 나라에서 멕시코 풍습이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여지나마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흥미로웠고, '죽은자의 날' 같은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상상의 동물인 알레브리헤는 어떤 존재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그저 마약 마피아의 나라, 범죄율이 높은 나라, 데낄라의 나라 정도에서 이 정도라도 관심도를 높일 수 있는 것도 디즈니의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둑들의 나라"라며 장벽을 세우고 싶어했던 트럼프에겐 의문의 1패가...


cla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