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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7 싸움 6
토막2008. 8. 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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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면접 때였다. "KBS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부당한 기사를 강요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나?"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사장과 경영진, 그러니까 이른바 '꼰대'들 앞에 선 자리였던지라 잠시 세련된 대답을 찾느라 망설이다, 마땅히 돌려 말할 답이 없길래 그냥 짧게 대답했다. "싸우겠습니다" 사장은 '피식' 웃고는 추가 질문을 공격적으로 던졌다. "어떻게 싸우겠나?" 이미 내뱉은 말이 있으니, 도망갈 길은 없었다. "혼자 힘으로 싸우다 안 되면, 선배 동료들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런 날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피와 땀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켜켜이 오랜 세월 쌓아 일궈온 민주주의이기에 쉽게 허물어질 일도 아니리라 생각했다. 역사의 진보는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것이리라 믿었다. 잘못 알았다. 난 순진했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있다. 음모, 공작, 그리고 강제 집행. 전체주의 독재를 행사하던 군부가 하던 짓을 투표로 당선된 민주주의 민간 정부가 더 악랄하게 답습하고 있다. 어떤 그럴듯한 말을 갖다 붙인대도, 명백히 이것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기도다.
 
 궤변을 일삼아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장을 내쫓더니,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언론 특보 출신을 KBS 사장으로 내려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KBS 역사상 유례 없는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이 오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가 사장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KBS는 더 이상 언론기관이 아니다. 내 일터를, 내가 선택한 내 직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난 싸워야 한다. 싸울 수밖에 없다.

 입사 지원서에는 그런 말을 쓰기도 했다.

 "최근 KBS의 변화를 일부 경영진의 교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윗 사람 몇명 바뀐 것으로 KBS가 변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KBS가 궁극적으로 변하는 데 작은 벽돌 하나가 되고 싶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할 때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