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0.01.05 "해직자의 겨울" 2
  2. 2009.12.04 돼지 공장
  3. 2009.11.20 어두운 미래 2
카툰토피아2010. 1. 5. 22:46


 김현석 선배는 내가 미디어포커스에 있을 때
 그 프로그램의 앵커이자, 기자협회장이었다.
 
 MB가 권좌에 오르고
 공영방송 사장을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을 때
 그는 앵커직을 내던지며 "싸우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해 8월 8일, 
 권력이 공권력까지 동원해 공영방송 사장을 해임하던 날
 그는 정말 사활을 걸고 맨 앞에 섰다. 
 그를 따르던 후배들은 그 뒤에 섰다.
 그런 그가 기어이 공영방송을 접수한 저들에게는 
 눈엣가시였나 보다.

 이병순 체제는 김 선배에게 '파면'을 내렸다.
 그건 그에 대한 징계라기 보다는 저항하는 기자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까불지 말라, 잠자코 있어라, 비겁해지거라."
 제작거부까지 한 끝에 결국 김 선배의 파면은 막았지만
 그건 사실 우리의 승리가 아니었다.

 '정직 3개월'선에서 우리가 타협하면서
 저들은 우리가 가진 결기의 강도를 확인했을 뿐이고
 결국 저들이 노리는대로 '비겁함'은 우리 안에 확산돼갔다. 
 
 난 그 때 우리가 끝내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김 선배를 이용한 '도발'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본다.
 그 때 우리가 충분히 강함을 보여주지 못한 까닭에
 저들이 다시 김 선배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려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후 전개될 싸움은
 새로운 싸움이 아니라,
 그 때 마저 하지 못한 싸움이 되어야 한다.
 어설프게 타협하거나 물러섰다간
 아예 기자의 영혼을 저당잡힐 수도 있음을 가정하고 결연하게 싸워야 할 일이다.

 김 선배가 마지막으로 하려고 했던 프로그램의 제목은 "해직자의 겨울"이다.
 귀양이나 다름없는 지역 발령을 받은 그의 겨울이
 모쪼록 따뜻했으면 좋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떠듦2009. 12. 4. 14:32

 참담했다. '정족수의 과반 이상 찬성'이라는 까다로워진 파업 조건을 탓하기에는 너무나도 참담한 결과였다. 게다가 1000명이 넘는 파업 반대 의견의 존재는, 행여 그것이 '조직적 투표' 행위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암울하고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파업 부결 소식에 머리가 진공상태가 되더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고, 그저 가슴 깊은 곳에서 울분만 치솟았다. 소리내 울고 싶었다.

 여러가지 해석이 진행 중이다. '최악의 이병순을 경험한 효과', '수신료 현실화에 대한 기대감', '그를 내몬 뒤 올 더 나쁜 사장 후보자', '강동구 노조가 주도하는 투쟁에 대한 불신'... 어떤 것은 그래도 일견 타당한 듯 보이거나, 그 모든 것이 앞에 내세울만한 변명거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말들로 분노한 시청자들을 달래고, 우리 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자기 위안을 할 수 있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잘 봐줘 봐야 비겁한 핑계다.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만큼 머리들이 나쁘지도 않고, 정상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만큼 시간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파업 투표를 벌였던 그 긴긴 기간동안, 무엇이 자신들과 이 공장이 살 길이라는 고민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시청자와 자신을 기만하기 위한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돼지이기를 자처한거다. 힘없는 자들을 대신해 권력과 싸우는 언론인이기를 포기하고, 권력을 숭상하고 제 배때기만 부르면 그만인 돼지가 되는 편을 선택한 것이다. 공장 곳곳에 살찐 돼지들의 오물 냄새가 진동을 한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떠듦2009. 11. 20. 18:33


 1. 앙리의 핸드볼
 "신의 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지만, 그건 반칙이었다. 현대 축구에서는 심판의 눈을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경기장의 구석 구석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는 전세계 축구팬들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앙리는 엔드라인 바깥으로 막 빠져 나가는 공을 자신의 속도로 어쩌지 못하자 왼손으로 툭 쳐서 방향을 돌려 세운 뒤 크로스를 올렸다. 분명한 반칙일 뿐더러, 명백히 의도적이었다. 그는 심지어 파렴치하게도 골 세리모니까지 펼쳤다. 반성을 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에서조차, 앙리는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앙리는 그렇게 이카루스가 되었다.
 
 아일랜드의 반발은 정당했으나, FIFA는 자신들의 '절대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재경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FIFA의 똥고집은 오히려 자신들의 권위를 갉아먹었다. '부정한 결과'에 납득할만한 사람은, 설사 프랑스 축구팬이라 할지라도 그리 많지 않다.

 98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리자라쥐는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자축 파티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이번 결과를 비판했다. 프랑스의 언론들도 '찜찜한 승리'에 찜찜한 논조를 보이고 있다. 이날 경기를 본 심판 3명의 나라인 스웨덴 역시, 자국 출신 심판들을 비판하며 이 경기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프랑스 체육 교사 협의회의 성명서이다. "부정행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예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례를 남기면,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이 무시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가 한참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스며들게 될 것이며 결국 그것이 자신들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2. '편법 재판소'
 전례는 이미 한국에 있었다. "입법 과정은 위법이나 그렇게 만들어진 법은 유효하다"는 '어불성설'의 식언을, 헌법재판소는 눈 하나 깜빡 않고 전국에 공표해 버렸다. '한국 최고의 사법 결정 기구'라는 국민들이 쥐어준 권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정치권의 눈치나 슬금슬금 보면서 가장 비열하고 가장 비겁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헌재와 그들의 판단은 한낱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위폐는 맞지만 통화는 유효하다"라든가 "컨닝은 맞지만 합격은 유효하다"라는 식의 패러디가 봇물을 이뤘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전국민에게 가치관의 혼란과 허탈함을 안겨줬다. 특히 "이번 헌재 결정은 19금"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생겼다.

 헌법재판관들은 자신들이 대체 대한민국의 미래에 무슨 짓을 하고 말 것인지 몰랐나 보다.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좇는 무자비한 정글의 습성이 한국 사회에 판을 쳐도 이제 할 말이 없게 됐다. 헌재는 기껏 정치적 시비를 벗어나려는 알량한 욕심에 한국의 건강한 미래를 엿바꿔 먹고 말았다. 


3. "You Know Who"
 그리고 이 사람. 이 사람이 사장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그가 사장이 되는 것 자체가 KBS의 미래를 좀먹기 때문이다.

 알려진대로 그는 이병순보다 여러모로 나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기자로서의 경력 면에서나,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 면에서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 면에서나, 그가 이병순보다 월등히 월등하다(사실 그 자신의 월등함보다는, 이병순 개인이 지닌 열등함이 워낙 큰 덕분이겠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최소한의 합리적인 의사소통조차 하지 못하는 이병순보다 그가 월등히 낫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하지만 그것 역시, 싸이코패스적이기까지 했던 이병순의 자폐 성향 때문이지 그의 소통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 배경이 없어 청와대에 충성을 다하려 했던 이병순과 달리, 그는 오히려 소신껏 회사를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물론, 일부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 많은(혹은 전부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난 '최선의 그보다 최악의 이병순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장이 된다는 것은, 앞으로는 특정 정치인에 줄을 댄 노골적일만큼 당파적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KBS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더 나아가 KBS 사장이 되려면 대선 때 유력 정치인에 줄을 대는 것이 쉽다는 인식이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난다면, 선거 때마다 회사 안에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움직임이 더욱 노골화될 것이 분명하다. 독립성이 훼손되고 나면 공정성과 객관성도 날아가는 것이고, 국민을 위한 방송보다는 정치권력을 위한 방송에 더욱 매진하게 될 것이다. '언론사'로서의 위상은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고, 그저 정치권력 눈치나 보며 당파성에 좌우되는 '국영방송사'로 퇴보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전파를 위임한 국민의 이익에도 위배되는 일이며, 한국 사회의 발전도 저해할 일이다. 그가 사장 자리에 앉는 것은, 이 공장의 미래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의 미래도 어둡게 할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과정상의 결정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집권이라는 결과물을 안게 된 MB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