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9.25 [음반] 이길 수 없는 유혹
  2. 2009.05.05 [공연] God bless them, too
만끽!2009. 9. 25. 19:28















 오아시스의 해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의외로 난 담담했다. 음, 뭐랄까, 그저 "올 것이 왔다"는 느낌...? 갤러거 형제의 불화에 따른 해체 시도(?)가 한 두번 있었던 일도 아니었던데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왠지 이 밴드가 결코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4집 이후 그들의 음악에 큰 공감을 할 수 없었던 점도 내 담담함의 이유다. 최근 앨범 <Dig out your soul>에서 다시 옛 명성을 되찾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과거에 받았던 임팩트를 느껴볼 수가 없었다. 이미 내게는 추억으로 먹고 사는 밴드, 해체 결정은 차라리 "박수칠 때 떠나는" 아름다운 뒷 모습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오아시스가 떠남으로써 생길 마음의 허전함을 메워줄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아시스의 전성기 앨범들을 찾아들어도 여전히 허허로울 그 마음을 달래주고 메워주는 밴드, 막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내고 아직까지는 오아시스의 초반 페이스를 그대로 닮은, 바로 카사비안이다. 

 카사비안은 여러모로 오아시스와 닮은 구석이 많은 밴드다. 오아시스가 작곡(노엘)과 보컬(리엄)의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카사비안도 세르지오 피쪼르노와 톰 메이건을 프론트에 내건, 사실상 두 남자의 밴드다. 오아시스가 지나치게 솔직한 입담과 거만함으로 각종 구설수에 올랐던 것처럼, 카사비안 역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철학을 기저에 깔고 할 말 못 할 말 결코 가리지 않는다. 오아시스는 맨체스터의 노동 계급 출신이고, 카사비안은 레스터 지역 노동자의 아들들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카사비안은 오아시스를 좋아라 하고 오아시스는 카사비안을 이뻐라 한다. 

 그렇지만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같이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 면에서, 카사비안은 오아시스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가령 밴드 이름부터, 이들은 연쇄 살인 그룹 '맨슨 패밀리'의 일원으로부터 따오는 대범함(?)을 자랑한다. 이유는? 그냥 어감이 좋아서란다. 새 앨범의 제목 <West Ryder Pauper Lunatic Asylum> 역시 지금은 사라진 실제 정신 병원의 이름에서 가져와 지었다. "수록된 노래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정신병원의 환자를 환기하는 느낌으로 귀에 전해지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란다. 대놓고 드러내는 음침함, 마이너리티의 기운, 그게 뭐 어떠냐는 투의 자신감 또는 건방짐은 이들의 음악에도 거침없이 강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음악 시장과 심지어 청자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제멋대로의 음악은 오히려 강한 중독성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입가에 찰싹 들러붙는 멜로디 라인, 몸을 가만히 가눌 수 없게 만드는 리듬감, 환각에 빠지게 할 만큼의 톡톡 튀는 전개는 그들의 음악에 그만 함락되고 말도록 만든다. 
 
 놀라운 것은, 이제쯤이면 그 흔한 '자기 표절'도 있을 법 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이것은 카사비안 음악"이라고 일컬을만한 비슷한 멜로디라인도 중복되지 않는다. 모든 노래들이 각각의 개성 강한 향취를 갖고 있고 그래서 그 나름대로 모두 빛이 난다. 그러고 나니 앨범 자체의 무게가 값 나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친숙해지기는 단연 첫 번째 트랙 'Underdog'이지만, 서서히 스며들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리기는 'Vlad the Impaler'의 중독성이 더 강한 것 같다. 드라큐라 백작의 본명이라는데, 제목이 주는 이미지 그대로 노래 역시 사람을 '보내 버린다'. 빵 터지게 만드는 'Fire'나 남미풍의 'Thick as Thieves', 그리고 'Ladies & Gentleman, Roll the Dice'도 각각 치명적인 중독성을 보유하고 있다.

 오아시스와 달리(!) 이들은 비주얼도 되는 친구들이다. 싸가지 없어 보이기로는 웨인 루니보다도 더한 '악동 카리스마' 톰 메이건과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냉혈 카리스마'의 써지는 기럭지부터가 남다르다. 게다가 옷도 '엣지'있게 입을 줄 안다. 실은 외모에서부터, 이기적이고 재수 없어질 수밖에 없는 놈들인 것이다. 비주얼이 돼서 그런지 몰라도, 뮤직비디오가 곡의 매력을 도리어 깎아먹곤 했던 오아시스와 달리(!!), 카사비안은 뮤직비디오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그들의 유혹이 치명적인 데에는 눈에 보이는 모습도 큰 몫을 하는 셈이다. 

the best track : Vlad the Impaler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09. 5. 5. 23:23

 서울을 떠난 뒤 노엘의 한 마디. "Who'd have thought it(누가 그럴 줄 생각이나 했겠나)?" 한국 놈들이 그렇게 미쳐 날 뛸 줄 자신은 미처 몰랐다는 얘기다. 그들의 팬을 자부한지 어언 14년이건만, 반성한다, 나 역시 그럴 줄 생각하지 못 했다. 예매가 오픈했을 때 스탠딩을 사수하지 않고 그만 좌석으로 내 빼고 만 것이다.

 나름 합당한 이유가 없진 않다. 2006년 서울 공연 때, 그만 두 다리에 쥐가 내리는 경험을 하고는 30대 중반의 저질 체력에 스탠딩은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한 거다. 아, 미안하다, 한낱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그 뒤 2007년 린킨파크 공연 때도 난 스탠딩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대로 고하자면, 그 린킨파크 공연이 내게 준 감흥이 그랬다. 2003년 린킨파크의 첫 공연 때보다 두 번째 공연은 여간 밍숭맹숭한 게 아니더라. 공연의 재미도 떨어졌고, 스탠딩의 열기도 첫 공연만 못했다. 그 때 난 생각했다. 한국인들의, 혹은 나의 열광은 그 밴드들이 우리나라를 모처럼 찾아 왔다는 사실에서 극단적으로 폭발한 게 아니었겠냐고.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다음 공연에도 찾아 오게 만들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몸짓이 아니었겠느냐고. 그래서, 오아시스의 두 번째 서울 방문도 첫 공연 때의 위대했던 감동을 감히(!)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라고, 난 생각했던 거다.

 다시 노엘의 한 마디. "The stand-out gig of the whole tour so far(지금까지 투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공연이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내게도 2009년 4월 1일의 공연은, 가장 뛰어난 무대였다. 리엄은 "crazy"를 연발했고, 노엘은 "special song for Korea"를 불러줬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탠딩의 군중들은, 거의 좀비 같았다. 좌석에서 내려다 본 그들은 쉬는 걸 모르는 듯 했다. 나 역시 의자에 앉지 못하고 시종일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 애썼지만, 스탠딩의 열기를 따라갈 수야 없었다. 내 주변 객석 관중들 가운데는 아 글쎄, 미동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팔짱만 끼고 무표정하게 무대를 응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스탠딩 좀비들은 끊임없이 뛰고 끊임없이 노래 부르고 끊임없이 갈채를 보냈다. 내가 보기에도 사랑스러울 정도였으니, 무대 위에서 그 광경을 본 갤러거 형제는 오죽했겠나.

 3년 전 공연에서의 하이라이트는 'Cigarettes and Alcohol'과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부를 때였다. 공연 실황 DVD에서나 보던 밴드와 관객의 혼연일체를 우리는 그때 고스란히 재연했던 것이다. 하이라이트로 삼을만한 노래는 역시 두 곡 정도일거야, 올해에도 역시 하이라이트는 두 노래에서의 떼창과 광란의 몸부림일테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공연은 진화했다.

 물론 'Cigarettes and Alcohol'에서도 관객들의 호응도는 대단히 컸다. 초반 마구 달리는 셋 리스트에 맞춰 그 때만 해도 최고의 열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내 'Morning Glory'가 그 자리를 빼앗았다. 후렴구 "need a little time to wake up!"에서의 관중들의 하늘을 찌르는 함성과 코러스, 그리고 집단발광은 전율을 불러오기 충분할 만큼이었다. 
 
 '위대한 합창'의 대상도 바뀌었다. 셋 리스트 상 'Don't Look back in Anger'가 첫 번째 앵콜곡으로 알려져 있던 터여서, 관객들은 이미 떼창을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마지막 노래 'Supersonic'을 마친 뒤, 스탠딩 앞쪽 관중들이, 오아시스 팬 카페에서의 어느 누군가의 제안대로 앵콜 연호 대신 'Live Forever'를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Live Forever'가 셋 리스트에서 빠져 있다는 사실에 서운해 하던 차에 누군가 고안해 낸 것이었는데, 그 노래를 들었던 건지 노엘이 홀로 기타를 메고 나오더니 특별 앵콜곡이라며 'Live Forever'를 부르겠다는 게 아닌가. 예상치 못한 선물에 모두가 감격했고, 그래서 따라부르는 'Live Forever'는 더 깊고 멀리 울려퍼질 수밖에 없었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런 감동의 정점에 이미 이르고 말았으니, 아무리 준비된 떼창이라고 하더라도 'Don't Look back in Anger'에서의 합창은 그 위대함이 다소 눌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리지널 곡이 아니라 어쿠스틱하게 편곡했던 것도 아마 분위기 상승을 억제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항상 대미를 커버곡으로 장식하는 오아시스는 마지막 노래로 비틀즈의 'I am the Walrus'를 부르고 내려갔다. 리엄은 흥분한 나머지 스탠딩 앞쪽으로 내려가 맨 앞줄 사람들과 일일이 손 터치를 했다고 한다. 이 역시 다른 세계 투어에서 흔히 있지 않았던 일이다. 갤러거 형제는 공연 열기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노엘이 남긴 마지막 말 한마디. "God bless them South Korean kids(한국 애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나 역시 그 말을 받아 전한다. 일생일대 최고의 무대를 업데이트 시켜준 오아시스에게도, 부디 신의 축복이 있기를.

calvin.

set list
Fuckin' In The Bushes
Rock 'N' Roll Star
Lyla
The Shock Of The Lightning
Cigarettes & Alcohol
The Meaning Of Soul
To Be Where There's Life
Waiting For The Rapture
The Masterplan
Songbird
Slide Away
Morning Glory
Ain't Got Nothin'
The Importance Of Being Idle
I'm Outta Time
Wonderwall
Supersonic
------- encore ----------
Live Forever
Don't Look Back In Anger

Falling Down
Champagne Supernova
I Am The Walrus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