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2007. 11. 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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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에서는 완기 형 댁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런던 시내까지 30여 분 걸리는 거리의 Morden이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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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동네는 그야말로 딱 주택가처럼 생겨먹어서 전통적인 영국식 가옥들이 따닥따닥 붙어 즐비했다. 완기 형네 집도 전통적인 영국식 가옥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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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도 1층에 거실과 부엌, 화장실이 2층에 방들이 있는 전형적인 구조였다. 미국 집들과 유사한 모습이었는데 단지 미국 집에 있던 지하실이 없었다는 점이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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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번으로 나와 네 학번 차이인 완기 형은 학교 다닐 때 명석함으로 치면 우리 과에서 첫 손가락에 드는 형이었다. 날카로움과 깊이있는 식견으로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았더랬다. 한국에서 석사까지 마친 뒤 멀쩡히 직장을 다니다 가족들과 함께 돌연 런던으로 박사 과정을 밟으러 온지 벌써 5년째다. 그동안 학교를 옮겨야 했던 사정이며 물가 자체가 목줄을 죄는 영국에서의 힘들었던 생활 얘기에 첫날 밤은 아무래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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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에 있는 완기 형의 서재. 책 냄새가 물씬 나는, 공부하는 사람의 방이다. 한참 마르크시즘을 공부했던 형은 공부했던 폭을 넓혀서, 금융 자본이 문화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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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가는 길에 읽었던 책에선 영국 속담 가운데 찢어지게 가난한 처지를 일컫는 말로 정원 한 뙈기도 없는 설움을 읊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영국 사람들이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다는 뜻이었는데, 완기 형 집에도 아담한 크기의 정원이 부엌 문 뒤쪽으로 하나 있었다. 정원은 이쁘고 정말 좋아 보였다. 문을 열고 보자마자 드는 일천한 생각이란, "여기서 삼겹살 파티하면 좋겠다!" 뿐이었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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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기 형네 집에서 몸을 뉘였던 곳은 형의 외동딸인 주현이의 방이었다. 목조 2층 침대의 2층에서 잠을 청했고, 그 동안 주현이는 엄마 아빠랑 자야 했다. 여행경비 절감도 절감이었지만, 가족처럼 돌봐 주신 완기 형 가족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서늘하지 않게, 포근히 지낼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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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이로 8살, 영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던 주현이는 생면부지의(사실 처음 본 것은 애가 3살 때쯤이었지만 기억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으므로) 난데없이 기어 들어온 '삼촌'에게 방을 빼앗기고 엄마 아빠랑 같이 자야 했는데 아무런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살갑게 대해주기까지 했다. 그건 이 아이의 천성 때문이기도 했는데, 가정 자체가 사랑이 넘쳤던 까닭인지 몰라도 한결같이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인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앞으로도 모자람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7. 11. 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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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10시 20분 비행기를 타자면 8시 20분까지는 도착해야 하고, 공항까지 넉넉히 도착하려면 집에선 6시쯤 나서야 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여행나설 수 있는 여유있는 비행기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셈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공항에 도착한 뒤 프린트해간 e-티켓을 내놓으며 캐세이퍼시픽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자 보딩 패스 두 장을 준다. 하나는 인천에서 홍콩까지, 또 하나는 홍콩에서 런던까지 가는 비행기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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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는 곳. 인천 국제공항 39번 게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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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행 비행기에서 바라본 한반도 상공. 1주일동안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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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까지의 지루한 비행 시간을 견디게 해줄 친구들. 책과 음악이다. <영국, 바뀌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라는 책은 여행 지침서는 아니다. 캠브리지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저자들이 영국에서 살며 느꼈던 점들을 써놓은 에세이였는데, 가볍게 영국에 대한 사전 정보를 취하거나 가볼만한 곳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의외의 도움을 얻었다. 잡지에서 글을 썼던 저자의 경력대로 글을 술술 잘 읽히도록 재미나게 써서 장거리 비행 시간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짐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이 책 하나 달랑 들고 갔는데 너무 잘 읽히는 탓에 런던행 비행기에서 다 읽어 버려서 정작 돌아올 때의 무료함을 달랠 방법이 난감한 상황을 맞긴 했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주구장창 음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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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갈아타는 것에 대해 살짝 걱정을 했는데, 그럴 필요 없었다. 안내표지만 잘 따라가면 만사 오케이. 한글이 사라지고 한자와 영어 뿐이라는 점에서 이곳이 다름아닌 홍콩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을 뿐, 공항 밖에 나서 보지 않은 바에야 홍콩인지 어딘지 알 게 뭐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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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편을 고르는 데 있어서 주안점을 둔 것은 가격과 함께 환승 대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였다. 중간 기착지에서 따로 여행을 할 것도 아닌 바에야 10시간씩 머물 이유가 없었다 (사실 그 생각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 혼자 홍콩에서 놀 게 별로 없을 것이라는 주변의 지적에 따라 깨끗이 포기했다). 다행히 최단 체류 시간의 비행편을 구할 수 있었고, 홍콩(정확히는 홍콩 공항)에는 갈 때 1시간 반 남짓, 올 때 2시간 남짓 머물렀을 뿐이었다.

 서울에서 3시간 걸려 도착한 뒤, 다시 홍콩에서 런던까지 가는 비행기를 탄 홍콩국제공항 2번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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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자리를 내가 정할 수도 있어서 장거리인 홍콩-런던 간 비행기에서의 자리는 다리를 비교적 길게 뻗을 수 있게 중간 화장실 바로 뒤쪽을 선택했다. 문제는 이 자리가 아기 바구니를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 사용도 가능한 곳이었다는 점이었다. 내 옆 자리에 홍콩 여행을 마친 듯한 가족들이 앉았는데 어린 아이도 하나 있었다. 가는 내내 애가 보채고 울고 하는 바람에, 편한 자리는 커녕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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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 앞서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가 담긴 블로그를 통해서 캐세이퍼시픽은 엽서를 부탁하면 가져다 주고 심지어 부쳐주는 서비스까지 해준다는 점을 알게 됐다. 오호. 요거 괜찮은 서비스인걸? 하고는, 나도 승무원에게 "포스트카드"를 달라고 그랬다. 알겠다며 돌아가 한참 뒤에 돌아온 관지림을 닮은 홍콩 승무원은, 봉투가 포함된 편지지와 "카드"를 같이 가져왔다. 포스트카드가 없었던 모양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카드"를 대신 가져 온 것은 완전 넌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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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시간을 들여 날아온 끝에 모니터 지도에 나온 반가운 브리튼 섬. 잠시 뒤 도착할 것이란 기장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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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 시각 밤 9시가 채 안 돼 런던 Heathrow공항 3터미널에 도착.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반기는 웰컴 투 런던 가이드 북. 반가운 마음에 영국 도착 일성으로 기록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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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Heathrow공항은 작고 낡았다. 오래돼서 그랬겠지만 휘황찬란하고 큼지막했던 인천이나 홍콩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여 놀랐다. 그래도 수도 런던의 관문인데 말이지.
 
 입국심사는 소문대로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헐렁하지도 않았다. 왜 왔냐? 여행과 축구 즐기려구. 얼마나 있을 거냐? 내일부터 일 주일. 어느 팀 경기냐? 맨체스터유나이티드다. 언제 열리냐? 27일 토요일이다. 상대가 어디냐? 미들스브로다. 뭐 이정도의 질의응답 과정을 마친 뒤에야 여권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예정된 도착 시간보다 20여 분 정도 빨리 도착한 셈. 공항에서 새벽시간임에 분명한 한국에 도착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아뿔싸, 영국에서 국제전화 거는 방법을 알아오지 못했던 거다. 전화통을 붙잡고 헤매고 있는 사이, 뒤에서 날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런던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완기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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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기 형 덕분에 런던 공항에서 길잃은 어린 한국 양이 될 처지를 면하고 일단 완기 형 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테스코에 들러 맥주를 좀 산 뒤, 밤 늦게까지 완기 형과 그동안 미뤘던 얘기들을 풀어놓는 것으로 영국에서의 첫 날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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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7. 11. 3.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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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은 England의 발음인 [잉글랜드]를 자기네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중국인들이 제 방식으로 만든 이름이다. 강세가 찍힌 '잉' 발음에 가장 가까운 중국어인 英과 나라를 뜻하는 國을 합쳐 조합한 것이었고 같은 한자 문화권인 우리가 그대로 가져와 입때껏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영국'이라 일컫는 나라는 사실 애초 그 이름이 한정하고 있는 '잉글랜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잉글랜드를 비롯해 네 지역이 포함된 연방 국가인 이 나라의 공식 국호는 the United Kingdom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라고 한다니, 우리 식대로 바꿔 부르자면 '대 브리튼과 북 아일랜드 연합 왕국'쯤이 될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약칭 United Kingdom으로 불러 준다 하더라도 '연합 왕국'이 이 나라를 일컫는 가장 정확한 국호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 나라는 우리가 쓰는 '영국'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좀체 그려지지 않는 나라다. 영국은 '영국'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지명이 가리키는 범주 면에서나 지나온 역사 면에서 훨씬 더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갖다 붙여진 "꽃부리 나라"라는 의미 역시,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뜻 삼는 것만큼이나 부적합하다.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난, " 영국에 간다"는 말이 담는 그릇이 너무나도 비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나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서의 언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 오늘날 전 지구를 가혹한 정글의 법칙으로 내몬 자본주의 체제를 태동해 발전시키고 확립시킨 나라, 제국주의를 앞세워 식민지 쟁탈전을 유행시키고 그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며 힘없는 나라들을 수탈했던 나라, 아직도 왕이 군림하고 심지어 한 때 공화제 혁명을 성공시키고도 공화정을 포기하고 다시 왕을 불러 들여 떠받든 나라,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면서 세계 체제의 헤게모니를 계속해서 쥐고 있는 나라, 제국주의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뒤에는 더벅머리 네 청년들의 음악으로 세계를 평정하고 이제는 오각과 육각 모양의 천을 기워 만든 공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나라...  이런 나라를 어떻게 '영국'이라는 가벼운 이름으로 단박에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일찌기 홍세화 씨는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 런던의 템즈강은 무엇을 가를까? 영국은 어떤 곳이고 영국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나라는 무엇으로부터 움직이나? 무엇이 이 작은 섬 나라가 감히 세계를 뒤흔들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내 머릿 속에 맴돌던 질문은 그런 것이었다. 비록 짧은 1주일동안 고작 세 개의 도시를 돌아보는 일정이었기에 많은 답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책상 머리에 앉아서 영국에 대해 쓴 책들을 읽어대는 것보다는 훨씬 더 그 나라를 알아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기회였다.
 
 프리미어 리그와 비틀즈, 오아시스로 대변되는 '친근함'과 억압-수탈 그리고 제국의 역사가 주는 '거부감'을 동시에 주는 이 나라에서 7일 동안 살면서, 난 템즈강이 신분을 가른다고 생각했다. 왕과 귀족 평민을 가르고, 자본가와 노동자를 나누고, 빈부 차이를 뚜렷이 하며, 영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한다고 봤다. 런던에서 신세를 졌던 완기 형 역시 5년간의 영국 생활 속에서 일상 속의 제국주의가 여전함을 체감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템즈강은 또한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왕을 유지시키고 신분의 구분을 여전히 안고 있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이 나라는 역동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은 채 지나온 것들을 지키는 데 힘을 쏟고 있었다. 그것은 내게 전통을 귀하게 여기는 것임과 동시에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산업혁명 시기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나라가 다름아닌 영국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모습은 흡사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며 골동품을 애지중지 껴안고 사는 노인네의 품새다.

 음악과 축구로 대변되는 영국의 문화는 체제를 공고히 해주는 기제이기도 하다. 노동 계급 소년의 dream comes true 스토리를 다룬 뮤지컬에서조차 자본의 뛰어난 먹성은 또렷이 확인됐다. 주말에 축구 경기 하나에 목을 매며 1주일 동안의 스트레스와 근심걱정을 날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영국 사람들을 보면서 스포츠가 우민화 정책의 하나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도 있었다.  7일 동안만으로도 온몸으로 충분히 체험할 수 있었던 '살인 물가'는, 이 나라가 가혹하게 편제한 질서 속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삶이 버거운 나라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국은 큰 나라였다. 역사가 찬란했던만큼 볼 것도 많았고 즐길 것도 많았다. 입이 떡 벌어지게 오래되고 웅장한 건물들과 동상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는 즐겁고 또 부러웠으며, 비틀즈의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경험도 영광스러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난 우리 나라가 영국과 같지 않아서 좋았다. 작은 보폭이나마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왔고 또 지향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옛것을 무지막지하게 폐기처분해 온 것은 영국과 견주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은 또한 그만큼 부단한 변화의 욕구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돌아와서 바라본 한강은 템즈강보다 훨씬 컸다. 물이 더 깨끗한지 경관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크기 차이가 나는만큼 최소한 더 빠르게 흐르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