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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3 구리 아파트 2
  2. 2007.11.03 템즈 강은 무엇을 가르나? 6
  3. 2007.09.21 살과의 권투 14
얄라리얄라2008. 4. 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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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리시청 홈페이지에는 구리 지명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제 시대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옛 지명 구지면의 '구'와 망우리면의 '리'를 합해 구리면을 만들었고 그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지명인 구지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한데, 육지가 강으로 돌출한 곳을 뜻하는 '곶'이 '고지'로 불리고 이게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구지'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구리시는 서울 바깥 쪽, 한강 상류에 위치해 있는 참이다.

 구리로 이사를 갔다. 벌써 한 달도 전의 일이다.

 서울 집에서 광장동을 경유해 조금만 나아가면 구리가 나오는데, 부모님은 이 곳이 지리적으로나 생활 조건면으로나 유리하다고 생각해 5년전 쯤 아파트를 분양받았었다. 그간 전세를 놨더랬는데, 이번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그 아파트로 전격 입주한 것이다.
 
 사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막 올린 새 집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남에게 내줘야 하는 것에 대해 진작부터 아쉬워 했더랬고, 그 동안에도 틈틈이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불쑥 불쑥 피력하긴 했었지만, 모두 희망이 섞인 '말'들에 불과했다. 마음같지 않은 여건 탓에 '행동'으로는 이어질 일이 도무지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5년동안 희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그 '여건'이 달라진 것은 (결단코) 아니었지만, 이번엔 부모님의 결단과 실천력이 견고했다. 결정을 내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일을 추진했다. 이사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걸림돌이 될만한 조건들은 그냥 사뿐히 즈려 밟는 민첩한 추진력이었다. 그 덕에 내가 잠시 멍한 기분이 드는 사이만에 이사는 완료되었다.

 이사 논의 단계에서부터 좀 이상한 이사라고 생각했던 나로선, 한 달 넘게 새 집에서 지내는 와중에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가뜩이나 집과 회사 사이의 거리가 멀었는데 더 멀어져 버렸다. 기름값 부담도 커지고 이동 시간도 더 계산해 줘야 한다. 지금이야 내근 부서라 감당할 만 하지만, 취재 부서에 나간 다음이 걱정이다. 대중교통 이용 방법이 낯설어 차량 사용 빈도도 더 많아졌다. 동네나 집 주변 환경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구리에서 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이사는 '두 집 살림'을 전제로 한 '무모한 이사'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서울 집에 그대로 남게 되었고, 나머지 가족들만 구리로 옮겨간 것이다.

 서울 집은 서울 집대로 그대로 남겨둔 채 구리에 또다른 살림을 벌였다는 말이다. 때문에 냉장고와 세탁기와 가구와 소파 등 많은 세간 살이를 모조리 새로 사다 채워놓아야 했다. 어머니는 한 달에 두번 씩 주말에만 구리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가정이 절단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이혼이나 별거 상태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저간의 사정은 이러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집은 어머니가 치는 하숙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참이었는데, 당장 어머니가 하숙을 그만 두시면 소득의 대부분이 끊기는 상황이다 보니 서울 집을 팔아 치우고 소득이 없는 아파트에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정 탓에 구리 아파트로 이사를 언감생심 희망만 해 왔던 것이었는데, 더 늦어지면 영영 비좁은 서울 집을 벗어날 수 없겠다 싶었는지 부모님은 마침내 '두 집 살림'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사를 감행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넓은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것은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오랜 '로망'이었다. 여건이 좋아졌다면 지긋지긋한 하숙을 그만 두고 꿈 꿔오신 대로 다 함께 오손도손 살았겠지만, 그러자면 또한 자식들이 출가한 다음 쯤이 되기 때문에 이룰 수 없는 희망 사항이 되고 말 터였다. 그런 저런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지금만이 유일한 기회라고 여기신 모양이었다. 어머니에게는 겨우 한 달에 두어번 그것도 주말에나 이뤄지는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로망을 현실화 한 것이다. 당장 내가 겪는 불편에 대한 불만 따위는 잠시 접어둬야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7. 11. 3.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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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은 England의 발음인 [잉글랜드]를 자기네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중국인들이 제 방식으로 만든 이름이다. 강세가 찍힌 '잉' 발음에 가장 가까운 중국어인 英과 나라를 뜻하는 國을 합쳐 조합한 것이었고 같은 한자 문화권인 우리가 그대로 가져와 입때껏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영국'이라 일컫는 나라는 사실 애초 그 이름이 한정하고 있는 '잉글랜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잉글랜드를 비롯해 네 지역이 포함된 연방 국가인 이 나라의 공식 국호는 the United Kingdom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라고 한다니, 우리 식대로 바꿔 부르자면 '대 브리튼과 북 아일랜드 연합 왕국'쯤이 될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약칭 United Kingdom으로 불러 준다 하더라도 '연합 왕국'이 이 나라를 일컫는 가장 정확한 국호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 나라는 우리가 쓰는 '영국'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좀체 그려지지 않는 나라다. 영국은 '영국'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지명이 가리키는 범주 면에서나 지나온 역사 면에서 훨씬 더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갖다 붙여진 "꽃부리 나라"라는 의미 역시,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뜻 삼는 것만큼이나 부적합하다.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난, " 영국에 간다"는 말이 담는 그릇이 너무나도 비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나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서의 언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 오늘날 전 지구를 가혹한 정글의 법칙으로 내몬 자본주의 체제를 태동해 발전시키고 확립시킨 나라, 제국주의를 앞세워 식민지 쟁탈전을 유행시키고 그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며 힘없는 나라들을 수탈했던 나라, 아직도 왕이 군림하고 심지어 한 때 공화제 혁명을 성공시키고도 공화정을 포기하고 다시 왕을 불러 들여 떠받든 나라,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면서 세계 체제의 헤게모니를 계속해서 쥐고 있는 나라, 제국주의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뒤에는 더벅머리 네 청년들의 음악으로 세계를 평정하고 이제는 오각과 육각 모양의 천을 기워 만든 공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나라...  이런 나라를 어떻게 '영국'이라는 가벼운 이름으로 단박에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일찌기 홍세화 씨는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 런던의 템즈강은 무엇을 가를까? 영국은 어떤 곳이고 영국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나라는 무엇으로부터 움직이나? 무엇이 이 작은 섬 나라가 감히 세계를 뒤흔들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내 머릿 속에 맴돌던 질문은 그런 것이었다. 비록 짧은 1주일동안 고작 세 개의 도시를 돌아보는 일정이었기에 많은 답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책상 머리에 앉아서 영국에 대해 쓴 책들을 읽어대는 것보다는 훨씬 더 그 나라를 알아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기회였다.
 
 프리미어 리그와 비틀즈, 오아시스로 대변되는 '친근함'과 억압-수탈 그리고 제국의 역사가 주는 '거부감'을 동시에 주는 이 나라에서 7일 동안 살면서, 난 템즈강이 신분을 가른다고 생각했다. 왕과 귀족 평민을 가르고, 자본가와 노동자를 나누고, 빈부 차이를 뚜렷이 하며, 영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한다고 봤다. 런던에서 신세를 졌던 완기 형 역시 5년간의 영국 생활 속에서 일상 속의 제국주의가 여전함을 체감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템즈강은 또한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왕을 유지시키고 신분의 구분을 여전히 안고 있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이 나라는 역동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은 채 지나온 것들을 지키는 데 힘을 쏟고 있었다. 그것은 내게 전통을 귀하게 여기는 것임과 동시에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산업혁명 시기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나라가 다름아닌 영국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모습은 흡사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며 골동품을 애지중지 껴안고 사는 노인네의 품새다.

 음악과 축구로 대변되는 영국의 문화는 체제를 공고히 해주는 기제이기도 하다. 노동 계급 소년의 dream comes true 스토리를 다룬 뮤지컬에서조차 자본의 뛰어난 먹성은 또렷이 확인됐다. 주말에 축구 경기 하나에 목을 매며 1주일 동안의 스트레스와 근심걱정을 날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영국 사람들을 보면서 스포츠가 우민화 정책의 하나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도 있었다.  7일 동안만으로도 온몸으로 충분히 체험할 수 있었던 '살인 물가'는, 이 나라가 가혹하게 편제한 질서 속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삶이 버거운 나라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국은 큰 나라였다. 역사가 찬란했던만큼 볼 것도 많았고 즐길 것도 많았다. 입이 떡 벌어지게 오래되고 웅장한 건물들과 동상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는 즐겁고 또 부러웠으며, 비틀즈의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경험도 영광스러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난 우리 나라가 영국과 같지 않아서 좋았다. 작은 보폭이나마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왔고 또 지향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옛것을 무지막지하게 폐기처분해 온 것은 영국과 견주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은 또한 그만큼 부단한 변화의 욕구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돌아와서 바라본 한강은 템즈강보다 훨씬 컸다. 물이 더 깨끗한지 경관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크기 차이가 나는만큼 최소한 더 빠르게 흐르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7. 9. 21. 13:19
영화 <주먹이 운다> 중에서

영화 <주먹이 운다> 중에서


 밥이래 봐야 기껏 하루에 두 끼밖에 안 먹고, 밤에 약속을 잡을 수 없어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데 배 둘레에 자꾸 '햄'이 끼는 걸 보니 이건 아무래도 '잠살'인 게 분명하다. 어느 날 비교적 몸에 들러붙어 몸통 라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셔츠를 입고 거울을 봤다 기겁을 하고 말았다. 어린이 시절부터 함께 해온 뱃살은 '숨 최대한 곱게 쉬기'로 어떻게 감출 수가 있다지만, 옆구리에 불쑥 튀어나와 늘어진 살은 아무래도 어쩌지 못하겠는 거다.

 운동은 내근부서 들어오면서 진작 세웠던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그게 3일짜리로 끝나고 말았던 건, 순전히 운동하러 가야하는 곳이 멀었던 탓이었다(고 난 주장한다). 땀 흘리러 운동하러 가는건데, 가는 동안 땀 흘리고 오느라 땀 흘리는 게 참 번거롭다고 생각한 거다(고 난 둘러대 본다). 좀 아이러닉하긴 하지만, 운동하러 가느라 몸을 움직이는 게 상당히 귀찮았던 셈이다(고 변명한다).

 다시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권투 체육관'을 찾은 건 오로지 그 한 가지 이유때문이었다. 챔피언벨트에 대한 욕심은 커녕 주먹질에 대한 열망조차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막상 운동을 이제는 정말로 해야겠다고 생각하자 집에서 2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동네 권투 체육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피트니스 클럽은 아무래도 좀 멀고, 그냥 건대 운동장에서 뜀박질만 하기도 좀 그렇고, 무언가 동기 부여를 주기까지 하면서 땀을 흘릴 수 있는 곳으로 이 체육관은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권투 체육관에 기대한 것은 '권투'라기 보다는 '체육관'이었던 것이다.

 권투 체육관에 들어서자 진작 예상했던 예의 그 퀴퀴한 냄새가 나를 반겼다. 사람이 운동하는 냄새다. '사각의 링'이 있었고 마룻바닥이 있었고 샌드백과 펀치볼이 있었고 각종 운동기구들이 있었으며 3면을 둘러싼 거울이 있었다. 젊은 친구 서넛은 각자 운동을 하고 있었다. 주먹이 이따만하고 앞니 하나가 부러진 채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기던 사범님은 입관비와 한 달 회비를 내자 한결 더 순박해진 웃음으로 나를 대했다.

 체육관에는 쉴새없이 공이 울린다. 3분마다 한 번 씩, 그리고 다시 30초마다 한 번 씩이다. 1라운드는 3분이고 시합이 아닌만큼 쉬는 시간은 30초라는 얘기다. 여기선 따라서 모든 시간 관념이 "라운드"로 통칭된다. 초기 운동은 스트레칭-줄넘기-스트레이트-윗몸일으키기-스텝밟기-근력운동-줄넘기 순으로 진행되는데, 각각 정해진 시간이 있다. 첫날엔 각각 2라운드 씩만 했지만 보통은 줄넘기 3라운드, 스텝밟기는 7라운드를 뛰어야 한다. 1라운드의 3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그 시간동안 뛰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30초가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역시 곧 3분을 뛰게될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정해진 운동 순서와 정해진 시간이 있다 보니 적당히 한 시간만 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운동만 해도 1시간 30분은 꼬박 하게 된다. 줄넘기든 스텝밟기든 쉴새없이 뛰는 운동이기 때문에 애초 내가 운동을 시작한 기대에도 부응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옛날 옛적 선수 키워낼 때처럼 엄격하진 않더라도 사범님이 수시로 자세를 체크해주는 등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조금 힘들다고 그만두게 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몸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에겐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건은 꾸준함이다. 일단 6개월정도 다니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주먹질에 욕심이 없다손 치더라도 꾸준히만 하면 신인왕은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 작은 타이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 보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차라리 덤일 것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