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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1 이웃의 섬나라
  2. 2009.05.28 노짱과 노빠 2
  3. 2009.01.29 파업 전야 4
얄라리얄라2009. 12. 1. 23:01

 검은 머리와 노란 피부, 한자 문화권. 그 외에는 공통점이라고는 없다. 일본과 우리는 비슷하다기 보다는 다른 게 더 많았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백제 유목민이 건너가 만든 나라니, 36년 식민 통치가 있었던 관계니 하는 건 다 쓰잘데기 없는 말이었다.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을 배려한 한글 표지판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는 점을 빼고는 이웃이라는 느낌도 생소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은 괜한 게 아니었다. 말하자면 같은 동북아 나라라는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이 훨씬 더 깊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일본은 일본이고, 우리는 우리다.
 
 그 간극은 메우려 한다고 해서 메워질 게 아니다. 애써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차라리 다름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 터였다.

 일본은 큰 나라였다. 세계에서 중국과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우스개 얘기도 있지만, 정말 우리가 쉽게 경쟁상대로 견주거나 넘볼 수 있는 상대는 분명 아니었다. 초고속으로 일군 우리의 경우와 달리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온 근대화의 기본기가 상당히 탄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밟히는 곳곳에서 우리에게 없는 저력이 느껴졌다. 우리로선 겸손한 자세로 더 배워야 할 일이다.

 첫번 째 결혼기념일을 자축하기 위해, 그리고 아껴먹으려 챙겨뒀던 휴가를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어 일본을 다녀왔다.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한 번도 스스로 가보려 했던 적은 없었다.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관심 쏠리는 면이 전혀 없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부러 찾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려자가 아니었다면, 출장으로 가게 되기 전엔, 평생 이 섬나라 땅을 밟아볼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정권의 낙하산 투하로 회사가 어수선한 상황을 맞닥드려 여행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1년 전에도 내가 몸담은 프로그램의 존폐 위기 속에서 여행을 해야 했는데, 이래서야 맘 편히 여행 계획도 짜지 못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다.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공부가 되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매진케 하는 데 힘이 되어줄 것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9. 5. 28. 17:55

 나는 조롱이 섞인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 한사코 그렇지 않다고 해왔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를 '노빠'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정서 역시, '비판적 지지자' 쪽 보다는 '노빠'쪽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나는 그를 참 좋아했고, 지지했으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지지하게 했고, 그를 두둔했는가 하면, 그래서 더러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더랬다. 그런 점에서, 이제사 고백하지만, 그래, 난 '노빠'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 2000년 총선 직전까지, 나 역시 그의 다른 팬들이 그러했듯, 그를 잘 알지 못했다. 청문회 스타, 전두환에게 경망스럽게도 명패를 집어던진 의원,  그리고 부산 시장 출마 당시 DJ의 정계 복귀를 노골적으로 불평했던 사람 정도? 그랬는데 그가 총선에서 부산에 그것도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냥 그때 차지하고 있던 지역구만 잘 관리해도 재선은 쉽게 될 수 있던 상황, 게다가 그 지역구는 다름 아닌 '정치 1번지' 종로가 아니었던가. 이상하고 무모한 도전을 한다 여기면서도 그의 도전이 어찌될까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총선이 끝나고 난 뒤, 총선 연대의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의원들 가운데 누가 붙고 누가 떨어졌나가 온통 관심사였던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노무현의 낙선 소식을 접했다. 난 충격과 감동에 빠졌다.

 그래서 처음 찾아 들어간 그의 홈페이지 노하우. 게시판에는 이미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격려하고 있었다. 그는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로 사람들을 더 감동시켰다. '바보 노무현'은 그렇게 나왔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라는 괴물을 잡가 죽이기 위해 자신이 쥐고 있는 걸 과감히 내던질 줄 아는 사람, 이 정도 사람이라면 희망을 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터넷 게시판 여기 저기를 쏘아다니며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가치를 알리는데 한동안 혈안이 됐다. 나같은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한 두 차례 모이더니 급기야 팬클럽을 꾸렸다. 노사모는 한국 정치사 최초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정치인 팬클럽이자, 다른 아류 팬클럽과 달리 누군가를 증오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정치인을 그야말로 사랑해서 만들어진 팬클럽이었다.

 노무현 바람은 돈과 줄세우기, 지역 할거식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솔솔 불고 있었다. <한겨레21>에서 2년 연속으로 노무현이 차세대 리더로 꼽힌 것은 그러한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였다. 노풍의 전조랄까? 하지만 언론계를 포함한 식자층에서 노무현은 차기 주자로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잘 알고 지내던 한겨레 기자도, 노무현의 가능성에 대해 콧방귀로 응대했다. 독불 장군 타입이라 당내 세력이 없어 현실 정치 안에선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난 그가 "민주당 후보로 살아 남기만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선거운동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만큼 그를 지지한다는 뜻이기도 했고, 나 역시 그가 대선 후보가 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국민 참여 경선이 없었다면, 당연히 노무현의 등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경선 후보로 나섰을 때 그 곁을 지켰던 의원은 천정배 등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민 경선은 당권을 쥐는 것만으로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노사모의 활동 폭이 넓어졌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당선을 위해 진심으로 뛰는 자발적 선거운동의 힘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내 바람을 몰고 왔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대선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꿈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머물러선 안 됐다. 난 처음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인터넷 게시판을 들쑤시며 정치 얘기 자체에 냉담해 하는 사람들에게 노무현이 기존 정치인과 얼마나 다른지를 설파하고 다니고, 메신저와 대화로 주변 사람들에게 노무현이 대통령이 돼야 할 당위성을 설득하며 다녔다.

 선거 운동을 하는 건 주변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 일인 동시에, 나 역시 일정부분 정치적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가족들부터 쉽지 않았다. 반복되는 설득 속에서도 노무현의 진정성을 좀체 믿지 못하던 누나는 그가 고졸 출신으로 한국 정치판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고는 이후 나보다 더 적극적인 노무현 지지자가 되었다. 부모님은 끝까지 이회창을 마음에 두셨지만, 선거 당일 아침 누나와 나의 적극적인 읍소에 노무현에 표를 행사하시고는, 그의 집권 기간 내내 적극적인 지지 뜻을 보여 오셨다. 몇 시간에 걸친 메신저 토론으로 한나라당 지지자 몇을 노무현에 투표하게 했는가 하면, 희망 돼지 저금통을 주변에 나눠주기도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정치인 구좌에 후원금을 전달한 것도 노무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했으니 그가 당선됐던 그 밤은, 내 인생에서 맛본 몇 안 되는 환희의 순간이다. 그가 모든 것을 다 잘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앞선 어느 정권보다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앞섰다.

 적극적인 지지자로서 지지 대상의 집권기는 쉽지 않은 기간이다. 그가 취임한 날, 나는 '비판적 지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난 그를 지지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지지하게 만든 사람으로서 일정 부분 그의 책임을 나눠 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북 송금 특검 도입에서도 난 그의 편을 들었고, 민주당 분당에서도 난 그의 편이었다. 잇따른 설화에 대해서도 "언제는 노무현이 서민적인 언변을 갖춰 좋다고 하지 않았냐"며 그를 두둔했고,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해서도 "노무현은 원래부터 좌파가 아니었다"며 좌파들과 싸웠다. 심지어 노무현 스스로 실패한 정책이라고 실토한 부동산 정책이나 그의 지지자들을 등돌리게 했던 대연정 발언에 대해서도, 노무현의 문제의식과 그것이 설정한 방향만큼은 옳다고 강변하고 다녔다. 

 하지만 100% 그의 편에 선 것은 아니었다. 정치인은 인간적으로 평가받는 동시에 정책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그의 어떤 정책적 결과물들은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라크 전쟁 파병과 한미 FTA 추진이 그랬다. 그 정책적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에서 그의 고뇌와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정책의 파급 효과는 그 사람이 한 고뇌와 진정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법. 그 정책적 결과물들이 앞으로 야기할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그의 정책에 대해 대해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도덕성이 그의 가장 큰 자산이었던만큼, 검찰 수사로 일부 드러났던 그의 치부들에 대해, 나 역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신이 받았든 가족이 받았든, 그게 5억원이든 5조원이든, 지인이 준 것이든 생면부지의 사람이 준 것이든간에, 그건 문제 있는 돈 거래였다. 그게 그래서 검찰이 들씌우듯 '포괄적 뇌물'이냐는 점에선 법정에서 가려 볼만한 문제라고 여겼지만, 뇌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티끌 없는 청렴함을 믿고 지지했던 나같은 사람들에게 그건 충격이고 상실감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그에 대한 모든 평가가 될 수는 없다고도 생각했다. 대통령은 자연인으로만 평가받는 게 아니라, 그가 재임했던 시대와 함께 평가받는 것이다. 선량한 국민도 시위를 하면 범법자로 모는 게 아니라, 시위대도 국민으로 여기던 시대. 정부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게 아니라, 표현과 소통의 자유를 보장하던 시대. 가진 자들이 더 가지게 없는 자들이 더 없게 하는 게 아니라, 분배를 앞세워 골고루 잘 살도록 하려던 시대. 서울에만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려던 시대. 증오와 이간질로 표를 모으는 게 아니라, 지역 구분 없이 정책으로 정정당당한 선거를 추구하던 시대. 노무현은 비록 상처투성이가 됐을지언정, 그가 평가받을 '노무현 시대'는 지금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높이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이 존경했던 링컨처럼, 노무현과 그의 시대도 이제까지와 달리 재평가받을 수 있을까? 그의 사후 불어닥치는 추모 열풍을 보자면, 다소간 희망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의 정신이, 그의 시대가 온전히 평가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좀 더 바빠져야 하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9. 1. 29. 00:07


 기자가 어때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졌을 때, 가지가지 얘기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가령 글을 잘 써야 하고 취재를 잘 해야 하고 따위의 얘기들 말이다. 그 가운데 빠질 수 없는 한 가지는 양심이다. 기자의 양심. 윤리적으로 비교적 완벽을 기해야 하는 양심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 할 수 있는 양심이다. 그 양심이 도려내어진 기자는 한낱 글쟁이에 불과할 뿐, 더 이상 기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선 안 된다. 기자에게 양심이 없다는 것은 영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 해 8월 8일 이후 이 공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끊임없이 내 양심을 테스트하고 유린했다. 임기가 보장된 옛 사장이 별다른 잘못도 없이 정치꾼들과 다름없는 이사진에 의해 쫓겨나고 새 사장이 별다른 검증도 없이 정치질 하는 이들에 의해 본관 6층에 진입하는 과정 속에서 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뇌했다. 미디어포커스가 그 간판을 내리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면서도, 그리고 사장 교체 시기 싸움에 나섰던 동료들에 대해 징계 절차가 진행될 때에도 내 양심은 연약하게도 흔들렸다. 

 두 기자 선배의 파면과 해임 소식을 들었을 때, 난 그것이 기어이 내 양심을 겨누는 칼이라고 생각했다. '시범케이스'. "너도 까불면 얘들처럼 되는 수가 있어". 회사는 내 양심을 향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정해진 재심 절차를 거쳐 회사는 마치 큰 시혜라도 베풀 듯 두 사람의 징계를 회사에 겨우 발 정도는 담그고 있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심을 통해 번복될지언정, 그 시범케이스로서의 효과는 회사의 나머지 다른 수많은 이들에게 톡톡이 발휘하게 될 일이었다. 몸을 잔뜩 움츠러 들게 만드는 효과, 자신의 양심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효과 말이다.

 두 선배를 향한 징계의 칼날이, 기실 나와 KBS 구성원들을 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회사의 징계 발표는 그래서 더 내 몸서리를 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어이 서로 저 잘난 맛에 사느라 단결이 요원하다는 기자들을 '제작 거부'라는 단호한 결의로 내 몰았다. 자신의 양심에 거세를 요구하는 회사의 일방적인 칼부림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더 물러설 곳도, 도망갈 곳도 없는 외통수의 길에 빠져들고 나자 오히려 나아갈 길이 선명해 보인다. 고뇌하고 갈등하고 더러는 갖가지 핑계거리를 찾아 헤매던 비겁했던 내 양심도 견고해진다. 그 칼을 감히 휘두른 그들이 고마워진다.

 이번 싸움은 두 선배의 기자로서의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싸움이다. 또 양심을 지키려다 쫓겨나게 된 동료들을 무기력하게 떠나보낼 수 없는 우리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싸움은, 앞으로 공영방송사 기자로서 거리낌없이 일 할 수 있는 양심, 떳떳하고 당당한 대한민국 기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지금껏 해 보지 않은, 무척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내 양심을 시험하는 마지막 유혹이다. 하지만 끝내 우리가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을 때, 나의 양심은 한결 더 견고해져 있을 것이다. 단단해진 우리의 양심은 더욱 더 혼탁해진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자리를 키워 나갈 것이 분명하다. 

 유난스레 밤이 고요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