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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3 치과
  2. 2010.07.02 파업 중 4
  3. 2009.12.01 이웃의 섬나라
얄라리얄라2011. 4. 23. 22:23

 
 치과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어디 있겠냐만, 난 어렸을 때 치과를 참 집요하게 피해 다녔다. 누나가 젖니를 뺄 때 울부짖었던 걸 목격한 나는 정작 내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아무도 모르게 하다 혼자 조금씩 흔들어 뽑곤 했다. 내 젖니는 모두 이렇게 스스로 뽑혔다. 

 다른 고통은 잘 참지 못해도 이가 아픈 것은 곧잘 잘 참는 편이어서 충치가 썩어들어가는 동안에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치과 한 번 가지 않을 수 있었고, 때문에 치아는 남아나질 않아 영구치마저 조기에 상하고 말았다.

 치아를 아무렇게나 방치했으니 치열도 고를 리가 없었다. 원래부터 내겐 윗니와 아랫니의 열이 딱 맞아 떨어지는 부정교합이 있었는데, 여기에 어렸을 때 두어번 턱과 치아에 강한 충격을 받은 이후로 치열은 점점 어긋나고 있었다. 아랫니가 앞으로 나오더니 오른쪽으로 진행을 했다. 주걱턱이 되어 가자 중학교 때 비로소 치과를 가게 됐다. 석고틀로 만든 교정기를 끼워보는 게 전부였지만 정말 가기 싫었다. 다행인지 (이제 생각해 보니)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치과 의사도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곤 하는 내 치아를 어떻게 손 봐야 할지 몰라 했다. 결국 첫번 째 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턱이 점점 비뚤어지게 되자 또다시 치과를 가게 됐다. 이번엔 종합병원이었다. 얼굴 뼈의 엑스레이와 사진을 찍고나서  양쪽 턱디스크가 모두 빠진 악관절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양악 수술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지만 1년 넘는 시간과 2천 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는 데에 저어하게 됐다. 취업 준비를 앞둔 시점이었는데, 시간과 돈 모두 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회사에 들어온 뒤에도 턱의 우향은 진행됐다. 방송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고 더구나 좋은 발음으로 말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악관절 문제는 계속 발목을 잡았다. 내근 부서에 들어갔을 때 다시 다른 종합 병원엘 갔다. 한 번 미룬 댓가로 들어가게 되는 경비와 시간은 더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또 저어하게 됐다. 미루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현업과 치료를 동시에 유지하기가 버겁다 여겨졌다. 수술 준비 단계로 교정을 위해 고무마킹을 치아 틈에 끼웠는데, 그게 또 치아가 깨질 듯 너무 아팠다. 고무마킹을 그냥 빼내 버리고는, 아프게 되지 않는 이상 그냥 생긴대로 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미룬 채 결혼을 했고, 이번엔 부모님이 아니라 반려자가 성화를 댔다. 양악 수술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자 반려자는 수소문을 해 수술 없이 악관절을 교정해주는 치과를 찾아냈다. 척추 자세 교정과 치아 교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독특한 컨셉이었다. 요컨대, 전체적인 자세 교정을 통해 몸의 균형을 찾는 방법으로 치아 교정도 이끈다는 것이었다. 돈과 시간의 총합은 수술하는 것에 못지 않았지만, 칼을 대지 않는 치료법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교정을 시작했다.  

 교정만이라고는 하지만, 각종 '시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멀쩡한 생니와도 다름없는 사랑니를 발치해야 했고, 치열을 잡아주기 전 치아 위치를 다잡기 위해 사랑니 자리에 임플란트를 박고 고무줄을 연결했다. 따끔한 마취 주사와 얼얼한 신경, 그리고 서늘한 각종 기구들이 닿는 느낌은, 내가 치과를 지지리도 싫어라 하게 했던 바로 그 느낌들이다.
 
 피하고 미룬 끝에 돈은 돈대로 많이 들고 결국 치료는 치료대로 몰아서 받게 됐다. 치과에 대한 이런 교훈은, 사실 알고도 놓치고는 뒤늦게 되새기게 되는 새삼스러운 얘기이긴 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10. 7. 2. 22:17


 그동안 우리의 파업은 지리멸렬했다. 조합 간부들은 집회장에서 목에 핏대나 세웠지, 파업의 내실을 다질 생각은 안 했다. 파업은 하는둥 마는둥 했다. 그냥 적당한 시늉에 불과했다. 집행부는 언제나 사흘 정도 뒤에 파업을 접을 생각에 급급했다.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파업 유지 의견도 묵살한 채 밀실에서의 '비대위'를 열어 파업을 종결했다.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파업. 그게 내가 이 공장에서 겪은 파업이었다.

 '언론노조'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공기업노조'가 되어 버린 조합으로부터, '배부른 돼지'가 되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새노조를 만들었다. 기존 노조는 조합을 분열시킨 행위라며 마뜩찮아 했지만, 그건 '언론노조'이기를 포기한 그들을 대신해 KBS에 '언론노조'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구 노조가 이미 잘 컨트롤 되어 갖고 놀기 쉬웠던 사장실의 김특보에게 새 노조가 눈엣 가시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회사는 새 노조와의 교섭에 잘 응하지 않는 방법으로 새 노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다. 새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사장실의 김특보는 비열하게도 노조 위원장과 급이 안 맞는 일개 국장을 협상 테이블에 대신 앉히고는 22차례의 교섭 과정을 불성실하게 흘려보냈다. 그리고 교섭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렬되었다.

 사장실의 김특보는 "사규대로 처리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사규는 네 편일지 모르겠으나, 법은 우리 편이다. 법은 우리의 파업에 '합법' 인증을 해 주었다. 대신 우리의 파업 활동을 청원경찰을 동원해 훼방하는 사장실의 김특보 행태야 말로, 법을 따르자면, 명백히 불법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파업다운 파업이다. 그간 대한민국 노동조합들에 들씌워졌던 '불법' 이미지에 조금도 거리낄 일 없는 순도 100%의 '합법 파업'이다. 대의와 명분, 정의와 정당성이 충만한 자랑스러운 파업이다. 그러니 걱정하실 일이 없다. 자랑스럽게, 훌륭히, 잘 싸워서 마침내 이겨 돌아올 일만 남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9. 12. 1. 23:01

 검은 머리와 노란 피부, 한자 문화권. 그 외에는 공통점이라고는 없다. 일본과 우리는 비슷하다기 보다는 다른 게 더 많았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백제 유목민이 건너가 만든 나라니, 36년 식민 통치가 있었던 관계니 하는 건 다 쓰잘데기 없는 말이었다.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을 배려한 한글 표지판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는 점을 빼고는 이웃이라는 느낌도 생소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은 괜한 게 아니었다. 말하자면 같은 동북아 나라라는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이 훨씬 더 깊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일본은 일본이고, 우리는 우리다.
 
 그 간극은 메우려 한다고 해서 메워질 게 아니다. 애써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차라리 다름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 터였다.

 일본은 큰 나라였다. 세계에서 중국과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우스개 얘기도 있지만, 정말 우리가 쉽게 경쟁상대로 견주거나 넘볼 수 있는 상대는 분명 아니었다. 초고속으로 일군 우리의 경우와 달리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온 근대화의 기본기가 상당히 탄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밟히는 곳곳에서 우리에게 없는 저력이 느껴졌다. 우리로선 겸손한 자세로 더 배워야 할 일이다.

 첫번 째 결혼기념일을 자축하기 위해, 그리고 아껴먹으려 챙겨뒀던 휴가를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어 일본을 다녀왔다.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한 번도 스스로 가보려 했던 적은 없었다.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관심 쏠리는 면이 전혀 없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부러 찾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려자가 아니었다면, 출장으로 가게 되기 전엔, 평생 이 섬나라 땅을 밟아볼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정권의 낙하산 투하로 회사가 어수선한 상황을 맞닥드려 여행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1년 전에도 내가 몸담은 프로그램의 존폐 위기 속에서 여행을 해야 했는데, 이래서야 맘 편히 여행 계획도 짜지 못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다.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공부가 되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매진케 하는 데 힘이 되어줄 것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