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18. 5. 27. 21:52


영화 <탠저린>을 봤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나서 무니와 핼리 등 연기자들에게 관심이 쏠렸다가, 이내 '천재감독'으로 불린다는 숀 베이커에게 관심이 돌아갔다. 그래서 그가 만든 영화를 더 보고 싶어졌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그랬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사회적 약자, 밑바닥 인생, 낙오자들의 이야기를 필름에 담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앞서 만들어진 <탠저린>을 골랐다. 이제 보니 언젠가 예고편을 보고 땡겼었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갔었던 영화더라.


-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들이 주인공이다. 남자이면서 여자이고,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기존의 관습적인 사고가 규정하는 틀을 벗어나 그들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해, 영화 역시 관습적인 시선을 배제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그러했는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코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해와 편견을 거두면 그들도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 트랜스젠더와 성매매를 한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진짜 여자' 부인에게 신디가 묻는다. "남편이 나가서 나같은 여자를 산다면, 그게 바람일까요?" 영화는 이 질문처럼 경직된 생각으로 바라보면 이상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가령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지역이 LA인 까닭에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날씨다. 눈이 오지 않으면 크리스마스인가, 아닌가? 여자를 마다하고 트렌스젠더를 찾아 성매매를 하는 남자는 정상인가 아닌가? 또 이 영화는 아이폰만으로 촬영된 것으로 유명한데, 그렇다면 이 영화는 'film'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닌가? 트렌스젠더는 여자인가 아닌가? 아니, 그런 판에 박힌 질문은, 대체 할법한 질문인가 아닌가?


- 영화는 신디라는 여성(!)이 짧은 복역 뒤 나왔더니 남자친구가 '진짜 여자'하고 바람이 났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들을 응징하러 나서면서 빚어지는 갖가지 소동을 경쾌한 템포로 그려냈다. 스스로 뜻하지 않게도, 영화를 보다보면 신디와 알렉산드리아가 정말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영화에 데뷔한 이들 배우는 진짜(!) 트렌스 젠더이기도 하다.


- 한낱 '남자 문제'로 서로 머리끄댕이 붙잡고 싸우는 와중에, 진짜고 트렌스젠더고 간에, 등장하는 여성들 사이에는 어느새 '여자'이기 때문에 품게되는 연대와 공조의 정서가 싹튼다. 그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누구나, 그 누구라도, 어떠한 삶에서든, 행복할 자격이 있노라고 따뜻하게 속삭여 주는 것만 같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18. 5. 27. 21:50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봤다.


- 영화 중반쯤 보다가 윈스턴처칠의 어떤 표정에서 "저 배우 게리 올드만하고 비슷하게 생겼네" 하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검색해 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가 게리 올드만이었다.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봤던 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처음에만 하더라도 저 배우가 뚱뚱하고 머리숱 없는 거 빼고는 윈스턴 처칠의 그 카리스마 있는 얼굴과 좀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중반 이후 영화에 몰입하다 보니, 그냥 누구랄 것 없는 윈스턴 처칠 그 자체였다. 게리 올드만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지만, 이건 역대급이지 않을까 싶다.


- 북한이 미사일 놀이를 한참 할 때, 대화와 평화를 강조하던 문재인에게 극우파들이 조롱하며 빗댔던 게 체임벌린이었다. 그러면서 처칠처럼 단호하고 강단있게 북한에 맞서야 한다는 논리를 폈었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 히틀러의 독일은 침략전쟁을 벌이는 자이지만, 북한은 침략은 커녕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침공 위협 속에서 체제를 유지하는 게 급선무인 최빈국이라는 점이다. 김정은은 히틀러가 아니며, 따라서 문재인도 처칠일 필요는 없다.


- 난 그보다 영화보는 내내 <남한산성>이 연상됐다. <남한산성>에서 주화파 최명길은 체임벌린이나 할리팩스 쯤 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척화파 김상현 쪽인 거고. 인조는 조지6세인 셈이다. <남한산성>에서는 척화파 말을 듣던 인조가 결국 최악의 상황에 몰려 삼전도굴욕을 겪었다. 그런데 <다키스트 아워>에서는 주화파가 물정 모르는 자들로, 척화파가 영웅으로 등장한다. 모든 게 결과론적인 얘기이겠으나.


- <다키스트 아워>의 처칠이 영웅적으로 묘사되고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그 영웅적 서사가 완성되었지만, 난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의 편에 섰듯, 여전히 평화는 구걸을 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결심에 '지하철에서의 대화' 씬이라는 장치를 통해 영국 국민 여론으로 힘을 실어줬지만, 사실 이런 문제를 국민 여론이나 정서에 기대어 결정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기는 마찬가지다.


- 다만 처칠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을 무기로 삼았다는 점은 꽤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할리팩스의 대사처럼 "말로 전투에서 이긴 것"이다. 처칠은 호전적인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나, 무력이라는 수단을 활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로 상대를 설득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처칠의 가장 큰 미덕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