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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5 [음반] 좋아 죽겠네, 아주 그냥
  2. 2008.10.26 [음반] 가장 보통의 언니네이발관 2
  3. 2007.05.06 [음반] 중독 되다 10
만끽!2009. 4. 25. 23:55













 이건 뭔가. 1980년대에 태어난 녀석이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런 상황은. 뭐 한 겨-우 초등학생 쯤 되었을 무렵에 기껏 이선희 누나나 알았을 녀석이 신중현이나 산울림, 송골매 같은 노래를 부르고 그 정서를 완전히 포착해 내고 있잖어. 이건 20대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원숙한 게, 어딘가 늙주그레죽죽한 정서마저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걸 또 저항 정신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쿨 한게, 어찌 보면 심하게 자유 분방하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심지어 그걸로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녀석의 등장이라니, 이건 뭐 완전히 별일임에 틀림 없다. 

 처음 웃음을 자아내는 안무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들었을 때, 난 그냥 별 이상한 놈이 다 튀어나왔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역시 웃음을 자아내는 가사의 '싸구려 커피'를 들었을 때, 난 이 별 이상한 놈이 아주 골때리기까지 하는 녀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웃긴 걸로 대중의 이목을 어찌 어찌 이끌어 보긴 했으나, 웃음으로 흥한 자 치고 오래 가는 놈 없었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심드렁한 일상에 작은 파문을 줬을 뿐, 그저 스쳐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앨범을 듣고서야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가 노래에 심은 것은 개그가 아니라, 일종의 '페이소스'였으니 말이다.

 이들의 노래는 낄낄 거리며 듣다보면 어느새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가령 첫 번째 싱글 '싸구려 커피'부터가 그랬다. 룸펜 혹은 장기 실업자의 처지를 유희적인 가사로 묘사했지만, 거기엔 자학이 섞여 있고 처참한 일상에 대한 비애가 배어있다. 처해진 상황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지만 딱이 탈출구라고 할 게 없으니, 그저 자조할 따름이다.

 '싸구려 커피'가 포함된 앨범 <별일 없이 산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실 '상실감'이다.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그들은 모던록을 하고 있어야 할 일이다. 대신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 가슴의 상처를 "별일 없"는 듯 억누르며 환하게 웃는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별일 없이 산다'는 '포크록'이라는 밴드의 장르에 가장 부합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기타 리프에 맞춰, 장기하는 최대한 단호하고 강단있는 보컬로 "별일 없이 살"고 "별다른 걱정 없"고 "사는 게 재밌"고 "하루하루 신난다"고 반복해 강조한다. 하지만 단호하고 강단있을지언정 그 목소리에 환희와 유희는 배어 있지 않다. 메말라 있고 심드렁하고, 심지어 악에 받쳐 있기까지 하다.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으로 들리는 법이다. 게다가 상대에게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것이라며 작심하고 경고하는 일이라는 게 고작 "별일 없이 산다"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이 겨우 그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노래는 자신을 차버린 연인을 향한, 자신의 인생을 망친 상대를 향한, 혹은 위압적인 공권력이나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향한, 소심한 복수로 들린다.   

 "선지자"에게 "완전히 속"은 상실감을 재밌는 가사와 밝은 템포로 전달한 '아무것도 없잖어'나, 서정적인 멜로디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가사를 실어 전한 '정말 없었는지', 어깨 춤으로 또 다시 화려한 무대 매너를 자랑하고 있는 '나를 받아주오'도 같은 맥락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완전히 고루한 음악을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서 21세기에 끌고 들어왔다. '싸구려 커피''나를 받아주오'에서는 포크록과 토속적인 타령을 절묘히 결합했던 신중현 음악의 향이 짙게 배어 있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의 팔을 팔랑거리는 안무는 북한에 보내는 신호였다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춤을 연상시킨다. '별일 없이 산다'의 창법은 푸석푸석해 묘한 매력을 불러 일으켰던 배철수의 그것이고, '나와' '아무것도 없잖어' '오늘도 무사히'는 한국형 포크록의 전형 산울림의 노래를 제법 쏙 빼닮았다. 

 단지 흘러간 옛 노랫자락을 답습한 것에 머물렀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은 카피밴드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장기하는 그런 점에서 '온고지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친구다. 이건 뭔가 랩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니다 싶은, 차라리 판소리의 아니리에 가까운, '싸구려 커피'에서의 인상적인 래핑이나, '달이 차오른다, 가자' 나를 받아 주오'에서의 화려한(?!) 무대 매너는 그가 70년대 노래를 가져 오는 데 있어서 그저 똑 떼어 들고나온 게 아니라 90년대를 관통해 끌고 들어온 것임을 분명히 한다. 70년대 음악을 80대 생이 90년대를 입혀 2000년대에 소개하는 식이다.

 음악과 함께 빛이 나는 것은 노랫말이다. 왜 하필 포크록이냐는 어느 인터뷰에서의 질문에 대해 장기하는 포크록이 우리 말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노래를 듣다 보면 자꾸 입이 들썩이며, 아주 그냥, 마침내 따라 부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the best track: 별일 없이 산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08. 10. 26. 02:56













 
 이제와 생각해 보면, 원인은 '부담감'이었다. 처음엔 그저 좋아서 자기들끼리 한 번 놀아본 음악이었는데 그 음악에 (의외로!) 행복해 했던 인간들이 (의외로!!) 적지 않았던 거다. 괜스레, 거창히, 프로로서의 음악 활동 본격화를 선언하며 오버로 모습을 드러내고 나자, 더이상 즐겁게 놀 수 있는 음악이 아니게 되었던게다. 아무래도 음반 판매고와 티켓 판매량을 신경쓸 수밖에 없었을테고, 어깨에 과도한 힘이 모이면서 온 몸도 뻣뻣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3집 <꿈의 팝송>과 4집 <순간을 믿어요>에 언니네이발관 답지 않게 후까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것은, 그래, 그 '부담감' 때문이었던 거다. 

 애초에 잔뜩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이 밴드에 어울리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원래 딸랑거리던 기타 리프 소리가 그랬듯, 언니네이발관은 없이 시작했던 것이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버리고 놓아 둘수록 갖게 되는 무소유의 진리를 이제 다시 깨닫게 된 것일까?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이발관이 오랜 장고 끝에 들고 나온 다섯 번째 앨범의 제목은 그냥 '보통의 존재'도 아닌 '가장 보통의 존재'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건 마치 그동안잠시 손에 쥐고 있었던 것들을 떨쳐내려는 선언으로 들린다. 프로페셔널한 사운드로 일반 음악 대중에게 어필해 성공가도를 달리려는 집착 같은 것을 내 놓아 버리려는 것으로 읽힌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고 난 뒤의 언니네이발관은, 우리가 추억하던 그 언니네이발관이다. 어깨에 잔뜩 쌓인 부담감도, 뭔가 보여주겠다며 덤비는 후까시도, 시장에 대한 눈치도 없이 즐겁게 음악하는 모던록 밴드다. 그들의 팬들 역시, 굳이 이들을 알리고 띄울 필요도, 부러 애써 이들의 음악을 이해해 주려할 의무도 없이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어 그들의 음악을 같이 즐겨주면 될 일이다.

 타이틀 곡 '가장 보통의 존재'는 스스로의 제목처럼 특별함이라곤 없는 멜로디 라인으로 역설적이게도 제법 보통 이상의 노래가 되었다. 기승전결도, 노래의 클라이막스도 없는 그저 나지막히 읊조리기만 하는 노래지만 묘한 끌림이 있어 한 번 들으면 귀에서 떼 놓게 되지 않는다. 언니네이발관의 처음 노래들마냥 말이다.

 가장 보통이어서 범상치 않아지는 매커니즘의 핵심에는 이석원의 보컬이 있다. 이석원의 보컬에는 표정이 없다. 좋든 슬프든 기쁘든 괴롭든, 그 어떤 감정도 묻어 있지 않다. 처해있는 상황에 초연한 듯, 관심없는 듯, 또는 지친 듯할 뿐이다. 

 그건 말하자면 '체념'의 정서다. 상실감의 토로나 슬픔의 호소 또는 울분의 표출이 아닌 그저 만사를 포기한 체념 말이다. 어찌 해볼 의지도 희망도 없이 그저 막연히 손을 놓고 있는 '체념'은 극도의 슬픔인 동시에, 언니네이발관의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다. 

 아마도 '미움의 제국'이나 '인생의 별'을 넘어서는, 언니네이발관 베스트 트랙으로 자리매김 할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에서도 체념의 정서는 지독히 배어 있다. 너무 짙게 배어 있어 듣다 보면 가슴이 아려올 정도다. "이제 모든 걸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을 땐 체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정적인 사운드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것' 역시 체념을 노래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는, 사랑을 잃게 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은 슬픔을 느끼는 주체가 아니다.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가장 보통'과 '체념'을 노래한 언니네이발관의 5집 앨범은, 올해 가요계 최고의 음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걍팍해지는 세상 살이 속에 있다 보니, 어쩐지 그것이 일종의 '시대 정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the best track : 너는 악마가 되어 가고 있는가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07. 5. 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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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sabian을 듣기 전에 염두해 두어야 할 한 가지. 처음 들었을 때 별 거 아니라고 해서 서랍에 쑤셔박은 채 두 번 다시 거들떠 보지 않게 되는 일은 피할 것. Kasabian은 첫 인상으로 승부를 거는 밴드가 아니니 말이다.

 실은 내가 그랬다. 저 잘난 맛에 좀처럼 남 칭찬을 안 한다는 노엘 갤러거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애써 찾아 들어봤지만, Club Foot를 비롯해 그들의 노래는 그저 그랬다. 아니, 외려 단순한 멜로디 라인의 반복은 들어본지 한 두번만에 그들의 노래를 질리게 만들었다. 에휴, 요즘 세상에 이딴 노래라니.

 Kasabian이 내 관심에서 완전히 배제된지 한참 지난 어느날이었다. 느닷없이 입에서 어떤 멜로디가 무한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도무지 멈춰지질 않는 이 독특하고도 중독적인 멜로디를 어디서 들어봤더라, 의아해 하며 기억 속을 한참 동안 헤집어본 끝에 난 그게 Cutt Off의 후렴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뒤 다시 찾아 들어본 Kasabian은 이전에 평가했던 그 Kasabian과 완전히 별개의 음악이었다. 거기에는 감히 쉽게 헤어날 수 없는 무서운 힘이 실려 있었다. 마치 속담배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터져나오는 혹독한 기침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가 이내 담배의 영향권 안에 스며들듯 중독되듯, Kasabian의 노래에도 강한 중독성이 있었다. 난 그 후로 오랫동안 Kasabian에 취해 살아야 했다.

 라이센스를 사가는 데가 없어 그랬는지 영국 현지에서 발매된지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 들어온 두 번째 앨범 <Empire>도 누가 Kasabian 음악 아니랄까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과 똑같은 궤도를 걷는다. 뮤직비디오가 정말 일품인 Shoot the Runner는 영상 덕에 처음부터 홀딱 빠져들게 만들지만 첫번째 싱글 Empire는 매력적이긴 했지만 폭발력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른 노래들? 단조롭고 특색 없고 절정도 없고 그렇다고 짜릿한 변주도 없고 죄다 시시했다. 첫(!) 느낌만큼은 말이다.

 시간은 내가 폄하했던 트랙들의 편이었다. 고만고만했던 노래들은 어느새 무서운 기세로 내 귀를 잠식해 들어갔다. 단조로움이 애초 자신들의 무기였다는 냥  Last Trip, Me Plus One, Aponea, Stuntman, Seek and Destroy, The Doberman과 같은 노래들의 멜로디는 귀를 통해 침투해 와 어느새 뇌를 뒤 흔들어 놓는다. 일렉트로니카가 강화되고 부쩍 세련되어져 그런지 몰라도, 중독성이 데뷔 앨범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중독성이 날카롭게 선 트랙들 가운데서 돋보이는 트랙은 British Legion이다. Kasabian 노래 답지 않게 맑은 이 노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또한 약한 중독성을 주는 노래다. 독주를 마시다 살짝 약한 과실주를 마시는 기분일텐데, 그 맛이 참 투명하다.
 
the best track: Shoot the Runner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