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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06 [음반] 중독 되다 10
  2. 2007.03.12 [애니] 그 때는 몰랐지 2
  3. 2007.03.12 [영화] 승자와 패자 12
만끽!2007. 5. 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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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sabian을 듣기 전에 염두해 두어야 할 한 가지. 처음 들었을 때 별 거 아니라고 해서 서랍에 쑤셔박은 채 두 번 다시 거들떠 보지 않게 되는 일은 피할 것. Kasabian은 첫 인상으로 승부를 거는 밴드가 아니니 말이다.

 실은 내가 그랬다. 저 잘난 맛에 좀처럼 남 칭찬을 안 한다는 노엘 갤러거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애써 찾아 들어봤지만, Club Foot를 비롯해 그들의 노래는 그저 그랬다. 아니, 외려 단순한 멜로디 라인의 반복은 들어본지 한 두번만에 그들의 노래를 질리게 만들었다. 에휴, 요즘 세상에 이딴 노래라니.

 Kasabian이 내 관심에서 완전히 배제된지 한참 지난 어느날이었다. 느닷없이 입에서 어떤 멜로디가 무한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도무지 멈춰지질 않는 이 독특하고도 중독적인 멜로디를 어디서 들어봤더라, 의아해 하며 기억 속을 한참 동안 헤집어본 끝에 난 그게 Cutt Off의 후렴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뒤 다시 찾아 들어본 Kasabian은 이전에 평가했던 그 Kasabian과 완전히 별개의 음악이었다. 거기에는 감히 쉽게 헤어날 수 없는 무서운 힘이 실려 있었다. 마치 속담배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터져나오는 혹독한 기침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가 이내 담배의 영향권 안에 스며들듯 중독되듯, Kasabian의 노래에도 강한 중독성이 있었다. 난 그 후로 오랫동안 Kasabian에 취해 살아야 했다.

 라이센스를 사가는 데가 없어 그랬는지 영국 현지에서 발매된지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 들어온 두 번째 앨범 <Empire>도 누가 Kasabian 음악 아니랄까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과 똑같은 궤도를 걷는다. 뮤직비디오가 정말 일품인 Shoot the Runner는 영상 덕에 처음부터 홀딱 빠져들게 만들지만 첫번째 싱글 Empire는 매력적이긴 했지만 폭발력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른 노래들? 단조롭고 특색 없고 절정도 없고 그렇다고 짜릿한 변주도 없고 죄다 시시했다. 첫(!) 느낌만큼은 말이다.

 시간은 내가 폄하했던 트랙들의 편이었다. 고만고만했던 노래들은 어느새 무서운 기세로 내 귀를 잠식해 들어갔다. 단조로움이 애초 자신들의 무기였다는 냥  Last Trip, Me Plus One, Aponea, Stuntman, Seek and Destroy, The Doberman과 같은 노래들의 멜로디는 귀를 통해 침투해 와 어느새 뇌를 뒤 흔들어 놓는다. 일렉트로니카가 강화되고 부쩍 세련되어져 그런지 몰라도, 중독성이 데뷔 앨범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중독성이 날카롭게 선 트랙들 가운데서 돋보이는 트랙은 British Legion이다. Kasabian 노래 답지 않게 맑은 이 노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또한 약한 중독성을 주는 노래다. 독주를 마시다 살짝 약한 과실주를 마시는 기분일텐데, 그 맛이 참 투명하다.
 
the best track: Shoot the Runner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07. 3. 1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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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는 모른다. 자기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다만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알 뿐이다. 부러 아니라고 부정하며 고개를 젓는 그 때는 모른다. 자신이 다름 아닌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93년 TV 장편 <바다가 들린다>는 말로 전하지 못한 애틋한 마음들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닌 듯 서로에게 이끌리는 고등학생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섬세한 터치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이 하는 행동과 말의 의미를 이미 다 안다는 식으로 성큼성큼 펼쳐놓지 않는다. 그저 그 때 그들이 서로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드러낸 마음만큼만, 아주 고운 결로 지긋이 내 보여줄 따름이다.

 그래서 조금만 둔감하면, 이 애니메이션은 아무런 재미가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처음 본 그 때는 나 역시 몰랐다. 겉보기에 주인공들은 그저 서로를 싫어하고 갈등하고 반목하고 끝내 멀어지고 말 뿐이기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놀랍게도 아무 얘깃거리도 안 될 것 같은 이런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건드리면서 빛을 낸다. 그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진짜 재미다.

 고등학생 모리사키 타쿠는 전학생 무토 리카코가 못마땅하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마츠노 유타카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것도 그러하고 도쿄에서 전학왔다 해서 도도하게 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멋대로 구는 것도 도무지 신경에 거슬린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하는 마음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리사키는 정작 무토가 하는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는다. 거금을 선뜻 빌려주기도 하고, 대책없는 도쿄행에 함께 오르기까지 한다. 이상하긴 무토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마츠노를 놔두고 하필 모리사키에게 어려운 금전적 부탁을 한다거나, 의심사기 좋게도 모리사키와의 1박 2일 도쿄행을 한다거나 하는 '이상한'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러면서도 평소엔 또 쌀쌀맞기가 얼음장이다. 도통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리사키는 자신의 행동이 가진 의미를 알지 못한다. 아니, 일부러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또 무토가 자신에게 하는 이상한 행동의 의미 역시 부러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무토는 그저 자신이 절대적인 믿음을 주는 마츠노가 좋아하는 여자라고 미련한 확인을 거듭할 따름이다.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속은 건 모리사키 자신 뿐이었다. 마츠노조차 무토가 모리사키를 좋아한다는 것 쯤은 알게 됐으니 말이다. 자신을 기만한 끝에 남은 건 오해와 애틋함 뿐이다.

 다행히 애니메이션은 후일담까지 책임져 준다. 도쿄로 대학을 간 모리사키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순간, 다행스럽게도 도쿄의 한 전철역에서 무토를 만난다. 이번에 그는 그녀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 역시 그 전처럼 마음에 없는 행동을 부러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시간이 지난만큼 성숙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제는 또렷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때는 몰랐던 자신의 마음을, 또 상대방의 소중함을 말이다.

calvin.

★★★☆

Posted by the12th
만끽!2007. 3. 1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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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승자와 패자. 언제나 그렇게 갈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진정한 승리이고 어떤 것이 결국은 패배하는 것인지는 선명하지 않다. 그것을 가르는 기준이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패배자인 이가, 사실은 궁극적인 승리자일 수 있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기준에 따라, 그 가름은 크게 바뀐다. 

 여기, 콩가루도 정말 완전 제대로 콩가루인 가족이 있다.  할아버지 에드윈은 약쟁이에 욕쟁이에, 주책스럽게도 성 도착적인 경향마저 보인다. 윤리적이지 못할 뿐더러 교육적이지도 못하다. 아빠 리처드는 세속적 의미에서의 성공에만 눈이 멀어 있다. 그는 자기 과신과 자기 과시에 빠져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3류 이론을 설파하고 다니는 3류 강사일 뿐이다. 외삼촌 프랭크는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학문적 자부심마저 그 남자에게 밀리고 나자 비겁하게도 스스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아들 드웨인은 '묵언수행'을 핑계로 세상과 소통을 단절한다. 그는 자신 이외의 가족들을 모두 후지다고 여기며 대놓고 무시하지만, 찌질하기는 그도 매한가지다.  그나마 제일 말짱한 건 엄마고, 배가 볼록 튀어 나온 일곱살 난 막내 딸 올리브는 어린이 미인 대회 우승을 꿈꾸며 산다.

 한심함에도 시너지 효과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따로따로 따져 봐도 후지기만 할 뿐인 이들이 심지어 '가족'으로 묶여 뭔가 해보려 한다니, 정말 말도 아니다. 막내딸 올리브가 언감생심 꿈꿔 오던 어린이 미인대회 본선 출전권을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되자, 이 가족들 떼거지로 함께, 고물 미니 버스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름하여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에 당도하기까지의 여정은, 이 가족 생긴 모습 그대로, 참으로 험난하기 이를 데 없다.

 여정도 여정이지만, 이들이 맞딱뜨려야 할 고난의 '본선'은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에 있었다. 오로지 딸 아이의 꿈을 이뤄주겠다는 눈물겨운 가족애만 있었을 뿐, 이 대회가 어떤 것인지 몰랐던 순박한 가족들은 이 '어린이' 미인 대회에서 '아이들'의 것이 아닌 살벌한 진짜 배기 경쟁을 마주한다. 자칫 올리브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 가족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 아이의 마음을 걱정한 끝에 결국 아이의 뜻대로 '도전'을 허락하고, 내친김에 자신들의 스타일대로 이 어처구니 없는 대회를 통쾌하게 정면 돌파해 버린다.

 리처드가 입버릇처럼 구분하는 세상의 두 부류 사람을 놓고 봤을 때, 이들은 의심할 바 없이 패배자들이다. 후지고 구리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선 그런 평가에 주저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순수함을 거세하고 잔뜩 겉멋만 들게 한 속물들은 그저 그럴 듯하게 생겨먹기만 했을 뿐이다. 올리브의 가족들은 드러내놓고 한심해 보이기는 하지만 무엇이 가장 지켜야 할 가치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최소한 '승리자처럼 보이지만 패배자인' 이들보다는 훨씬 승리자에 가깝다.

 입만 열면 욕에 음담 패설을 쏟아내 아이 옆에 두기엔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은 할아버지도, 정작 올리브에게만큼은 '도전'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가장 교육적인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올리브와 가족들은 속물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아, 물론, 미인대회 코치로는 역시나 적절치 않긴 했지만... ^^;;

calvin.

★★★★☆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