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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0 [음반] 노엘의 마스터플랜?
  2. 2009.09.25 [음반] 이길 수 없는 유혹
  3. 2009.09.12 [영화] 엄마라는 사람 14
만끽!2011. 3. 10. 17:49














 무려 14년을 오아시스 팬으로 살아왔건만, 그룹 해체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난 어쩐 일인지 그냥 담담했다. "기예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4집 이후부터 어딘지 임팩트가 떨어진 그들의 음악에 더 이상 이전만큼의 전율을 느끼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했으면 충분히 해먹었다"는 마음도 들었다. 한마디로 해체에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난 스스로 오아시스와 '영원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아시스 공식 홈페이지에도 발길을 끊었고 오아시스 팬카페에도 드나들지 않았다. 재결합을 아주 조금 기대하긴 했지만,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설사 재결합을 한다 해도 그닥 반가울 것 같진 않았다. 오아시스는 여전히 내 스마트폰 음악 폴더에 가장 많은 곡을 차지하는 '나의 밴드'였지만, 그건 그동안 남긴 노래들로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비틀즈처럼, 추억 속의 찬란한 밴드로 남기기로 했고, 또 그걸로 내게는 충분했다. 

 해체 이후 그들의 후일담에 관심을 완전히 끊었으니, 새로운 밴드 조직설을 들었을리 만무했다. 그러니까 내가 '비디 아이'라는 낯선 이름의 밴드 얘기를 알게 된 건 이들의 내한 공연이 확정된 다음 일이었다. 매체에는 한결같이 "노엘 없는 오아시스"라는 수식어를 달고 이들의 내한 공연 소식을 전했다.
 
 "노엘 없는 오아시스"라고? 오아시스의 전성기 시절, 그러니까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그건 성립될 수 없는 말이었다. 노엘은-만화 <이끼>의 표현을 빌자면-오아시스의 시작이고 끝이다. 그는 심지어 오아시스의 시작과 끝을 있게 한 스페셜 원이다. 다른 밴드의 카피곡을 가지고 변죽이나 울리던 리엄의 The Rain이라는 '패거리'를 비로소 번듯한 록 밴드로 만든 건 노엘의 작곡이었다. 그러니 "노엘 없는 오아시스"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말이다.  

 기사를 보며 난 "노엘 없는 오아시스"라는 말에 왠지 더 솔깃해졌다. 아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3집 <Be Here Now> 까지만 해도 노엘의 지배력은 상당했다. 그렇지만 그 뒤, 오아시스는 더 이상 노엘의 밴드가 아니었다. 그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다른 멤버들에게 곡을 쓰도록 해 앨범에 반영했다. 여전히 타이틀 노래는 노엘의 몫이었지만 그의 앨범 내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덕분에 마지막 앨범에서 멤버들의 기여도는 거의 균형을 이뤘다.

 "노엘 없는 오아시스"라는 말은 그래서 성립 가능할 수 있었다. 특히 싱어 송 라이터로서 리엄의 성장을 지켜 봐온 사람이라면 도리어 "노엘 없는 오아시스"에 설레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정규 앨범 <Dig Out Your Soul>에서 베스트 트랙은, 노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리엄이 작곡한 'I'm Outta Time'이었다. 'Little James'에서 그저 귀여운 작곡 재능을 보였던 리엄이 어느새 노엘을 위협하는 작곡자로 폭풍 성장을 하고 만 것이다.  

 노엘의 카리스마 속에서 세션처럼 보였던 겜 아처나 앤디 벨의 뮤지션으로서 능력 역시, 오아시스의 근작을 살펴보면 무시할 일이 아니다. 노엘의 압도적인 포스에서 벗어난 멤버들의 재능이 어떻게 활개치며 뛰놀지를 지켜보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들 역시 노엘의 그림자 없는 새로운 밴드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을까? 제목에서 어떤 종류의 결기가 느껴지는 비디 아이의 첫번 째 앨범<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은 "노엘 없는 오아시스"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가슴에 착착 감기는 감성이나 풍요로운 멜로디는, 아무래도 천하의 노엘이 없느니만큼 떨어져 보이지만, 대신 비트감이 강조돼 있다. 마치 '태초의 락앤롤'로 한 발 더 들어간 느낌인데, 'Beatles And Stones'의 가사를 보면 이들이 비디 아이로 나서면서 새출발의 의지를 어느 지점에서 다지는지 알 수 있다. 

 공연장에서 방방 뛰며 따라 부르는데 제격일 것 같은 'Four Letter Word', 'Bring The Light', "Beatles And Stones' 'Standing On The Edge Of The Noise'는 신나고 경쾌해 'Cigarettes and Alcohol' 'Rock'n' Roll Star' 'Morning Glory'와 견주어 모자람이 없다. 

 나름의 서정성을 강조한 트랙들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The Roller' 'Kill For a Dream' 'The Morning Son' 'The Beat Goes On' 등의 노래들이 그러하다. 특히 'The Beat Goes On'은 듣다 보면 좀 울컥한 마음이 든다. 건방지고 성격이 지랄맞아 보이는 (또는 그렇게 알려진) 리엄이, 마치 오아시스 해체 직후 "형아 없이 밴드를 잘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며 지은 것만 같은 가사 때문이다. 저간의 마음 고생도 담겨 있는 것 같아, 멜로디는 좀 설익었지만 마음을 울린다.

 리더였던 노엘의 갑작스러운 해체 결정으로 졸지에 공중분해 될 줄로만 알았던 이들은 오아시스의 배경을 지우고 다시 무대에 선다. 비디 아이를 보는 노엘은 어떤 심정일까? 이들의 결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또는 "나 없이 밴드가 될 줄 알아?"라며 이들의 실패를 예견할까? 난 그동안 노엘이 꾸준히 오아시스에서 나머지 멤버들의 비중을 끌어올렸던 점을 생각해 본다. '영원'이 없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는 노엘은 언젠가 자신들이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특히 철없는 막내 동생 ("our kid") 리엄이 자기 없이도 당당히 홀로 설 수 있는 뮤지션이 되길 바랐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쩌면, 비디 아이는 노엘이 오랫동안 구상했던 계획이 아니었을까? 자기 없이도 위대할 수 있는 밴드를 그는 일찌감치 구상하고 계획하고 훈련시켜 실행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디선가 흐뭇하게 웃으며 비디 아이를 바라볼 노엘 갤러거를 생각하니 'The Masterplan'의 가사가 떠오른다.

"Will dance if they want to dance
Please brother take a chance
You know they're gonna go
Which way they wanna go..."


☆ the best track : The Roller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09. 9. 25. 19:28















 오아시스의 해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의외로 난 담담했다. 음, 뭐랄까, 그저 "올 것이 왔다"는 느낌...? 갤러거 형제의 불화에 따른 해체 시도(?)가 한 두번 있었던 일도 아니었던데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왠지 이 밴드가 결코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4집 이후 그들의 음악에 큰 공감을 할 수 없었던 점도 내 담담함의 이유다. 최근 앨범 <Dig out your soul>에서 다시 옛 명성을 되찾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과거에 받았던 임팩트를 느껴볼 수가 없었다. 이미 내게는 추억으로 먹고 사는 밴드, 해체 결정은 차라리 "박수칠 때 떠나는" 아름다운 뒷 모습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오아시스가 떠남으로써 생길 마음의 허전함을 메워줄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아시스의 전성기 앨범들을 찾아들어도 여전히 허허로울 그 마음을 달래주고 메워주는 밴드, 막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내고 아직까지는 오아시스의 초반 페이스를 그대로 닮은, 바로 카사비안이다. 

 카사비안은 여러모로 오아시스와 닮은 구석이 많은 밴드다. 오아시스가 작곡(노엘)과 보컬(리엄)의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카사비안도 세르지오 피쪼르노와 톰 메이건을 프론트에 내건, 사실상 두 남자의 밴드다. 오아시스가 지나치게 솔직한 입담과 거만함으로 각종 구설수에 올랐던 것처럼, 카사비안 역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철학을 기저에 깔고 할 말 못 할 말 결코 가리지 않는다. 오아시스는 맨체스터의 노동 계급 출신이고, 카사비안은 레스터 지역 노동자의 아들들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카사비안은 오아시스를 좋아라 하고 오아시스는 카사비안을 이뻐라 한다. 

 그렇지만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같이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 면에서, 카사비안은 오아시스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가령 밴드 이름부터, 이들은 연쇄 살인 그룹 '맨슨 패밀리'의 일원으로부터 따오는 대범함(?)을 자랑한다. 이유는? 그냥 어감이 좋아서란다. 새 앨범의 제목 <West Ryder Pauper Lunatic Asylum> 역시 지금은 사라진 실제 정신 병원의 이름에서 가져와 지었다. "수록된 노래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정신병원의 환자를 환기하는 느낌으로 귀에 전해지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란다. 대놓고 드러내는 음침함, 마이너리티의 기운, 그게 뭐 어떠냐는 투의 자신감 또는 건방짐은 이들의 음악에도 거침없이 강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음악 시장과 심지어 청자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제멋대로의 음악은 오히려 강한 중독성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입가에 찰싹 들러붙는 멜로디 라인, 몸을 가만히 가눌 수 없게 만드는 리듬감, 환각에 빠지게 할 만큼의 톡톡 튀는 전개는 그들의 음악에 그만 함락되고 말도록 만든다. 
 
 놀라운 것은, 이제쯤이면 그 흔한 '자기 표절'도 있을 법 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이것은 카사비안 음악"이라고 일컬을만한 비슷한 멜로디라인도 중복되지 않는다. 모든 노래들이 각각의 개성 강한 향취를 갖고 있고 그래서 그 나름대로 모두 빛이 난다. 그러고 나니 앨범 자체의 무게가 값 나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친숙해지기는 단연 첫 번째 트랙 'Underdog'이지만, 서서히 스며들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리기는 'Vlad the Impaler'의 중독성이 더 강한 것 같다. 드라큐라 백작의 본명이라는데, 제목이 주는 이미지 그대로 노래 역시 사람을 '보내 버린다'. 빵 터지게 만드는 'Fire'나 남미풍의 'Thick as Thieves', 그리고 'Ladies & Gentleman, Roll the Dice'도 각각 치명적인 중독성을 보유하고 있다.

 오아시스와 달리(!) 이들은 비주얼도 되는 친구들이다. 싸가지 없어 보이기로는 웨인 루니보다도 더한 '악동 카리스마' 톰 메이건과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냉혈 카리스마'의 써지는 기럭지부터가 남다르다. 게다가 옷도 '엣지'있게 입을 줄 안다. 실은 외모에서부터, 이기적이고 재수 없어질 수밖에 없는 놈들인 것이다. 비주얼이 돼서 그런지 몰라도, 뮤직비디오가 곡의 매력을 도리어 깎아먹곤 했던 오아시스와 달리(!!), 카사비안은 뮤직비디오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그들의 유혹이 치명적인 데에는 눈에 보이는 모습도 큰 몫을 하는 셈이다. 

the best track : Vlad the Impaler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09. 9. 12. 15:28


 기대작에는 따라붙는 숱한 '말'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난 <마더>를 보기 전부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 영화에 대한 얘기들에 최대한 귀를 닫으려 애를 써야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스포일링을 제외한 얘기들은 어쩔 수 없이 내 귀에 와 닿았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모성애 이야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얘기, 또는 "상당히 불편한 이야기"라거나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 이야기"라는 얘기 따위들이다. 그런 얘기들로부터 난, 그만 이 영화가 엄청나게 기괴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범인이 알고보니 엄마였다거나, 혜자와 도준이 사실은 모자 사이가 아니라 연인 사이라거나. ;;;

 지나치게 기괴한 짐작은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이러저러한 얘기들에 노출된 나를 비로소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완전히 엇나간 선입견으로부터 영화를 마주하기 시작했으니, 백지 상태에서 본 것보다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더 높이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본 <마더>는 다행히 내 지나치게 기괴한 짐작과는 달리 지극히 정상적인(!) 엄마의 이야기였다. "극도의 아름다운 모성애 이야기"였고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게 됐으며, 너무나도 감동스럽고 가슴 아팠다.

 엄마의 사랑과 엄마의 헌신이 어떻게 그저 좋을 때에만, 마냥 좋은 모습으로만 나타날 수 있겠나. '엄마'라는 존재는 (특히 대한민국에서는)원체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리지 않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마더>를 보는 내내 우리 엄마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 엄마도 그런 분이셨다. 아들에게는 '데모질'이 몹쓸짓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시면서도, 그게 아들을 위한 일이라고 한다면 도리어 앞장서 데모에 나서는 분이셨다. 아들이 어릴 땐 옳은 것 그른 것을 가르치셨지만, 다 큰 아들이 옳은 것 그른 것을 가려 말씀드리면 그게 그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이라고 받아들이셨다. 엄마의 사랑은 맹목적이고 조건이 없다. 이유가 없고 이성적으로 따질 게 아니다. 그저 자식이 목적이고 이유고 유일한 조건이다. 수단은 무엇이 되든 상관 없다.

 <마더>에서 엄마의 사랑과 헌신이 끝간 데까지 가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이 세상 엄마의 사랑은 모두 같은 모양이다. 자식 인생을 좌우하는 교육권에서 과도하게 치맛바람을 날리시는 대치동 엄마들이나, 열사가 된 아들로 인해 남은 인생을 투사로 살고 계시는 엄마나, 풍진 세상 홀로 남겨져 괴로운 인생 살게 할 수 없다며 철부지 자식에게 동반 자살을 강요하는 엄마나... 각기 지닌 사연과 드러나는 모습이 다를 뿐 부피와 출발점은 같다. '헌신적인 모성애'나 '비정한 모정'조차 실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하나같은 자식에 대한 엄마의 고유 정서다.

 마지막 장면, 관광 버스를 광란의 도가니로 만드는 그 아줌마들도 실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엄마들이다. 한없이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한없이 창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너무나도 정상적인 엄마들이다. '대한민국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더러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지라도, 결코 미워해선 안될, 내겐 하나 뿐인 엄마들이다. 

 도준 역을 맡은 원빈의 가장 큰 단점은, '너무 잘 생긴 얼굴'이다. 연기자 원빈 본인으로선 억울해할 만한 일일텐데, 띨빵한 도준의 캐릭터에 원빈의 눈부신 얼굴은 관객의 감정 이입을 방해하기 충분했다. 나무랄데 없었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원빈이 아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쉬울 것 없을 것만 같았던 원빈에게 너무 잘 생긴 얼굴이 도리어 걸림돌이 될 줄 누가 알았겠냐만, 연기자로서 발전해 나가려면 배역 결정에 있어 본인 욕심을 좀 덜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대표 엄마' 김혜자의 연기는 이제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딱 기대치만큼 해주었는데, 사실 그 기대치는 이미 최고치였다. 그걸 가뿐히 해내다니, 대표배우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도준이 침통을 챙겨줬을 때 그걸 받아 들고 황망히 자리를 피하는 롱테이크 장면에서의 표정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짧은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다양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 장면에서만큼은 그동안 충무로에서 난다긴다 하는 배우 누구를 갖다 대놔도 김혜자를 대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표정은 또한, 초인적이기까지 한 엄마도 자식 앞에서 자식에게만큼은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을 들켰을 때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 세상에서 가장 약해지는 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엄마라는 사람은 자식을 위해 강해지고 자식 앞에서 약해지는, 그런 사람이란 얘기다. 

 봉준호 감독의 '썰 푸는 능력'은 한국 영화판에선 이미 최고다. 단순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전개시키는 이야기꾼으로서의 그의 재능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지없이 빛났다. 어찌보면 밋밋한 시놉시스를 가지고 2시간이 넘도록 관객의 호흡을 농락하며 관객의 시선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봉 감독의 연출력은, 앞으로도 최소 몇 년동안은 그의 작품을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