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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6 [인터넷] 반갑지 않은 부활 4
  2. 2009.05.09 [음반] 춤을 추다 1
  3. 2009.05.05 [공연] God bless them, too
만끽!2009. 8. 6. 20:08


 <딴지일보>를 마지막으로 봤던 게 언제였더라? 2002년 대선 직전, 대권 도전자들을 도발적으로 인터뷰했던 기사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그 때까진 비교적 꾸준히 이 '신생 매체'를 찾았던 모양이다. 그 이후, (지금은 부쩍 커지다 못해 막 나가는) 김구라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황봉알을 내세웠던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 런칭됐던 것이나, 성인들의 명랑 성생활을 지향하며 '남로당'을 출범시켰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간헐적으로 이 사이트를 드나들긴 했던 것 같다. 그리곤 기억이 없다. 그러니까 대략 한 5년동안, <딴지일보>는 잊혀진 존재였다. "그거 아직도 있나?" 싶을 정도로 차라리 내게는 폐간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와 지난 기사들을 찾아 보니, 없어졌는 줄 알았던 지난 시간 동안에도 <딴지일보>는 꾸준히 기사를 양산해 내 왔더라. 그건 예전처럼 정치 사회 문화 성인컨텐츠를 망라한, 여전한 수준과 물량이었다. 그런데 왜 그동안은 눈 밖에 났던 걸까? 왜 한 때 인터넷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이 매체가 잊혀진 존재가 되었던 것이냐?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령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같은 다른 매체들이 보다 뉴스다운 컨텐츠를 쏟아내 놓으며 '대안 매체'의 자리를 잠식해 버렸달지, '재미'있기는 <디씨인사이드>나 <풀빵닷컴>같은 골때리는 사이트들이 <딴지일보>는 게임도 안 되게 더 재미있었달지 . 팬더와 같은 주요 필진들이 총수와 갈라서며 <미디어몹>으로 떨어져 나간 것도 동력 상실의 요소였다. 게다가 초창기 센세이션을 불러왔던 '딴지투'는 자극적인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식상해져 버렸다. 개인적으론 <딴지일보>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주구장창 '명랑 성생활'만 떠들어대는 걸 보곤, 맛이 갔다고 단정지었다. <딴지일보>는 없어도 될, 그저그런 인터넷 신문 중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랬던 <딴지일보>가 돌아왔다. 관에 못질을 했어도 진작 했을 것만 같던 '구식 매체'가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식상했던 딴지투는 다시금 따라하고 싶을만큼 매력적이 되었고, 감을 잃은 것 같았던 재미도, 오, 빵빵 터져주신다. 매일 사이트를 찾아 왜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거냐고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언제 냉랭했냐는 듯, 기사마다 만면에 웃음을 선사하고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준다. 이게 다 MB덕분이다.

 내가 <딴지일보>를 다시 찾기 시작한 건, 노짱 서거 직후, 김어준 총수가 한겨레에 쓴 칼럼을 읽으면서부터다. 그 칼럼에서는 2002년 대선 전에 노짱과 했던 인터뷰를 언급하며 고인을 기렸는데, 내 기억에도 그 인터뷰 기사는 넷심의 상당 부분을 노짱으로 향하게 했을만큼, 솔직함이 정말 매력적이었던 대단히 파괴력 있는 기사였다. 그 칼럼을 읽고 옛날 그 인터뷰 기사를 다시 찾아 읽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찾은 <딴지일보>에서 이 신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만거다.

 칼럼에서 총수는 분개해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를, 그는 딴지의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 살인과, 소통 없이 밀어부치는 오만과, 공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드는 만행과, 최고 국가 수반의 참을 수 없는 허접함을 <딴지일보>는 특유의 방법으로 가뿐히 요리한다. 요리법은 '풍자'와 '해학'이다. 

 대화가 불가능한 폭압적인 권력을 마주했을 때, 힘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저항은 풍자와 해학이다. 답답해 홧병으로 죽어나가지 않으려면 허탈한 웃음으로라도 버티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딴지일보>는 거기에 기반해 출발했더랬다. 어느 순간 <딴지일보>가 재미없어지고 효용 가치를 급격히 잃었던 건, 역으로 그런 풍자와 해학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노무현의 5년은 그랬다. "할말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풍자와 해학을 굳이 찾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풍자와 해학이 다시금 필요해진 시절이 되고 말았단 얘기다. 모든 것의 시간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MB의 요상한 '타임 리프' 능력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다. <딴지일보>가 뒤늦게 만개해 회춘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인 거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딴지일보>를 찾는 심정이 그렇다. 어떤 독자는 "예전에 딴지일보는 재밌기만 했다. 하지만 요즘은 재밌기도 하고 고맙기까지 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러하다. 그런 심정은 한 두명의 독자만의 것이 아니어서, 이미 어떤 독자들은 <딴지일보>에 비품을 보냈는가 하면, 심지어 요구하지도 않은 구독료를 자발적으로 보낼 움직임마저도 솔솔 불고 있다. 

 <딴지일보>의 귀환, 내지는 부활은 사실 반가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풍자가 필요 없는 시대를 살아야 했다. 그래서 <딴지일보>같은 사이트는 폐간되고 말아야 했다. 풍자와 해학이 필요한 시대는 불운한 시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손으로 만든 불운한 시대의 유통기한 까지는 어찌됐든 버티고 버텨 살아 남아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라도, <딴지일보>는 정말이지 강추 중에 강추다.

 (특히 김어준 총수의 '틈새 논평'을 새겨 보시기 바란다. 어느 매체도 주목하지 않지만 어찌 보면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해주는 명코너다. '촌철살인'의 언론이 사라진 시절에, 그 정수를 깨닫게 해준다.)

calvin.

p.s. 미디어법을 염두에 둔 행보인가...? 김어준 총수는 요즘 <뉴욕타임스>라는 이름으로 한겨레 인터넷 TV 방송도 진행하고 있다. 딴지다움이 철철 흘러넘치는, 훈훈한 프로그램이다. 이것도 함 챙겨보시라.
Posted by the12th
만끽!2009. 5. 9. 13:48












 타고난 몸치인 나는 춤을 추지 않는다. 클럽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소싯적에 록카페를 가봤으나 그냥 맥주만 빨고 있었을 뿐이다. 회사 회식 끝무렵에 취한 상태로 가는 노래주점에서조차 흥을 내는 몸짓 한 번 보여주지 못해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였다.

 물론 환희가 극에 달했을 때, 몸은 내가 의도치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게 마련이다. 원래 춤이란 게 작심하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스스로 흥겨울 때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춤 추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댄스 음악류를 들으면서도 내 몸은 뻣뻣하게나마 좀체 움직여 본 적이 없다. 내가 몸으로 표현하는 환희는, 기껏해 봐야 축구장이나 록 공연장에서 방방 뛰고 팔을 휘둘러대고 머리를 흔드는 정도다. 

 프란츠퍼디난드의 새 앨범 <Tonight>을 다소 뒤늦게 구했다. 그렇잖아도 2집 이후 소식이 뜸했던 이 밴드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나온 세 번째 앨범, 반가운 마음에 앨범을 뜯자 마자 시동을 건 윈스톰 스테레오에 CD를 밀어 넣었다. 1집이나 2집과 다르지 않은 사운드며 음악 컬러에, "음, 역시로군" 하며 도로를 달렸다. 그러다 어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을 즈음, 몸이 들썩였다. 차는 그대로 멈춰 서 있는데, 어느 결에 손도 운전대에서 뗀 채, 나는 그만, 앉아서 춤을 추고 있었다!

 카스테레오가 'Track 3'라고 일러줬던 그 노래는 'No You Girls'였다. 언제나 그러한(!) 프란츠퍼디난드의 리듬과 멜로디로 시작하는 듯 하다 "no no no you girls never know"하는 절정부에 접어들면 사람의 몸을 은근히 들썩거리게 만드는, 와우, 그야말로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노래다. 

  "소녀들을 춤 추게 만들고 싶었다"던 데뷔 당시의 기조를 프란츠퍼디난드는 버리지 않았다. 경쾌하고 신나고 그래서 펑크록처럼 요란하지 않아도 충분히 춤을 추게 만드는 록큰롤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다. 라디오헤드나 뮤즈처럼 한없이 우울해지는 모던록이 있는가 하면, 모던록도 춤 추고 싶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투다.

 'No You Girls'의 강도가 가장 세지만, 다른 트랙들도 몸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은 평균 이상이다. 알렉스의 감질 맛나는 보컬로 손가락부터 까닥이게 하는 'Ulysses', 'No You Girls'의 흥분을 그대로 이어 나가는 'Send Him Away', 경쾌한 리듬감이 다리부터 근질거리게 만드는 'Bite Hard', 어깨춤을 이끌어내는 'What She Came For', 제목 그대로의 'Can't Stop Feeling'도 모두 무아지경의 경지를 만날 수 있게 한다.

 40분 가까이 춤을 추다 보면 마지막 트랙 'Katherine Kiss Me'를 만나게 된다. 해독제 같은 노래다. 앨범 내내 춤에 탐닉해 들어갔던 기분을 다시금 맑고 청아하게 씻어 되돌려 준다.

 <Tonight>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프란츠퍼디난드의 댄서블한 음악은 강화된 일렉트로니카에서 비롯된다. 일렉트로니카의 효과는 8분에 가까운 'Lucid Dreams'에서 극대화 되는데, 특히 4분 50초 쯤부터 시작되는 압도적인 신디사이저 음은 몽환적인 이 노래 뿐 아니라 전체 앨범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끈다. 차 안에서 볼륨을 있는대로 올리고 이 노래를 듣는데, 순식간에 차 내부가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돌변하는 느낌이었다. 반드시 헤드폰으로, 귀를 틀어 막은 채, 빠져들어 보기를 추천한다.

 올 여름에 국내 락페스티벌에 온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지난 해 카사비안을 놓친 나로선, 프란츠퍼디난드는 오아시스와 함께 반드시 락페스티벌을 사수해야 할 이유다. 그곳에서, 난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채, 마음껏, 춤을 추고 싶다.

the best track : No You Girls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09. 5. 5. 23:23

 서울을 떠난 뒤 노엘의 한 마디. "Who'd have thought it(누가 그럴 줄 생각이나 했겠나)?" 한국 놈들이 그렇게 미쳐 날 뛸 줄 자신은 미처 몰랐다는 얘기다. 그들의 팬을 자부한지 어언 14년이건만, 반성한다, 나 역시 그럴 줄 생각하지 못 했다. 예매가 오픈했을 때 스탠딩을 사수하지 않고 그만 좌석으로 내 빼고 만 것이다.

 나름 합당한 이유가 없진 않다. 2006년 서울 공연 때, 그만 두 다리에 쥐가 내리는 경험을 하고는 30대 중반의 저질 체력에 스탠딩은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한 거다. 아, 미안하다, 한낱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그 뒤 2007년 린킨파크 공연 때도 난 스탠딩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대로 고하자면, 그 린킨파크 공연이 내게 준 감흥이 그랬다. 2003년 린킨파크의 첫 공연 때보다 두 번째 공연은 여간 밍숭맹숭한 게 아니더라. 공연의 재미도 떨어졌고, 스탠딩의 열기도 첫 공연만 못했다. 그 때 난 생각했다. 한국인들의, 혹은 나의 열광은 그 밴드들이 우리나라를 모처럼 찾아 왔다는 사실에서 극단적으로 폭발한 게 아니었겠냐고.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다음 공연에도 찾아 오게 만들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몸짓이 아니었겠느냐고. 그래서, 오아시스의 두 번째 서울 방문도 첫 공연 때의 위대했던 감동을 감히(!)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라고, 난 생각했던 거다.

 다시 노엘의 한 마디. "The stand-out gig of the whole tour so far(지금까지 투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공연이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내게도 2009년 4월 1일의 공연은, 가장 뛰어난 무대였다. 리엄은 "crazy"를 연발했고, 노엘은 "special song for Korea"를 불러줬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탠딩의 군중들은, 거의 좀비 같았다. 좌석에서 내려다 본 그들은 쉬는 걸 모르는 듯 했다. 나 역시 의자에 앉지 못하고 시종일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 애썼지만, 스탠딩의 열기를 따라갈 수야 없었다. 내 주변 객석 관중들 가운데는 아 글쎄, 미동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팔짱만 끼고 무표정하게 무대를 응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스탠딩 좀비들은 끊임없이 뛰고 끊임없이 노래 부르고 끊임없이 갈채를 보냈다. 내가 보기에도 사랑스러울 정도였으니, 무대 위에서 그 광경을 본 갤러거 형제는 오죽했겠나.

 3년 전 공연에서의 하이라이트는 'Cigarettes and Alcohol'과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부를 때였다. 공연 실황 DVD에서나 보던 밴드와 관객의 혼연일체를 우리는 그때 고스란히 재연했던 것이다. 하이라이트로 삼을만한 노래는 역시 두 곡 정도일거야, 올해에도 역시 하이라이트는 두 노래에서의 떼창과 광란의 몸부림일테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공연은 진화했다.

 물론 'Cigarettes and Alcohol'에서도 관객들의 호응도는 대단히 컸다. 초반 마구 달리는 셋 리스트에 맞춰 그 때만 해도 최고의 열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내 'Morning Glory'가 그 자리를 빼앗았다. 후렴구 "need a little time to wake up!"에서의 관중들의 하늘을 찌르는 함성과 코러스, 그리고 집단발광은 전율을 불러오기 충분할 만큼이었다. 
 
 '위대한 합창'의 대상도 바뀌었다. 셋 리스트 상 'Don't Look back in Anger'가 첫 번째 앵콜곡으로 알려져 있던 터여서, 관객들은 이미 떼창을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마지막 노래 'Supersonic'을 마친 뒤, 스탠딩 앞쪽 관중들이, 오아시스 팬 카페에서의 어느 누군가의 제안대로 앵콜 연호 대신 'Live Forever'를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Live Forever'가 셋 리스트에서 빠져 있다는 사실에 서운해 하던 차에 누군가 고안해 낸 것이었는데, 그 노래를 들었던 건지 노엘이 홀로 기타를 메고 나오더니 특별 앵콜곡이라며 'Live Forever'를 부르겠다는 게 아닌가. 예상치 못한 선물에 모두가 감격했고, 그래서 따라부르는 'Live Forever'는 더 깊고 멀리 울려퍼질 수밖에 없었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런 감동의 정점에 이미 이르고 말았으니, 아무리 준비된 떼창이라고 하더라도 'Don't Look back in Anger'에서의 합창은 그 위대함이 다소 눌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리지널 곡이 아니라 어쿠스틱하게 편곡했던 것도 아마 분위기 상승을 억제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항상 대미를 커버곡으로 장식하는 오아시스는 마지막 노래로 비틀즈의 'I am the Walrus'를 부르고 내려갔다. 리엄은 흥분한 나머지 스탠딩 앞쪽으로 내려가 맨 앞줄 사람들과 일일이 손 터치를 했다고 한다. 이 역시 다른 세계 투어에서 흔히 있지 않았던 일이다. 갤러거 형제는 공연 열기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노엘이 남긴 마지막 말 한마디. "God bless them South Korean kids(한국 애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나 역시 그 말을 받아 전한다. 일생일대 최고의 무대를 업데이트 시켜준 오아시스에게도, 부디 신의 축복이 있기를.

calvin.

set list
Fuckin' In The Bushes
Rock 'N' Roll Star
Lyla
The Shock Of The Lightning
Cigarettes & Alcohol
The Meaning Of Soul
To Be Where There's Life
Waiting For The Rapture
The Masterplan
Songbird
Slide Away
Morning Glory
Ain't Got Nothin'
The Importance Of Being Idle
I'm Outta Time
Wonderwall
Supersonic
------- encore ----------
Live Forever
Don't Look Back In Anger

Falling Down
Champagne Supernova
I Am The Walrus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