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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27 [애니] 디즈니의 정변
  2. 2018.05.27 [영화] 꺼대다 만 것 같은 이야기
  3. 2018.05.27 [영화] 원톱 이병헌
만끽!2018. 5. 27. 21:37


애니메이션 <코코>를 봤다.


- 애초에 <신과함께>의 영화화는 이런 방식이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이 갖고 있는 그 재치스러움, 산뜻발랄함, 특유의 병맛스러움을 실사로 구현하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였다고 본다. <코코>가 그리고 있는 저승세계를 보라. 정확히 주호민이 그리고자 했던, 이승의 모양에 빗댄 재미진 그림이지 않던가. 아, 정말 우리에게도 픽사 같은 친구들이 있었더라면.


- 사실 <코코>도 뭐 따지고 보면 '가족주의' 계몽영화다. 디즈니가 만들고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언제 계몽영화 아닌 적이 있었나. 그런데이 영화는 내러티브의 힘으로 애들 따라 영화관을 찾는 어른들까지 자연스럽게 계몽한다. 영화의 제목을 주인공의 이름인 '미구엘'로부터 따 오지 않고 코코 할머니로부터 따 온 것 부터가 아주 명민하다. 이 '코코'를 링크로 이 영화는 아이에게는 아이에게 맞는 주제를, 어른에겐 어른에게 맞는 주제를 각각 내려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훌쩍이며 수건을 챙기게 되는 건 아이들이 아니다. 그 장면의 의미와 경험을 갖고 있는 어른들이지.


- 어렸을 때부터 제사라는 풍습이 그런 것이라 여겼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여 단 하룻밤이라도 죽은 이를 기억하며 그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그를 통해 가족의 결속을 강화하고자하는 것. 그게 제사의 본질이어야 하고 그 본질을 공고히 수행하게 하기위해 각종 형식적 장치들을 마련한 게 아니겠나. 막상 본질적 의미는 온데 간 데 없고 껍데기만 남아 절차니 형식이니 하는 것만 앞세우고 며느리들만 죽어나가게 하는 통에 제사무용론이 나오게 된 것이지만. 유교와 관계없는 멕시코를 통해 우리의 전통적 가족주의와 고인에 대해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던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 디즈니는 <뮬란>이나 <포카혼타스> 등을 통해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의 시각으로 다른 문명을 객체화해서 왜곡한다는 혐의였는데, <코코>를 보면서는 좀 다른 생각도 하게 됐다. 이런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면 동북아의 나라에서 멕시코 풍습이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여지나마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흥미로웠고, '죽은자의 날' 같은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상상의 동물인 알레브리헤는 어떤 존재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그저 마약 마피아의 나라, 범죄율이 높은 나라, 데낄라의 나라 정도에서 이 정도라도 관심도를 높일 수 있는 것도 디즈니의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둑들의 나라"라며 장벽을 세우고 싶어했던 트럼프에겐 의문의 1패가...


cla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18. 5. 27. 21:32



- 1987년에 난 뭘했나, 계산해봤더니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부모님이 건국대학교 앞에서 작은 분식집을 하셨더랬는데, 평소에는 그닥 데모도 잘 안 하던 단골 대학생들이 시내 데모에 참가하겠다며 우리 가게에 가방을 수북이 맡겨놓았던 장면 정도가 내 머리 속에 남은 6월 항쟁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다.


- 영화 <1987>은 사실 영화적으로 놓고 보면, 잘 만들어진 영화로 볼 수 없다. 최대한 노력했음을 알지만, 플롯은 정돈되지 못한 채 왔다 갔다 한다. 박종철 파트와 이한열 파트를 모두 한 영화 안에서 소화하려고 한 것 자체가 과욕이었다고 본다. 그만큼 1987년 벌어진 일들의 서사가 간단치 않았고, 그게 이 드라마틱한 소재가 30년 동안 영화화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할테다. 완성도를 높이려면 박종철 고문치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1부와 이한열 피격 이후 항쟁이 전개된 2부로 나눴어야 했다고 본다. 물론 그러자니 제작비도 많이 들었을테고, 손익분기점에 대한 자신감도 충분치 않았으리라. 여하튼, 구성이 거대서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 보여 나로선 실망감이 컸다.


- 영화적 각색의 일환이었겠지만, 극단적인 캐릭터 설정도 좀 거슬렸다. 가령 박처원이 맡은 악역은 너무 전형적이고 지나쳐서 도리어 몰입을 방해했다. 최환은 후까시나 대사를 치는 걸로 보면 총체적 진실을 까발려 알리는 주인공 정도라도 될 거 같은데, 실은 화장을 막고 부검을 진행한 것 까지의 역할만 했을 뿐이어서 허망했다. 순전히 강동원의 순수한 참여 의지 때문에 빚어진 일이겠지만, 순정만화 주인공같은 이한열은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 그 결과 뭐랄까,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팩츄얼드라마나 비주얼 현대사 교재 같은 느낌이었다. 혹은 새끈하게 만들어진 계몽영화 쯤? 미안한 이야기지만, 상업영화로서 재미를 느꼈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영화가 계산한 감동의 지점이 어딘진 알겠는데, 난 대단한 감동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는데, 예쁘고 똑똑하나 매력없는 여자애 같은 느낌도 조금.


- 교과서적 가치가 있다고 할 때 우려되는 점은 이야기가 특정 시기에 머물러 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뜻하지 않은 왜곡이다. 영화는 관련 인물들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끝나지만, 우리는 이미 그들의 이후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은 삶의 궤적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딴은 이 영화가 실존인물들을 필요 이상으로 미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생긴다.


-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보다, 영화적 상상력을 더 발휘해 연희와 같은 항쟁의 주체들이 저마다 각성해 나가는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1987년 6월의 주인공은 그들이어야 하지 않은가. 고문치사 은폐의 진실 폭로에 이끌려 쏟아져 나오는 객체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든 도화선만 있었으면 언제든 거리로 쏟아져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던 주체로서의 시민들 말이다. 그 편이 더 풍성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연희가 각성이 되자마자 서둘러 문을 닫으면서 그 때의 이야기를 그저 꺼내다 만 것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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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에 대한 단상 몇 개 더.

- 박종철이 누군지도 몰랐던 최환 검사가 화장 동의를 거부하면서 하는 대사는 "아니, 서울대생이 죽었는데"였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생의 지위는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사회적 자산이라는 정서가 강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울대생'은 더 말해 뭣하랴. 서울대생은 그 자체가 특별한 지위이기도 하고 계급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 희생자가 '서울대생 박종철'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최 검사 같은 사람들이 공안당국의 살인 은폐에 브레이크를 걸었을까? 참고로 80년대 내내 청년들의 의문사와 실종사건들은 숱하게 있었지 않은가. 그게 참 부조리하면서도 아이러니처럼 여겨졌다.


- 시위와 진압 장면들에서 자연스럽게 2017년의 촛불 혁명을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니까 1987년의 경험과 승리의 결과 덕분에 오늘날 가투 없이 평화롭게 여성들과 어린아이들과 노인들까지 함께 하는 백만 인파 집회가 가능할 수 있었던 셈이다. 87년 6월에 군을 동원해 무력진압을 하지 못했던 데에는 80년 5월 광주가 끝까지 저항하며 싸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과거의 희생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싸움에 도움을 줘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 최루탄 직격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과 물대포 직수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사례는 똑 닮았다. 둘 다 진압 수칙을 어기고 무리한 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한열의 사망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데에는 앞서 박종철의 희생에서 분노가 이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론의 기능도 한몫 했었다. 반면 백남기 농민의 사망 건은 주류언론에서 (명문화된 보도지침이 없었음에도) 철저히 통제되고 가려졌다. 최소한 시민 혁명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30년 뒤가 더 후퇴했던 셈이다.


- 언젠가 촛불집회를 다루는 영화도 만들어지겠지. 그 때 KBS는 어떻게 그려질까? 한겨레와 jtbc 기자만 출연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어 입이 다 쓰더라.


-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의 경우도 그렇고, 부검에 입회했던 안상수도 그렇고, 심지어 교도소에서 비둘기를 날린 이부영도 이후 신한국당이나 한나라당에서 정치 생활을 했다. 이재오와 김문수도 마찬가지였고. 김정남도 YS 청와대에서 교육문화수석을 맡았었다지. 그들은 변절했으나, 스스로 군부세력에 투항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 정당에 들어갈 때의 명분은 민주화진영의 한 축이었던 김영삼이 제공했다. 3당합당은 그렇게 3년 만에 87년 체제를 종식시켰고, 민주 vs 독재의 구도를 지역주의 정치판으로 뒤바꿔 한국 정치를 후진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단언컨대, 김영삼이 원흉이다.


- 열사가 되어 영원한 젊음을 얻은 박종철과 이한열도 만일 살아남아 늙었다면 꼰대가 되었을까. 둘은 6월 항쟁으로 '열사'라는 하나의 이름이 되었지만, 살아서 87년 대선을 마주했다면 부산 출신 박종철은 김영삼을 지지하고 광주 출신 이한열은 김대중을 지지하며 다른 길을 걷게 되지 않았을까? 기미독립선언의 주역들이 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됐고, 4.19의 주역들과 6월 항쟁의 다른 주역들도 이후 삶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주역들 뿐인가. 87년 6월을 만들었던 X86세대들과 넥타이부대는 2012년 박근혜 집권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저 사람이 각자 변한 것도 있을테지만, 그 때는 그 때의 명분과 정의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그 때의 것으로 남겼으면 한다. 지금은 지금의 명분과 정의가 있고, 내일은 또 내일의 명분과 정의가 있다.


- 만화를 잘 그린다는 점도 그렇고, 이름도 한끝 차이라 참 친밀감을 느끼고 싶었는데, 영화 속 이한열은 왜 이렇게까지 잘 생긴거냐. 아 이질감 느껴져 진짜. ^^;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18. 5. 27. 21:27


<그것만이 내 세상>을 봤다.


- 윤여정이 시사회에서 미안해 울었다는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나 배역에 대한 해석력에서 확실히 그간의 윤여정답지 않았다. 예능(혹은 식당? ㅋ) 하신다고 바빴나? 싶을 정도.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뭐 그렇다고 아주 망친 건 아니다. 그래도 윤여정 아닌가. 그러니까 윤여정이 너무너무 못했다기 보다는, 다른 두 배우의 퍼포먼스가 너무 뛰어났던 거다. 윤여정의 연기가 오징어로 보일정도로.


- 진태 역의 박정민은 기대치 않은 발견이었다. 배역에 대한 연구를 무척 성실히 한 것 같다. 자폐아 연기로는 이미 조승우가 제시한 모범답안이 있지만, 거기에 거의 근접했다. 다만 장애인 연기는 어려운 듯 보이지만, 사실 일정한 패턴만 읽고 나면 도리어 쉽기도 하다. 진짜 어려운 연기는 평범함을 연기할 때 나온다.


-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이병헌의 원톱 영화다. 기대치가 낮아 눈에 띠었던 박정민과 달리, 그는 (인간 이병헌에 대한 비호감 정서로) 팔짱 끼고 "어디 한 번 연기해 보시지? 얼마나 잘 하나 보게" 하는 자세로 보는 사람마저 겸허하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보잘 것 없이 평범한 조하 역을 빛내는 것 뿐 아니라, 시놉시스나 주제나 별 거 없는 이 평범한 영화를 자신의 연기만으로 특별하게 만든다.


- 영화는 서번트 증후군, 음악 천재, 삼류복서, 불치병, 가족간 오해와 사랑 등 진부하고 식상하고 여기저기서 많이 본 소재들을 끌고 와 적당한 솜씨로 버무려 종합과자세트 같이 구성을 한다. 쉽게 얼렁뚱땅 만든 건 아니어서 꽤 볼만한 장면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보고 나서 (배우들 빼곤) 별다른 잔상이 남지 않는다. 감독이나 대본가의 지분은 미미한 수준이다.


- 특별출연한 한지민조차 강한 인상을 남기며 영화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 와 이렇게까지 예뻤나? 싶을 만큼 존예... <부활> 때가 리즈시절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원숙해지니 단점으로 보였던 가벼운 이미지마저 극복을 하는구나. <빠담빠담>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