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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3.22 환절기 조심 2
얄라리얄라2007. 4. 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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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엔 9시 뉴스 파트의 당직을 섰다. 주말 9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뽑아 제작하고 일요일 아침 10분짜리 뉴스의 큐시트를 짜는 일이다. 9시 뉴스가 끝난 뒤인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 사이는 그래서 비교적 널널하다. 그 때 그 때 터지는 사건사고 막아야 하느라 늘 마음 졸여야 하는 사회팀 야근과 같지 않아서 대략 서너시간은 그냥 하릴 없이 밤을 새는 일이다.
 
 밤이 무료할 것을 알았는지 밤 10시 50분부터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중계해 준다. 미들스브로와 아스톤 빌라의 경기다. 미들스브로는 그닥 호감을 주는 팀은 아니지만, 이동국의 출전 여부가 궁금해 그냥 저냥 본다. 호쳄박의 짜릿한 프리킥으로 먼저 선취점을 올렸지만 미들스브로는 무력하게 역전패 하고 말았다. 이동국은 후반 15분여를 남겨두고 교체 출전했지만, 공 터치도 몇 번 못 해본 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다.

 이어서 새벽 1시 반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왓포드를 상대로 FA컵 준결승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 앞서 방송한 유럽 골들을 모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자니, 왓포드의 FA컵 상승 기세가 만만치 않다. 캐릭의 멋진 스루패스와 스미스의 재치, 루니의 테크닉이 선취골을 뽑아내 쉽게 경기가 풀리려나 했는데, 왓포드가 환상의 시저킥으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절정의 기량을 보이는 호나우두가 역전골을 넣는다. 전반전만 보고 한 시간여 눈을 붙이고 와 보니, 역시나 4-1로 낙승했다는 소식. FA컵 탈환의 날이 머지 않았다.

 아침 6시 뉴스 큐시트를 짜고 진행, 8시 뉴스 큐시트를 짜고 났더니 교대자가 출근했다. 졸음 운전을 피하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집에 돌아와 대충 아침 밥을 먹고 모자란 잠을 청했다.

 오후 3시 반. 부시시 일어나 안방 텔레비전을 켜 제꼈다. 상암에서 FC서울과 울산현대의 리그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라이벌인 대 수원전이 아닌데도 관중들이 적잖게 들어찼다. 대략 3만명 정도는 돼 보인다. 토요일 당직만 아니었으면 나 역시 '또' 상암을 찾을 셈이었지만, 아쉬운대로 텔레비전 중계로 달래야겠다.

 울산은 역시나 만만치 않은 팀이어서 양팀의 공방이 만만치 않다. 서울은 내내 경기를 지배하다시피 하긴 했지만 울산이 상대팀 분석을 꽤 많이 한듯 빈틈을 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울산의 역습이 더 위협적이다.

 서울은 그동안의 주전선수들 대신 로테이션 멤버들을 피치 위에 올렸다. 초반 돌풍의 주역이었던 이청용이 빠졌다. 김동석의 움직임이 유난히 기민했지만, 그 뿐이었다. 두두는 도무지 패스플레이를 할 줄 모르고, 이을용도 막무가내식 답답한 경기 운영을 보였다. 박주영은 고립됐고 정조국은 내내 무리했다. 부상으로 결장 중인 이민성과 김은중의 공백이 크게 느껴질 즈음, 경기가 0-0으로 싱겁게 끝나 버렸다.

 저녁에는 FIFA07 게임을 돌렸다. 커리어모드로 팀 운영을 하는 중인데, 내가 고른 팀은 (당연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팀을 맡은 첫 시즌에 리그 우승과 칼링컵 우승을 거머쥐고 두 번 째 시즌을 맞이한 참이다. 포티라는 젊은 유망주와 공격형 미드필더 곤잘레스, 그리고 미국의 축구 신동 아두 등을 영입해 오고, 노쇠한 스콜스와 활용도가 떨어지는 실베스트르와 플레처를 이적시켜 버렸다. 잦은 실수를 반복하던 주전 골키퍼 반데사르도 다른 팀에 내 주고, 대신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문장인 로빈슨을 당겨 왔다. 이 팀은 내가 재정비한 나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내 팀에서 루니의 득점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첫 번째 시즌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로 득점왕에 오르더니 두 번째 시즌에서도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선보이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는 실제처럼 득점력이 좋진 않지만 크로스가 일품이어서 어시스트는 수위권이다. 그는 벌써 종합능력치가 최고치에 이르기까지 했다. 박지성은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돼 있지만 왼쪽이나 오른쪽 윙으로 뛸 때 더 진가를 발휘한다. 실제에서와 달리 체력이 약해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지만 침투 능력이 뛰어나서 호나우두보다도 득점이 더 많다.

 두 번째 시즌에서도 리그 우승은 탄탄대로. 칼링컵과 FA컵도 거머쥐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AC밀란을 만났다. 경기 초반 상대의 카테나치오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시즌 내내 생각만큼 활약을 못 해주던 포티가 소나기 골을 퍼부으며 4-0으로 승리, 두 번째 시즌만에 쿼더러블을 달성해 내고야 말았다.

...... 이런.

 내 정신적 도피처가 축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세상만사 좋은 일 안 좋은 일, 복잡한 일 어지러운 일에 모든 신경을 끊고 그만 축구에 빠져 지냈다. 룰이 단순하고 피아 구분이 명확해 피해 있기 안락하다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만 도망쳐 있어야겠다. 계기가 필요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7. 4. 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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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탓인가, 긴장감이 떨어졌나, 자제력이 부족해졌나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이유일것이다..;;) 최근 들어 술을 마시고 필름 끊기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아침에 눈 뜬 자리는 분명 우리 집 내 방 침대 위인데 거기까지 어찌 무사히 들어오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거나, 술자리에서 오고갔던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내가 했던 행위와 내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 있질 않으면 보통 난감하고 불안한 게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도 왜 했는지 알 수 없는 어떤 기괴한 행동들을 하지나 않았나, 쉬운 말로 '술자리 실수'를 한 게 아닌가 싶어서다. 아침에 출근하니 여직원이 따귀를 때린다거나, 지갑 속에서 카드명세표가 수두룩하게 쏟아진다거나 하는 어떤 숙취 해소용 음료 광고에서처럼 말이다.

 이전에는 술을 마시면 몸이 먼저 못 견뎌 하면서 꾸벅꾸벅 졸기부터 했는데, 이제 몸은 외려 펄펄 나는데 정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몇 차례 술자리에서 정신을 놓고 나면 끊어진 기억의 줄을 잇기 위해, 듬성 듬성 빈 기억의 퍼즐을 꿰 맞추기 위해 애 쓴다. 그 노력의 지향점은 내가 실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다. 특히 성추행같은 파렴치한 짓을 했는지, 욕지거리 같은 폭력적인 짓을 했는지, 추태같은 면구스런 짓을 했는지 등이다. 한 마디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할만한 짓을 했는지를 살핀다.

 가령, 자못 정색을 하고 정말 자기 기억에는 없는 일이었노라고 '주장'하는 최연희 씨의 경우처럼 성추행과 같은 행동도 결국은 술에 취해 기억의 연속성이 끊어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정신 세계에는 악성코드도 생기고 바이러스도 기생하기 시작하고, 자아는 수없이 분열된다. 또한 술버릇의 패턴은 비교적 일정한 편이기도 하지만, 어느 계기 어느 시점에서는 전환점을 갖기도 하고 변주하는 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제까지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절대(!) 없다. 자신의 평소 일관된 술버릇은 과신하지 않는 편이 좋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술이 깬 다음 날 사람들이 나를 슬금슬금 회피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몇 차례, 전날 상황을 복기해본 결과 오히려 난 술에 취하지 않은냥 말짱한 척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더러는 집에 가는 차를 잡아 태워 보내는 '초인적인' 짓까지 서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날 상황을 물으면 오히려 "너 취했었어?"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어주니, 정말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재밌는 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이성의 끈을 놓았다 해서 무의식이 무방비로 표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마음 속에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놓은 이야기를, 술에 취했다 해서 늘어놓지는 않는 모양이다. 술에 취해 내가 했다는 말을 전해(!) 들어보면, 어떤 얘기들은 외려 깊숙한 곳의 나와는 너무 맞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숨기고 있는 나는 사실 겉으로 치장한 것과 달리 굉장히 지저분한 인간이고, 의식이 없는 가운데 행여 그게 드러날까 싶어 필름 끊기는 일을 두려워 하는 것인데, 술에 취한 나는 그렇게 숨겨진 내가 드러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치 하이드 씨가 튀어나오는 것 처럼 말이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을 때의 나는 숨겨진 자아의 일부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전혀 별개의 자아인 듯 하다. 그는 속물이 되어 버린 나와는 달리 이상을 이야기하고 지향점을 추스르고 강한 주장을 편다. 꽁하고 안으로 숨어 기어들어가고 싶어하는 나와 달리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사람들을 좋아한다. 술에 정신을 잃을 때마다 나타나 주는 나의 하이드 씨는, 내 걱정과는 전혀 달리 사실은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하이드 씨는 내가 되고 싶어했던 나, 내가 아직 다다르지 못한 나인지 모른다. 이성을 잠시 내려놓는 일로 무의식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직도 나는 꿈을 꾸고 싶은 모양이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7. 3. 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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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포근했다 싸늘해지고, 화창한가 싶더니 비가 오고, 낮엔 따땃하더니 저녁엔 불쑥 시려오고... 겨울의 시샘인지 봄 날씨 변덕인지에 어쨌든 기예 감기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이미 목이 쨍 하니 아파 왔고 더이상 대책이 서질 않았다.

 절기상으로는 봄이라고 하나 그 절기라는 게 사실 사람들이 편의에 따라 만들어 놓은 것. 자연의 이치란 것이 어디 3월 됐다고 어제까지 춥던 날이 갑자기 화사해지고, 경칩 지났다고 개구리들이 채 녹지도 않은 땅 위로 불뚝 불뚝 솟아 오르게 되겠나. 그러니 사실은 아직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것이다. 겨울의 환경에서 봄의 환경으로 디졸브되는 이런 때, 몸은 겨울과 봄의 경계 위에서 어느 쪽에도 장단을 맞추지 못하고 무기력해지고 만다. 그게 환절기라는 것이다.

 몸 뿐만이 아니다. 마음에도 '마음가짐'이라는 게 있어서 어느 환경에 걸맞게 세팅된 마음은 다른 환경으로 넘어설 때 깨끗하게 정리되질 않는다. 용케 머리가 기민하게 알아 줘 생각으로 노력하려 드는 경우라 할지라도, 마음은 무 자르듯 그렇게 산뜻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요컨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력하니, '환절기'에  속수무책으로 아파 오는 건 어쩜 당연하다.

 사람들 편의에 따라 만들어놓은 절기처럼, 나무 막대기로 찌이익 선을 긋고는 여기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요이 땅" 하듯 되면 얼마나 간편할까? 거기에 맞춰 몸도 마음도 자동으로 기어를 바꿔 걸고 깔끔하게 버텨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완충 지대니 적응기니 하는 것이 필요도 없을테고 말이다. 버벅거림도, 또 그 때문에 오는 아픔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사회팀 생활을 벗어날 생각을 하니 '의무복무' 기간 끝났다는 안도감과는 별개로 덜컥 겁이 난다. 1년차 때 꼬박 1년, 2년차 때 지역에서,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꼬박 1년까지 회사 들어온 이래 내내 했던 짓이 사건사고 기사 쓰는 일이었으니 그 밖에 다른 것에 대한 개념도 준비도 없는 까닭이다. 4월 1일자가 되면, 전혀 다른 팀에서 확연히 다른 업무를 부여받을 터인데 사회팀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내 몸은 과연 새로운 환경을 배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되는 것이다.

 혹한기보다도 무서운 환절기다. 스스로에게 몸도 마음도 조심 또 조심하기를 당부해 본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