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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3.10 사랑니 2
얄라리얄라2007. 3. 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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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포근했다 싸늘해지고, 화창한가 싶더니 비가 오고, 낮엔 따땃하더니 저녁엔 불쑥 시려오고... 겨울의 시샘인지 봄 날씨 변덕인지에 어쨌든 기예 감기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이미 목이 쨍 하니 아파 왔고 더이상 대책이 서질 않았다.

 절기상으로는 봄이라고 하나 그 절기라는 게 사실 사람들이 편의에 따라 만들어 놓은 것. 자연의 이치란 것이 어디 3월 됐다고 어제까지 춥던 날이 갑자기 화사해지고, 경칩 지났다고 개구리들이 채 녹지도 않은 땅 위로 불뚝 불뚝 솟아 오르게 되겠나. 그러니 사실은 아직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것이다. 겨울의 환경에서 봄의 환경으로 디졸브되는 이런 때, 몸은 겨울과 봄의 경계 위에서 어느 쪽에도 장단을 맞추지 못하고 무기력해지고 만다. 그게 환절기라는 것이다.

 몸 뿐만이 아니다. 마음에도 '마음가짐'이라는 게 있어서 어느 환경에 걸맞게 세팅된 마음은 다른 환경으로 넘어설 때 깨끗하게 정리되질 않는다. 용케 머리가 기민하게 알아 줘 생각으로 노력하려 드는 경우라 할지라도, 마음은 무 자르듯 그렇게 산뜻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요컨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력하니, '환절기'에  속수무책으로 아파 오는 건 어쩜 당연하다.

 사람들 편의에 따라 만들어놓은 절기처럼, 나무 막대기로 찌이익 선을 긋고는 여기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요이 땅" 하듯 되면 얼마나 간편할까? 거기에 맞춰 몸도 마음도 자동으로 기어를 바꿔 걸고 깔끔하게 버텨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완충 지대니 적응기니 하는 것이 필요도 없을테고 말이다. 버벅거림도, 또 그 때문에 오는 아픔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사회팀 생활을 벗어날 생각을 하니 '의무복무' 기간 끝났다는 안도감과는 별개로 덜컥 겁이 난다. 1년차 때 꼬박 1년, 2년차 때 지역에서,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꼬박 1년까지 회사 들어온 이래 내내 했던 짓이 사건사고 기사 쓰는 일이었으니 그 밖에 다른 것에 대한 개념도 준비도 없는 까닭이다. 4월 1일자가 되면, 전혀 다른 팀에서 확연히 다른 업무를 부여받을 터인데 사회팀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내 몸은 과연 새로운 환경을 배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되는 것이다.

 혹한기보다도 무서운 환절기다. 스스로에게 몸도 마음도 조심 또 조심하기를 당부해 본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7. 3. 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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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금니 충치가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 정도여서, 결국 가기 싫어하는 치과엘 가게 됐다. 어떻게 잘 좀 예쁘게 때워달라고 말했더니, 의사 선생이 이건 사랑니란다. 때우지 말고 그냥 확 뽑아 버려야 한단다.

 사랑니 난 기억도 없는데 사랑니라니라니라니.... 누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사랑니 날 때마다 고생하는 걸 지켜보고, 끝내 치과에서 생니를 뽑아 볼이 퉁퉁 부은 것을 볼 때마다 아직 사랑니가 나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또 앞으로 나게 될 것에 두려워 했더랬는데, 소리소문도 없이 사랑니가 나버렸다는 거다. 그것도 위아래 네 군데 죄다. 가지런한 모양새로, 마치 지가 어금니인 것처럼 감쪽같이 위장을 하고 말이다. 아유, 앙큼한 것들 같으니.

 “거 참 신기한 일이네... 아니 이게 언제 난 건데요?” 혀끝으로 새삼 재발견한 사랑니들을 훑어가며 질문을 던지자 의사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한다. 하기사, 이 주인인 나도 몰랐는데 처음 본 이 양반이 알 턱이 있겠나. 사랑니라면 아직 나지 않은 것까지 잇몸을 째서라도 모조리 뽑고 싶어하는 게 치과 의사들이라지만, 별 소란 없이 우뚝 나서 생니 모양을 하고 있는 이놈들을 어쩌지는 못할테다. “뭐 다 뽑을 필요는 없는거죠?” 부러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묻자, 의사 선생은 아주 나직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그래도 그냥 두면 썩을 수 있으니까 가급적이면 뽑는 게 좋죠”라며 불끈대는 본능을 숨기지 않는다. 엇... 경계 태세 강화.

 충치가 절반 이상을 파먹어 들어갔다는 왼쪽 아래 사랑니 녀석은 아무래도 뽑는 게 좋겠지만, 이 녀석은 다른 사랑니들과는 달리 어금니 기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악관절 장애 탓에 위치가 이미 어금니 위치인 까닭이다. 이걸 뽑아버리면, 아무래도 어금니 하나 뽑은 거나 매한가지의 상황일 것인데, 다음에 병원 갈 때 정말 때워줄 수는 없는 거냐고 다시 한 번 물어봐야겠다.

 사랑니가 고통 없이 나 준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인데, 뭔가 좀 허전하기도 하다. 남들 대부분이 겪는 사랑니 통증이라는 게 내게는 없는 것이라니 말이다. 대개 사랑에 빠지는 나이에 나는 거라 해서 사랑니라고 부른다고도 하고, 통증이 사랑의 고통과 비견할 만 하다 해서 사랑니라고 부른다고도 하고, 뭐 그래서 사랑니로 아프고 나면 철이 들었다고 한다는데, 그에 따르면 난 아직 사랑다운 사랑도 해 보지 못했다는 말이고 또 아직 철도 채 들지 않았다는 얘기일테니 말이다. 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거 같네.

 아프지 않고선 철이 들지 않는다는 얘기. 사랑니로 아팠다면 그걸로 때울 수 있었을 텐데, 내겐 그 과정이 없었으니 철이 들자면 다른 통증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좀 더 아파야 하려나? 세상엔 확실히 공짜가 없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