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0.02.23 엄마의 웃음 2
  2. 2009.10.06 명품 홍 감독 4
  3. 2009.09.22 원더 '올드' 보이 2
얼굴2010. 2. 23. 21:57

 나는 '비실이' 배삼룡의 코미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마 봤더라도 전성기가 다 지난 원로 코메디언의 추억의 연기를 스쳐지나듯 본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코미디는 내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배삼룡의 이름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 있었다. 어머니가 그의 코미디를 너무나도 좋아하셨기 때문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어머니는 갓 시집오셨던 새색시 시절에,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면 정확히 배삼룡이 나오는 순간부터 웃기 시작해 그가 퇴장하고 난 뒤에야 웃음을 멈출 수 있으셨다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만으로 어머니는 방안을 데굴데굴 굴러가며 웃었고, 더러는 웃다 숨이 넘어갈 고비도 몇 차례 넘겼다고 한다. 

 배삼룡 이후에 그에 근접한 웃음을 어머니에게 줬던 건 '맹구' 이창훈 정도였다. 그러나 이창훈 역시 파괴력은 배삼룡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웃음 코드는 전형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에 닿아 있었던 셈인데, 슬랩스틱 코미디의 퇴조 경향과 함께 어머니 역시 그만큼 크게 웃을 기회를 잃어버리셨다.

 내가 배삼룡을 대 코미디언으로 각별히 추모하게 되는 건, 내 어머니의 웃음과 즐거움에 그가 남긴 큰 기여도 때문이다. 점점 웃을 일을 잃어가시는 내 어머니를 생각하니, 브라운관 밖에서나마 그의 존재가 사그라졌다는 사실이 더없이 안타깝다.

 어머니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줬던만큼, 저 세상에서의 그의 자리도 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09. 10. 6. 18:13


지금이야 축구 대표팀 경기가 답답하게 풀릴 때면
"박지성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라고 탄식하지만,
박지성이 지금의 '유닛'이 되기 전에는
"홍명보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가 주된 탄식이었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감 때문에
그가 은퇴를 해야 했을 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축하의 마음보다 안타까움과 불안감이 앞섰다.
"아, 이제 한국 축구는 어찌 되나"... 뭐 그런 거.

하지만 홍명보가 가면 어딜 가겠나.
선수 시절 그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폭넓은 시야와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은
감독이 됐을 때 더 빛을 발하는 요인이니 말이다.
U-20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보고 있자면,
축구는 역시 '감독의 게임'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는 또한 한국에 새로운 축구 감독상을 심어주었다.
축구 감독이 섹시할 수도 있다는 점.
네덜란드의 반바스텐 감독이나 독일의 뢰브 감독처럼
우리에게도 능력 있는데다 잘생기고 새끈하기까지 한 
'명품 감독'이 있음을 세계 만방에 떨칠 수 있다는 점이 자못 자랑스럽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09. 9. 22. 13:31


 현실은 그랬다. 서른 하나의 나이, 부상 잦은 유리몸, 라이벌 팀인 리버풀FC 출신, 게다가 무적 선수. '원더 보이'라는 전설적인 수식어는 그저 과거지사일 뿐, 냉혹한 현실 속의 마이클 오언의 위치는 딱 그정도였다. 그런 그의 영입, 나아가 C.호날두의 공백으로 남은 영광의 백넘버 7번 배정은 퍼거슨 경의 지나친 선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퍼거슨만은 알고 있었다. 98년 월드컵에서 그가 보여줬던 신기의 드리블과 골 결정력이 한 때의 우연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마이클 오언은 EPL, 아니 세계 축구 역사상 길이길이 남을 09-10 시즌 맨체스터 더비 1차전에서 가장 극적이고 화려한 방법으로 자신의 부활을 알렸다. 그의 영입을 두고 일었던 논란을 생각하면, 이 짜릿한 승리는 가히 퍼거슨의 마법이라 부를만 하다. 그는 마이클 오언도 살리고 팀도 살리고, 축구의 참된 매력도 살려냈다.

 오언의 별명 '원더 보이'는, 사실 그의 전성기가 너무 서둘러 찾아왔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소년을 벗어나 아저씨가 됐을 때, 그는 더이상 놀랍지 않아진 것으로 여겨졌다. 신기에 가까웠던 스피드와 드리블, 체력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이클 오언의 '놀라움'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이와 무관하게, 아니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더 노련해지는 위치선정과 골 결정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더이상 소년이 아니지만, 그가 선사할 놀라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원더 보이'를 뛰어넘은 그의 부활에 박수를 던진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