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09.08.19 평화주의자 4
  2. 2009.02.12 기라드 6
  3. 2008.04.12 박지성 정신 4
얼굴2009. 8. 19. 09:48

ⓒ 손문상

 내가 태어날 무렵 이미 거물 정치인이었던 까닭에, 내게 그는 '지역주의 할거 보스 정치인', '집요한 대통령 도전자', '정계은퇴를 번복한 거짓말쟁이', '그들만의 선생님'이었다. 민주화 운동 전력은 김영삼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집권을 위한 활동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전향적인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잘 봐줘 봐야 '이상을 쫓는 민족주의자'로 보였다. 처음 대선 투표권이 주어졌던 97년, 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판단으로 끝내 그에게 한 표를 행사하지 않았다.

 김대중에 대한 내 평가는 그의 한 마디로 달라졌다. 북한과 부시 미 행정부와의 관계가 틀어질대로 틀어져있던 때, 퇴임해서 세상 사나운 꼴 안 보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도 좋을 그 때, 노구를 이끌고 그가 던진 말, 

 "'대화'는 악마와도 하는 게 '대화'다". 

 이 한 마디는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평화주의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는 가장 본질적 의미에서의 '평화주의자'였다.
 
 식민지를 갓 벗어나자 마자 첨예한 이데올로기 깃발 아래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반목과 증오만이 가득찼던 정신 나간 분단국가에서, 이 정도 깊이의 평화주의 철학을 지닌 지도자가 나오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된 일은 필연이었다.

 대한민국에게 노무현이 두 번 다시 없을 평등한 지도자였다면, 대한민국에게 김대중은 두 번 다시 없을 국제적인 지도자였다. 그 두 명의 큰 별이 석달 사이에 졌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최악의 지도자를 두고 있다. 바야흐로 어둠의 시대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09. 2. 12. 18:10

 세뇰 귀네슈 감독은 이름값으로 선수단을 구성하지 않았다. 히딩크가 그랬듯 귀네슈 역시 이방인이었던 까닭에 학연 지연, 지명도 따위를 무시한 채 철저히 실력 위주로 자신의 FC서울을 만들어 나갔다. 전훈 기간을 통해 될성부른 선수들을 발견해 냈고, 시즌이 시작되자 곧바로 중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시즌 초반 돌풍의 배경이었다.  

 '귀네슈의 아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오른쪽에서 화려한 돌파를 자랑했던 이청용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가능성이 엿보일 뿐 인상적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기성용을 그 가운데서 돋보이게 드러냈던 것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었다. 친선 경기 뒤, 대체로 졸전을 펼친 FC서울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기성용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 전해진 것이다. 퍼거슨의 눈도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에게 길죽한 체격 조건 외에 무언가 있다는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 

 그가 대중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실패한 혁명'으로 기억되는 2007년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 대회였다. 그 대회에서 그는 수비수로 참가해 인상적이었던 길고 정확한 패스로 '기택배'라는 별명을 얻었다. 난 그 별명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패스 센스만큼은 정말 일품이었다.  

 지난 시즌 기성용은 새로운 별명을 받았다. '기라드'.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신한 그는 자신의 공격 본능을 서서히 드러내더니 산뜻한 패스 센스와 더불어 위력적인 킥을 선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제 그를 보면 막 설레이기까지 한다.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곱상한 외모 때문인가? ㅋ 이란 전에서 보여준 수차례의 날카로운 슈팅도 마음을 설레이게 했지만, 지금껏 그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아서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기라드가 지금은 제라드를 끌어들인 기성용의 별명이지만, 언젠가 기성용을 끌어들인 제라드의 별명이 될 날을 꿈꿔 본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08. 4. 12.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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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성은 신체의 핸디캡을 극복했다.
 왜소한 체격과 평발이라는 한계를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넘어서고 말았다.

 박지성은 한국 사회의 편견을 이겨냈다.
 엘리트 코스 따위 밟아보지 못했고, 잘 나가는 학벌도 아니었지만 이젠 한국 최고의 선수다.

 박지성은 시련도 정면 돌파했다.
 첫 유럽 무대인 네덜란드에서 홈 팬들의 야유까지 받았지만, 다음 시즌 그 야유를 환호로 바꿨다.

 박지성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팀에서 그는 결코 최고가 아니지만 자신만의 색깔로 어느새 팀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

 박지성은 이미 자신만의 정신을 만들어 온 삶의 궤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물론 아직도 진화 중이지만, 지금까지의 모습만으로도 어느새 존경스러울 정도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