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끽!2018. 9. 18. 14:07


 반려자와 아이가 처가에 간 사이,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는 무료 조조영화 서비스로 영화 <서치>를 봤다.


- 사실 이런 류의 '추리영화'에 별 관심이 없어 예고편을 봤을 땐 그다지 끌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주변의 평이 꽤 괜찮았고, 막상 급히 조조 영화를 보려다 보니 적당한 거리의 영화관과 맞는 시간과 예매율을 따져봤을 때 이 영화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 여전히 미심쩍은 기분으로 팔짱을 낀 채 좌석에 앉았으나, 영화가 아련한 기억 속 전화모뎀 접속 소리와 함께 윈도우XP의 그 유명한(!) 시작멜로디와 익숙한 캘리포니아 초원의 '바탕화면'으로 시작하자, 이내 경계심이 풀어지며 몰입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윈도우XP와 디지털사진과 캠코더와 오래된 유튜브 화면들이 지나가며 한 가족의 가정사를 훑어나가는 인트로 영상들이, 한밤중 전화모뎀으로 나우누리에 접속하던 아재의 추억과 감수성을 저격하고 만 것이다.


-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 데이빗 킴이 딸 마고가 실종된 뒤 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제목 < Searching>은 실종자의 '수색'도 되지만, 동시에 '검색'이란 뜻이기도 하다. 데이빗은 딸의 행방을 좇기 위해, 디지털 세상을 샅샅이 뒤져 딸의 흔적을 찾아나간다. 그것은 딸의 현재 위치를 찾는 과정임과 동시에, 아비인 자신이 몰랐던 딸의 진짜 모습을 알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가깝게 지내고 잘 해 주며 수시로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딸이 디지털 세상에 흩뿌려 놓은 본심을 찾아나가다 보니 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윈도우XP와 맥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디지털 발전과 함께 성장한 (우리)세대인 만큼, 데이빗은 디지털에 매우 친숙하고 그만큼 젊은 아이들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자부하는 40대이지만, 10대인 마고가 빠져있다는 "텀블러"가 뭔지도 모른다. 딸이 주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유캐스트나우'라는 라이브 영상 소셜미디어도 처음 들어가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뒤늦게 딸이 가진 쓸쓸함과 외로움을 마주한다. 어쩌면 그건, 딸과의 소통을 편리하게 디지털에게만 맡겨놓았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어느새 나보다 유튜브를 더 잘 다루기 시작하고, 이제 자기만의 비밀이 생겼는지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으며, 귀찮게 굴지 않고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진 딸 아이와 나의 머지 않은 미래 모습을 보는 거 같아 섬짓했다. 놀자고 보채면 귀찮아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기 보단 아이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도 좋지만, 사실 내용보다 인상적인 건 이 영화의 형식이다. 디지털 환경을 배경과 주제의 일부로 삼은 영화답게 디지털 화면들을 고스란히 영화의 형식으로 차용했다. 정말, 기가 막힌다. 구글을 검색하고, 소셜미디어로 네트워크를 확인하고, 전화통화하고, 영상통화하고, CC-TV를 보고, 구글스트리트뷰로 현장을 확인하며, 밴모로 송금하고 레딧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는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그대로 캡쳐해 보여주는 구성으로 영화는 그 모든 이야기를 전개한다. 심지어 영화 촬영장비는 1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그런데도 영화는 어떤 이질감과 무리 없이 자연스럽고도 충분히 몰입감 있게 스크린을 채운다. 왜냐하면 이제 세상에는 어느 곳에나 '카메라'가 있기 때문이다!


- 심지어 뉴스 영상도 텔레비전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전달된다. 젊은 사람들이 뉴스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방송사인 ABC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전해지는 뉴스는 방송뉴스이기만 하지 않다. 이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사진 슬라이드가 주요 뉴스로 전달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디지털시대 뉴스 미디어가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업자로서 꽤 인상적으로 보였다.


-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처음 윈도우XP로 가족의 추억을 기록하던 데이빗은 이제 더 이상 윈도우 PC를 쓰지 않는다. 그와 딸은 맥을 쓴다. 전화기는 물론 iMessage와 Facetime이 가능한 아이폰이다. 윈도우PC는 그저 과거 흔적을 뒤지기 위해 오랜만에 들어갈 뿐이다. 딸 마고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더이상 열심히 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이나 텀블러에 빠져 있고, (페리스코프를 차용해 허위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유캐스트나우를 쓴다.


- 마고의 실종 사건이 공개 수색으로 전환된 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인터넷 여론과 마고 친구들의 표변한 반응들은, 이 디지털 세상의 즉흥성과 속물성을 꼬집는 장면으로 씁쓸하면서도 짜릿했다.


-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캘리포니아 산 호세다. 스탠포드가 있고 실리콘밸리가 옆에 있는 그 곳 말이다. 주인공 데이빗 킴 가족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설정돼 있다. 데이빗 역의 존 조를 포함해 가족들 모두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다. 아마도 삼성과 LG를 가지고 있고, 초고속 인터넷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쓰며, 대중교통에서도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한국 사람이 디지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 어울린다 생각했음직 하다. 영화를 쓰고 만든 감독은 (개발자들의 나라) 인도계 미국인이다. 그리고 영화 제작에 돈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잘 나가고 싶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SONY가 댔다. very interesting!


calvin.




Posted by the12th
만끽!2018. 5. 30. 19:23


뒤늦게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마저 봐 치웠다.


- 사실 런칭할 때, 마침 당시 미투 운동과 맞물려, 이 드라마가 20대 젊은 여성과의 연애를 꿈꾸는 40대 개저씨들의 로망을 대리실현해준다는 세간의 비난 때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제목부터 해서, 그렇게 보일 여지가 다분했다. 그런데 앞서 이 드라마를 봐 오던 누나가 "그거 그런 얘기 아냐"라며 도리어 칭찬을 하기에, 비난과 칭찬 사이의 간극을 확인해 보고 싶어져 보기 시작했다.


- 드라마에서 20대 여성 이지안이 40대 남자부장 박동훈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좋아한다는 마음이 이성으로서 좋아한다는 건지, 사람으로서 좋아한다는 건지, 혹은 어른으로서 좋아한다는 건지가 불분명하다. 아니, 무게중심은 분명 뒤쪽에 더 실려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걸 '로맨스 드라마'로 두고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도는 무리수다.


-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는 '세대 간의 공감과 위로'다. 풍요의 시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대기업 정규직에 안착했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는 40대 중년과, 그 짧은 풍요조차 겪어 보지 못한 채 불행과 불안을 반복하고 있는 20대 청년 사이의 공감대를 넓히는 이야기로 읽는 편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 동훈과 형제들은 순탄히 대학을 졸업해 취업했지만, 이내 자영업 실패로 이혼위기에 몰리거나 영화감독의 꿈을 쫓다 만년 백수가 되거나, 혹은 착하고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도리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특기 하나 없어 노상 술이나 마시고 수다나 떠는, 더럽게 따분한 40대 남성들을 대변한다. 반면 가장 찬란해야 할 시기를 보내는 지안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만큼, 인생이 힘겹다. 불안하고 불행하고 불투명한 현실에, 그렇다고 앞날이 더 나아질 것 같다는 희망도 없는 어둠 속의 20대 청춘을 대표한다.


- 불안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의 절망 속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자신을 짓누르는 기득권에 불과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이용하고 착취하고 군림하는 자들이었다. 좋은 어른으로서의 기성세대는 없었다. 지안에게 동훈과 후계동의 중년들은, 비로소 처음 만난 '어른'이다. 훈계 대신 공감을 하고, 설교 대신 위로를 해 주는, 나아가 꼰대질 대신 기꺼이 연대를 할 수 있는 진짜 어른 말이다.


- 동훈이 자신을 이해해 주자, 지안은 동훈을 돕는다. 지안이 기를 쓰고 동훈을 돕는 것은, 동훈 개인에 대한 호감 때문만은 아니다. 나쁜 기성세대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좋은 어른'이 불행 속에 좌절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좋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세대간의 소통, 공감, 위로가 시대의 코드가 되어가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젊은세대는 자신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더욱 가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착한 어른들은 그걸 응원하고 뒷받침한다. 이제서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나의 아저씨>는 그런 바뀐 세상에 대한 메타포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었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