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08.04.04 맨체스터 Utd.의 7번 6
  2. 2007.12.02 이것이 영국이다 <13> - anfield 6
  3. 2007.11.28 이것이 영국이다 <11> - old trafford 6
얼굴2008. 4. 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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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과의 불화 끝에 주장이자 간판 스타인 데이비드 베컴이 팀을 떠난 뒤, 그가 달았던 백넘버 7은 포르투갈에서 막 영국으로 넘어온 18살짜리 '애송이'에게 주어졌다. 보비 찰튼과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를 거쳐 데이비드 베컴까지, 팀에서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선수만이 달았다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이 말이다. 떠나간 베컴의 헤어 스타일을 흉내내고, 패싱 게임 대신 잔 기술에 심취해 돌파를 즐기던 이 풋내기에게 이 백넘버는 과분한 듯 보였다. 하지만 리스본과의 친선경기에서 자신의 팀이 농락을 당하는 와중에도 그를 보며 얼굴에서 웃음을 지울 수 없었다던 퍼거슨 경은 그를 데리고 오자마자 그에게 과감히 7번을 달아 주었다. 그건 "최고가 돼라"는 뜻이었다.

 퍼거슨 경은 틀리지 않았다. 툭 하면 경기 흐름을 끊는 드리블을 해 대는 통에 한 때 홈 팬들의 야유까지 들었던 그는 자신의 등에 붙은 번호의 값어치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 무게를 훌쩍 뛰어넘고 말았다. 앞서 전설이 되었던 7번 선배들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한 단계 진화된 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그는 23살의 나이에 이미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가 되고 말았다.

 동시대인에 의해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펠레나 마라도나, 조지 베스트나 요한 크루이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그는 달래주고 있다. 하지만 그 바람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을 달게 될 후배 선수들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지게 생겼다. 불쌍하게도.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7. 12. 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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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리버풀은 영국을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이름을 날렸더랬다. 그러다 1960년대에는 the Beatles 덕분에 일약 브릿팝의 고향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세계적인 축구 클럽을 가진 도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 도시에는 붉은 색의 리버풀 FC와 에버튼 FC가 더비를 이루며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리버풀 FC인데,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전통 라이벌이자 EPL의 빅4 가운데 한 팀으로 손꼽이기 때문이다. 난 이 팀을 마이클 오웬이 뛸 무렵 응원하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응원 팀을 옮겼는데, 최근엔 'el nino', 페르난도 토레스 때문에 다시 호감이 들기 시작하는 팀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극성스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서포터즈인 the Kop의 존재때문에라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클럽이다. 리버풀에 도착한 일요일에는 마침 아스널과의 경기가 있는 날. 아침 리버풀에 도착하자 마자 리버풀 FC의 홈구장 앤필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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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이 있긴 하지만 리버풀 지하철은 런던의 것처럼 노선의 망이 촘촘하지 못하다. 여행객들에게는 심지어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리버풀은 맨체스터에 있는 전차가 다니지 않는다. 이 곳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따라서 버스일 수밖에 없는데, 사전에 준비를 잘 해간 덕분에 앤필드까지 가는 버스를 잘 찾아 탈 수 있었다. 버스를 타자 이 버스가 앤필드에 향하는 버스임을 확인시켜 준, 리버풀 FC 홈 저지 레플리카를 입고 있는 부자 응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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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Lime Street Station 부근에서 버스로 20여 분 달리면 Anfield라는 곳이 나온다. 이 곳에 앤필드 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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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 좁은 왕복 2차로 도로 옆에 바로 경기장이 서 있었다. 경기장 옆과 뒤쪽은 죄다 주택가였고. "이게 다야?" 소리가 절로 날만큼, 앤필드는 자그마했다. 올드 트래포드와 너무 비교가 됐다. 그냥 동네 경기장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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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트래포드를 지키는 게 맷 버스비라면, 앤필드를 지키는 건 빌 샹클리이다. 맷 버스비처럼 빌 샹클리 역시 리버풀 FC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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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켓 오피스도 규모가 달랐다. 올드 트래포드에는 별도의 건물이었는데, 여긴 무슨 멀티플렉스 박스 오피스같이 생겨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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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FC의 클럽 스토어. 메가스토어보다 약간 작다 싶었는데, 기념품의 종류는 더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다. 무엇보다도 스폰서사인 아디다스의 디자인이 훌륭하다. 가장 응원하는 팀이 아님에도, 도리어 리버풀의 기념품을 그만 덥썩 사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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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 주변 풍경. 도무지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 가운데 한 곳의 홈구장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규모와 적막감이었다. 뭐 이런 촌구석에 이런 경기장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뉴 앤필드를 짓고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앤필드의 규모가 이 정도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맨유:미들스브로 경기를 진작에 예매한 것과 달리 난 이 날 리버풀 경기를 예매하지 못했다. 한국의 구매 대행 사이트는 이날 경기가 아스날과 하는 빅매치라는 점을 들어 한 경기에 40만원을 불렀다. 아무리 빅 매치여도 한 경기에 들이는 돈으로는 너무 과하다 싶어 포기하고, 혹시라도 암표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해볼 참이었다. 경기 시작 한참 전에 주변을 배회하고 있자니 그렇잖아도 주머니에 손꽂은 아저씨들이 "you need a ticket?"하며 다가온다. 100파운드 쯤이면 흥정을 해볼 셈.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당연하다는 듯 200파운드를 부른다. 암표 구할 생각을 바로 접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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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켓이 없다고 앤필드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야 있나. 처음의 계획은 암표를 저렴하게 구해보고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the Kop과 함께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보는 것. 앤필드 주변의 펍 지도까지 준비해 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구장 앞에 널린 게 펍이었기 때문이다. 정오 오픈 시간에 맞춰 줄 지어 기다리다 펍에 들어가는 사람들. 난 앤필드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펍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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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들은대로 구석구석에 자그마한 TV 수상기가 있었다. 최근 텔레비전 브라운관 기술의 발전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두 대의 대형 평면 LCD TV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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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이 날 서머타임이 해제돼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5시. 펍에 들어간 시간이 오후 1시 무렵이었는데 이미 펍은 초만원이었다. 정신없는 바에 가 2.5파운드짜리 생맥주를 들고 어정쩡한 곳에 기대어 앉았다. 다들 축구 시작 전 맥주를 연료 삼아 부어주며 경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아자씨들은 물론, 아줌마들도, 동네 대머리 할아버지도, 백발의 동네 할머니도 기냥 죄다 빨간 색 리버풀 홈 저지를 입고 나와 맥주를 마셔대고 있었다. 말하자면 축구를 하는 날은, 자연스럽게 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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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저쪽 구석 한 쪽에서 일군의 아자씨들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낮술이 과하셨나? 했더니, 리버풀 FC의 응원가를 부르며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다. 경기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자 온 펍이 모두 노래소리로 가득찬다. 팀 응원 노래와 각 선수들의 이름을 붙인 응원가들을 선창하면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쳤다. 아 글쎄 경기가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이러다 경기 전에 진이 다 빠지는 거 아니냐고 우려가 들만큼 참으로 열정적으로 응원을 해댔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국의 계급사회가 유지되는 데에는 축구도 한 몫을 한다고. 노동자들이 일 주일동안 일을 하느라 쌓였던 스트레스를 주말 축구 경기 하나에 모두 풀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불만을 해소하는 창구로 축구가 이용된다는 얘기였다. 뭐 꼭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솔직히 우리나라같이 불야성을 이루는 유흥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고서야, 일 주일에 한 번 축구를 핑계삼아 놀아보고 스트레스 풀어버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지 싶었다.

 그렇지만, 수염이 덕지덕지 나고 배가 불룩 나온 아자씨들이 축구 유니폼을 입고 기존 노래에 선수 이름을 중심으로 개사한 노래를 땀을 뚝뚝 흘리도록 불러대며 결연한 표정을 지어대는 거, 이방인으로서 재미는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름다운 풍경은 절대 아니었다.

 저 유명한 'You'll never walk alone'을 합창하는 the Kop. 대략 펍 분위기가 이런 분위기였다. 잘 들어보시라.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이 아니라 "알론"이다. "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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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를 살 때만 바에 가면 된다. 마시고 난 술병이나 파인트 잔은 그냥 아무데나 두면 된다. 아르바이트생처럼 보이는 앳된 소년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며 병과 잔들을 수거해 가니 말이다. 내가 붙인 이 소년의 이름은 '리버풀 쌀자루 소년'인데, 내가 있는 쪽 테이블에 와 주인 몰래 살짝 살짝 앉아 쉬었다 가기도 했다. 한쪽 구석에는 병 깨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심지어 저 파인트 잔도 잔 값보다 인건비가 더 들어가 그냥 병처럼 다뤄진다고 한다.

 열심히 일 하는 리버풀 쌀자루 소년과, 테이블에 널브러진 잔 앞에 좌절하는 리버풀 쌀자루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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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시작 시간이 되어 가자, 응원가를 주도하던 일군의 아자씨들을 비롯해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그들은 경기 티켓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제서야 펍에는 숨통 트일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남은 사람들은 티켓이 없는 사람들. 단촐하지만 경기장 안 못지 않은 팽팽한 긴장의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펼쳐졌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1:1 무승부. 제라드의 프리킥 골 때는 정말이지 떠나갈듯한 환호성으로 가득찼었고, 파브레가스의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골 때는 탄식이 땅 깊이 파고 들었다.
 
 중간에 카메라가 1주일 뒤의 아스날 전을 준비하기 위해 구장을 찾은 퍼거슨 감독을 비춘 적이 있었는데, 맨유와 라이벌임을 확인하는 듯 그만 온갖 욕이 텔레비전으로 쏟아져 들었다. 나는 내심 반가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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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뒤 펍을 빠져나왔다. 그때부터 또한 펍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경기의 아쉬움을 달래며 또 술을 마시기 위해서일테다. 경기는 겨우 두 시간이었지만, 경기 전에는 흥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경기 뒤에는 경기의 여운을 되새기기 위해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그게 그들에게 축구의 의미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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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내린 앤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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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시간, 허기가 져 영국애들을 쫓아 중국인들이 하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내가 시킨 건 소시지 & 칩스였는데, 이게 다였다. 정말 소시지와 감자칩을 주고 그 위에는 소스로 카레를 부었다. 감자 칩은 너무 튀겨 딱딱하기까지 했는데, 영국 애들은 먹을 게 그렇게 없었는지, 난 반이나 먹고 버리고 만 감자칩을 우적우적 맛있게도 먹고 있었다. 여기다 김밥천국 차리면 잘 되겠다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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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매주 어김없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축구 경기가 열리는데 빠져나가는 길은 왕복 2차로가 전부였다. 교통 체증은 불보듯 뻔한 일. 더욱이 버스에 탈 사람도 폭주하는 상황이어서 이 곳을 빠져나오는 데 경기 끝나고도 무려 1시간 반이나 더 걸렸다. 이런 일이 거의 매주 반복될텐데도, 길을 넓힐 생각을 안 하는 걸 보면, 참을성 하나만큼은 정말이지 인정해줄 만 하다.
 
 리버풀의 야경을 둘러볼 욕심도 없지 않았으나, 앉을 자리 열악한 조건에서 하루를 보내는 통에 허리가 아파와 그냥 숙소로 향했다. 리버풀의 첫 날은 그렇게 옴팡 리버풀 FC와 앤필드, the Kop과 함께 했다.

calvin.
Posted by the12th
발자국2007. 11. 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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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영국은, 셰익스피어나 찰스 디킨즈와 같은 대문호의 나라이자, the Beatles나 oasis처럼 브릿팝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축구의 본고장이자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가 펼쳐진 나라이기도 하다. 내 금쪽같은 휴가 기간 여행지로 하필 영국을 선택한 데에는 '축구'가 이유의 50% 쯤은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영국을 찾는다는 건 싱글일 때에나 가능한 프로젝트. 이번이 아니면 평생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꿈의 구장'을 찾았다. 2006-2007 시즌 EPL 우승에 빛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 올드 트래포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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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트래포드를 찾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맨체스터 시가지에서 Tram, 즉 전차를 타고 Old Trafford station을 찾아 가면 된다.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친숙한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올드 트래포드에 당도하면, 친절한 안내 표지판이 길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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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굳이 친절한 안내 표지판이 없어도 된다. 전차 안에서부터 빨간색 유니폼 레플리카를 입고 있는 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 뒷꽁무니만 쫓아가면 올드 트래포드가 나오리라는 건 자명한 일. 오후 3시 경기에 관광을 겸해 일찍 서둘러 나왔는데도 빨간색 유니폼은 심심치 않게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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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걷는 이 길이 올드 트래포드를 향해 가는 길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은 또 있었다. 바로 길 곳곳에 있는 축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흔적들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을 달러로 사들인 '미국 자본' 글레이저 가문을 거부하는 서포터들의 낙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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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붉은 악마'가 리버풀의 '불사조'를 작살내는 그림. 두 팀이 전통의 라이벌이라는 점도 선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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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빛낸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의 얼굴이 그려진 상점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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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이 가까워 오면서 슬슬 응원도구나 짝퉁 기념품을 파는 좌판들도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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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둥....! 마침내 드러낸 웅장한 위용을 보라.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 경기장, 올드 트래포드다. 정면엔 60년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맷 버스비 감독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를 이어 두 번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퍼거슨 경도 사후에 저렇게 동상으로 남아 이 곳을 지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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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장 정문을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메가 스토어.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공식 기념품 판매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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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기념품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아무래도 주로 잘 팔리는 물건들 위주로 깔아놓은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유니폼 레플리카 같은 옷가지들이 주류를 이뤘는데, 나이키에서 만든 것들은 솔직히 별로 사고 싶지 않게 생겨 먹었다. 마킹된 유니폼 레플리카 쪽이 가장 붐볐는데, 10번을 꿰찬 루니와 7번의 호나우두 유니폼이 압도적으로 매장의 공간을 채웠다. 그만큼 많이 팔린다는 이야기. 13번 유니폼은, 박지성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긴 까닭인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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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보이면 반가운 박지성 기념품. 저 그림은 파격적인 가격으로 세일 중이었는데, 같이 세일되는 그림의 주인공이 이미 팀을 떠난 에인세인 걸로 봐서, 박지성 그림도 어지간히 안 팔리는 모양이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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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오늘과 과거. 옛 영광의 사진을 보면, 맷 버스비 감독과 조지 베스트, 보비 찰튼 같은 전설적인 얼굴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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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가스토어에서 나와 경기장 주변을 배회했다. 여기가 경기장의 구석구석,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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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회하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뭔가 반가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가 보니, 역시나, 선수단 버스의 입장을 기다리는 인파였다. 웬 떡이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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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정말 미끄러지듯 경기장으로 도킹했다. 사진기를 꺼내들고 찍어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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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젠장, 자리를 잘 못 잡았다. 버스 출입문이 벽에 완전히 가려 누가 내리는지 전혀 볼 수가 없는 게 아니냐. 눈으로 보지 못하면 사진으로라도 남겨야 한다. 각을 넓히기 위해 팔을 길게 뻗어 사력을 다해 셔터질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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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해서 건진 유일한 한 컷. 반 데 사르가 막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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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차례. 예매한 티켓을 수령하기 위해 티켓 사무실 건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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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는 10월 27일 미들스브로 전이다. 82파운드, 우리 돈으로 15만원 좀 넘게 주고 산 이 티켓은, quadrant, 그러니까 코너 쪽 좌석과 Kit Room 이용 서비스와 경기 프로그램이 포함된 가격으로 파는 것이었다. 한국 티켓 대행 사이트에서 20만원에 파는 걸 생각해 보면, 차라리 서비스가 포함된 이 티켓이 낫겠다 싶어 구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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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켓 값에 이용권이 포함된 Kit Room은 맥주도 마시고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바 같은 곳이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구단에서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이용권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개방이 되는 곳으로, 경기 전이나 하프 타임 때 여유있게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메리트가 분명 있었다. 허기가 많이 질 때가 아니어서 음식은 관두고, 맥주만 두 파인트 시켜 마셨다. 목이 따갑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생맥주 맛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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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 Room에서 본 풍경. 슬슬 안전 요원들도 경기장 안으로 배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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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기를 보러 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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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 쪽이라고 해서 자리가 많이 안 좋을 줄 알았는데, 경기를 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맨 앞 줄은 선수들을 가까이 볼 수는 있지만 경기 전반적인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해서 선호되는 자리가 아니라고 한다. 값도 싸고. 코너 쪽 자리도 경기장이 한 눈에 들어와 전술적 움직임을 살피는 데는 썩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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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풀러 나온 선수들. 루니도 보이고 테베즈도 보이고 호나우두도 보이고, 죄다 보인다, 기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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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전 관중들이 들어차기 전과 경기 시작할 무렵 관중들이 꽉 찬 모습. 경기장을 찾은 인파는 7만 5천여 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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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킥 오프. 서포터들의 응원 소리가 짜릿한 전율과 함께 경기장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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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 스탠드의 서포터들 자리. 경기 내내 시종일관 우렁찬 응원 함성과 응원가로 경기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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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중간에 북쪽 스탠드가 약간 술렁거려 보았더니, 미들스브로 팬 하나가 맨유 서포터들 안에 들어가 알짱댔던 모양이었다. 충돌을 우려한 안전 요원들이 미들스브로 팬을 데리고 자리를 옮기자 맨유 서포터들은 이끌러 나가는 그를 보며 '빠이빠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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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옆 자리에 앉은 맨체스터 놈들. 차림새로 보나, 끊임없이 응원가며 구호를 따라 부르는 것으로 보나, 서포터가 분명한데 왜 북쪽 스탠드에 안 가고 내 옆에 앉았나 모르겠다. 여튼, 이 친구들 덕분에 축구 보는 흥은 한껏 즐겼다. 잘 안 들리는 구호는 뭐라 그러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골이 터질 때마다는 마치 전쟁 통에 헤어졌다 상봉한 가족마냥 부둥켜 안고 팔짝 팔짝 뛰었다. 내 바로 옆의 뚱뚱한 친구는 내게 말을 많이 붙이기도 했는데, 내가 '길게' 대꾸하지 않아 정상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안하다. 짧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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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반에 나와 10여 분 뛴 동국이도 보이고... 솔직히 팀에 젖어들지 못했더라. 열심히는 뛰는데 동료들과 따로 놀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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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4:1 완승. 상대팀의 동점골도 있었고, 우리 팀의 많은 골도 있어 나름대로는 아깝지 않은 경기였다. 이것이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 축구라는 점을 여실히 느낀, 즐겁기도하고 부럽기도 했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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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끝나고 나오는 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경찰들인데, 말을 타고 있어 더 위압적이고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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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겪는 일이건만, 뾰족한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 많은 인파를 실어 나르는데, 전차 역의 안 쓰는 출입구 한 개를 더 열어두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늘 겪는 일이라는 듯, 사람들은 그냥 저냥 줄을 서 기다렸고 결국 앞 사람 가고 나면 내게 기회가 오는 게 당연한 법이라, 전차를 기예 타긴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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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만원 전차. 뒤에서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자기 앞쪽에 아이들이 있다며 필사적으로 버텨내는 아저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도 이렇게 따뜻한 법이다. ㅋ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