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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04 괜찮다 괜찮아 2
  2. 2007.04.25 클럽 MU의 승리 2
  3. 2007.04.17 축구, 축구, 축구 4
환호2007. 5. 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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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괜찮다. 괜찮아. 두 골을 몰아 넣고 동점으로 끝내면 결승행은 우리 것이야.
 우리 팀 선수들의 무거운 움직임과 잦은 패스미스,
 그리고 심지어 수비진의 뻘짓에도 난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괜찮아. 전반전에 오버 페이스한 AC밀란 녀석들, 곧 체력이 떨어질 거야.
 그 때를 노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그렇지만 결국 수비하던 오셔를 빼고 사하를 투입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순간,
 역습 한 방으로 쐐기골을 얻어 맞고 모든 희망은 흩날려지고 말았다.

 사실은 원정인 곳에서 내리 두 골을 먹는 순간
 승부는 일찌감치 갈린 셈이었다.
 마음의 고통을 덜자면 체념만큼 쉬운 방법이 없고,
 낙담을 하고 나서 객관적 자세를 한 채 남의 일 보듯 볼 수도 있었을테지만,
 난 일찌감치 '관전'이 아니라 '응원'을 하기로 한 터다.

 팔짱끼고 맥주 까며 속 편히 객관적 전력을 타령하는 거야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 팀에 절대적 믿음을 불어넣으며
 그 팀의 사소한 고통과도 함께 하는 것은
 오로지 '팬'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챔피언스리그 도전은 다소 무력하게 여기서 멈췄지만,
 난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친다.
 괜찮다. 괜찮아. 까짓거 우승이야 내년에 하면 되지. 뭐. 안 그래?
 트레블을 달성하기 위해 그 많은 경기를 소화하느라
 진심으로,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들...

calvin.
Posted by the12th
환호2007. 4. 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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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경기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도 대 카카'의 구도로 시작됐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은 이 경기의 향방이 맨체스터 Utd와 AC 밀란 두 클럽의 핵심 선수 두 명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몰아갔다. 두 선수는 각자의 클럽에서 올해 가장 주목받는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고 젊은만큼 클럽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으며 테크닉이 뛰어나고 심지어 인물까지 출중하다. 동료 선수들 대신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도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경기의 뚜껑이 열리자 언론의 진단 혹은 기대가 어긋나지도 않았다. C날도는 경기 시작 5분여만에 긱스의 코너킥을 멋지게 머리로 받아 디다를 당혹스럽게 하는 첫 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그 뿐인가. EPL 최고 선수로 뽑힌 영광을 뽐내려는 듯 발재간도 더욱 휘황찬란했다. AC 밀란의 수비진은 소문으로만 듣던 C날도의 재주에 그저 뒷걸음질을 칠 뿐이었다. 이에 질세라, 공격수로 변신한 카카도 금세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셰도르프의 침투 패스를 잘라 먹은 뒤 힘을 잔뜩 뺀 기술적인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내더니, 기예 혼자 맨유 수비 3명을 농락하는 개인기로 역전골까지 뽑아내고 말았다. 이쯤 되면, 언론의 설레발처럼 '맨유 대 AC 밀란'이라기 보다는 'C날도 대 카카'의 대결이라 할만 했다.

 그 상황이 달라진 것은 후반 들어서였다. C날도는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화려한 발재간을 부려댔지만 그가 공만 잡을라 치면 달려붙는 AC밀란의 수비수들에 가로막혀 진로를 열지 못했다. "수비수들"이라고? 그렇다. C날도가 뒤흔들어 밀란의 수비진이 그에게 쏠리는 사이 그만큼 다른 미드필더들의 활동 반경은 넓어지게 된다. 이건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는 맨체스터 Utd의 최근 강점으로 자리매김한 부분이기도 한데, C날도의 개인기는 그 자체로도 상대팀에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그 때문에 생긴 공간의 효과가 오히려 더 크다. 이래 저래 C날도의 존재는 지금의 맨유에 있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젊은 C날도가 휘젓고 만든 공간을 채워주는 것은 명문 클럽의 노련함이다. 바로 클럽의 레전드가 되어가고 있는 스콜스와 긱스, 두 노장이다. 그들은 상대의 압박이 느슨해진 틈을 타 클럽의 플레이에 노련함을 불어 넣는다. 루니의 골들은 바로 그렇게 창출됐다. 스콜스가 양팀 통틀어 이날 가장 아름다운 패스를 찍어 올려 동점골을 도왔고, 템포를 조절하며 긱스가 루니에게 넘긴 스루패스는 곧바로 짜릿한 역전 결승골이 되었다.

 AC밀란은 분명 매력적인 클럽이다. 이 클럽은 비록 스탐이나 셰브첸코가 건재해 있던 2-3년전과 같진 않더라도, 여전히 축구팬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말디니부터, 네스타, 카카, 셰도르프, 가투소, 인자기, 그리고 골키퍼 디다로 이뤄진 진용은 하나의 완벽한 '팀'으로 이 클럽을 인식케 한다. 하지만 개인 기량부터 선수들간의 호흡까지 거의 완벽해 보였던 이 클럽의 진가는, 딱 그 선수들로 구성됐을 때에만 기능한다. 우선 셰브첸코와 스탐, 카푸가 빠진 자리는 대체되지 못했다. 세대교체는 원활하지 못해 팀은 노쇠해졌고, 베스트 일레븐 다음 자리는 취약했다. 눈부신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전반만 겨우 소화하고 들어간 말디니의 자리는 그대로 빈 자리가 되고 말았고, 후반 초반에 부상으로 실려나간 가투소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구 조화와 유기적인 움직임 이상의 두 클럽간 차이는 감독의 전술적 능력에 있었다. 전반 카카의 원맨쇼로 원정에서 뜻밖의 승기를 잡은 안첼로티 감독은 후반에 곧바로 카테나치오를 가동했다. 이미 맨유의 포백진용이 완전히 허물어졌다는 걸 확인한 것치고는 너무나도 편의적인 작전이었다. 승리를 원했다면, 당황한 상대를 더 몰아쳐 반격의 여지를 만들지 말았어야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던 퍼거슨 감독이야 끝까지 공격 지향을 주문할 수밖에 없긴 했겠지만, 그에게 놀라웠던 것은 선수 교체를 단 한 명도 하지 않은채 경기를 마무리지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퍼거슨 경은 괜히 잡아먹을 시간을 아끼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전체적으로 손발을 맞춰가며 유기성을 완성해 나가는 팀의 흐름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선수들은 지쳐 나가는 가운데서도 하나의 팀으로 완성되었고 인저리 타임에 비로소 그 결실을 맺었다.

 홈에서의 2실점은 분명히 부담이다.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와도 같았던 1차전의 결과로 인해 2차전 역시 충분히 극적 상황의 토대 위에서 펼쳐지게 생겼다. 이러니 도저히 밤을 지새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졸려도 눈을 치켜 떠야 한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7. 4. 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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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엔 9시 뉴스 파트의 당직을 섰다. 주말 9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뽑아 제작하고 일요일 아침 10분짜리 뉴스의 큐시트를 짜는 일이다. 9시 뉴스가 끝난 뒤인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 사이는 그래서 비교적 널널하다. 그 때 그 때 터지는 사건사고 막아야 하느라 늘 마음 졸여야 하는 사회팀 야근과 같지 않아서 대략 서너시간은 그냥 하릴 없이 밤을 새는 일이다.
 
 밤이 무료할 것을 알았는지 밤 10시 50분부터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중계해 준다. 미들스브로와 아스톤 빌라의 경기다. 미들스브로는 그닥 호감을 주는 팀은 아니지만, 이동국의 출전 여부가 궁금해 그냥 저냥 본다. 호쳄박의 짜릿한 프리킥으로 먼저 선취점을 올렸지만 미들스브로는 무력하게 역전패 하고 말았다. 이동국은 후반 15분여를 남겨두고 교체 출전했지만, 공 터치도 몇 번 못 해본 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다.

 이어서 새벽 1시 반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왓포드를 상대로 FA컵 준결승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 앞서 방송한 유럽 골들을 모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자니, 왓포드의 FA컵 상승 기세가 만만치 않다. 캐릭의 멋진 스루패스와 스미스의 재치, 루니의 테크닉이 선취골을 뽑아내 쉽게 경기가 풀리려나 했는데, 왓포드가 환상의 시저킥으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절정의 기량을 보이는 호나우두가 역전골을 넣는다. 전반전만 보고 한 시간여 눈을 붙이고 와 보니, 역시나 4-1로 낙승했다는 소식. FA컵 탈환의 날이 머지 않았다.

 아침 6시 뉴스 큐시트를 짜고 진행, 8시 뉴스 큐시트를 짜고 났더니 교대자가 출근했다. 졸음 운전을 피하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집에 돌아와 대충 아침 밥을 먹고 모자란 잠을 청했다.

 오후 3시 반. 부시시 일어나 안방 텔레비전을 켜 제꼈다. 상암에서 FC서울과 울산현대의 리그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라이벌인 대 수원전이 아닌데도 관중들이 적잖게 들어찼다. 대략 3만명 정도는 돼 보인다. 토요일 당직만 아니었으면 나 역시 '또' 상암을 찾을 셈이었지만, 아쉬운대로 텔레비전 중계로 달래야겠다.

 울산은 역시나 만만치 않은 팀이어서 양팀의 공방이 만만치 않다. 서울은 내내 경기를 지배하다시피 하긴 했지만 울산이 상대팀 분석을 꽤 많이 한듯 빈틈을 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울산의 역습이 더 위협적이다.

 서울은 그동안의 주전선수들 대신 로테이션 멤버들을 피치 위에 올렸다. 초반 돌풍의 주역이었던 이청용이 빠졌다. 김동석의 움직임이 유난히 기민했지만, 그 뿐이었다. 두두는 도무지 패스플레이를 할 줄 모르고, 이을용도 막무가내식 답답한 경기 운영을 보였다. 박주영은 고립됐고 정조국은 내내 무리했다. 부상으로 결장 중인 이민성과 김은중의 공백이 크게 느껴질 즈음, 경기가 0-0으로 싱겁게 끝나 버렸다.

 저녁에는 FIFA07 게임을 돌렸다. 커리어모드로 팀 운영을 하는 중인데, 내가 고른 팀은 (당연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팀을 맡은 첫 시즌에 리그 우승과 칼링컵 우승을 거머쥐고 두 번 째 시즌을 맞이한 참이다. 포티라는 젊은 유망주와 공격형 미드필더 곤잘레스, 그리고 미국의 축구 신동 아두 등을 영입해 오고, 노쇠한 스콜스와 활용도가 떨어지는 실베스트르와 플레처를 이적시켜 버렸다. 잦은 실수를 반복하던 주전 골키퍼 반데사르도 다른 팀에 내 주고, 대신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문장인 로빈슨을 당겨 왔다. 이 팀은 내가 재정비한 나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내 팀에서 루니의 득점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첫 번째 시즌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로 득점왕에 오르더니 두 번째 시즌에서도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선보이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는 실제처럼 득점력이 좋진 않지만 크로스가 일품이어서 어시스트는 수위권이다. 그는 벌써 종합능력치가 최고치에 이르기까지 했다. 박지성은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돼 있지만 왼쪽이나 오른쪽 윙으로 뛸 때 더 진가를 발휘한다. 실제에서와 달리 체력이 약해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지만 침투 능력이 뛰어나서 호나우두보다도 득점이 더 많다.

 두 번째 시즌에서도 리그 우승은 탄탄대로. 칼링컵과 FA컵도 거머쥐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AC밀란을 만났다. 경기 초반 상대의 카테나치오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시즌 내내 생각만큼 활약을 못 해주던 포티가 소나기 골을 퍼부으며 4-0으로 승리, 두 번째 시즌만에 쿼더러블을 달성해 내고야 말았다.

...... 이런.

 내 정신적 도피처가 축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세상만사 좋은 일 안 좋은 일, 복잡한 일 어지러운 일에 모든 신경을 끊고 그만 축구에 빠져 지냈다. 룰이 단순하고 피아 구분이 명확해 피해 있기 안락하다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만 도망쳐 있어야겠다. 계기가 필요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