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09.11.20 어두운 미래 2
  2. 2009.10.06 명품 홍 감독 4
  3. 2009.09.22 원더 '올드' 보이 2
떠듦2009. 11. 20. 18:33


 1. 앙리의 핸드볼
 "신의 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지만, 그건 반칙이었다. 현대 축구에서는 심판의 눈을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경기장의 구석 구석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는 전세계 축구팬들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앙리는 엔드라인 바깥으로 막 빠져 나가는 공을 자신의 속도로 어쩌지 못하자 왼손으로 툭 쳐서 방향을 돌려 세운 뒤 크로스를 올렸다. 분명한 반칙일 뿐더러, 명백히 의도적이었다. 그는 심지어 파렴치하게도 골 세리모니까지 펼쳤다. 반성을 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에서조차, 앙리는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앙리는 그렇게 이카루스가 되었다.
 
 아일랜드의 반발은 정당했으나, FIFA는 자신들의 '절대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재경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FIFA의 똥고집은 오히려 자신들의 권위를 갉아먹었다. '부정한 결과'에 납득할만한 사람은, 설사 프랑스 축구팬이라 할지라도 그리 많지 않다.

 98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리자라쥐는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자축 파티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이번 결과를 비판했다. 프랑스의 언론들도 '찜찜한 승리'에 찜찜한 논조를 보이고 있다. 이날 경기를 본 심판 3명의 나라인 스웨덴 역시, 자국 출신 심판들을 비판하며 이 경기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프랑스 체육 교사 협의회의 성명서이다. "부정행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예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례를 남기면,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이 무시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가 한참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스며들게 될 것이며 결국 그것이 자신들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2. '편법 재판소'
 전례는 이미 한국에 있었다. "입법 과정은 위법이나 그렇게 만들어진 법은 유효하다"는 '어불성설'의 식언을, 헌법재판소는 눈 하나 깜빡 않고 전국에 공표해 버렸다. '한국 최고의 사법 결정 기구'라는 국민들이 쥐어준 권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정치권의 눈치나 슬금슬금 보면서 가장 비열하고 가장 비겁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헌재와 그들의 판단은 한낱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위폐는 맞지만 통화는 유효하다"라든가 "컨닝은 맞지만 합격은 유효하다"라는 식의 패러디가 봇물을 이뤘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전국민에게 가치관의 혼란과 허탈함을 안겨줬다. 특히 "이번 헌재 결정은 19금"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생겼다.

 헌법재판관들은 자신들이 대체 대한민국의 미래에 무슨 짓을 하고 말 것인지 몰랐나 보다.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좇는 무자비한 정글의 습성이 한국 사회에 판을 쳐도 이제 할 말이 없게 됐다. 헌재는 기껏 정치적 시비를 벗어나려는 알량한 욕심에 한국의 건강한 미래를 엿바꿔 먹고 말았다. 


3. "You Know Who"
 그리고 이 사람. 이 사람이 사장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그가 사장이 되는 것 자체가 KBS의 미래를 좀먹기 때문이다.

 알려진대로 그는 이병순보다 여러모로 나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기자로서의 경력 면에서나,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 면에서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 면에서나, 그가 이병순보다 월등히 월등하다(사실 그 자신의 월등함보다는, 이병순 개인이 지닌 열등함이 워낙 큰 덕분이겠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최소한의 합리적인 의사소통조차 하지 못하는 이병순보다 그가 월등히 낫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하지만 그것 역시, 싸이코패스적이기까지 했던 이병순의 자폐 성향 때문이지 그의 소통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 배경이 없어 청와대에 충성을 다하려 했던 이병순과 달리, 그는 오히려 소신껏 회사를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물론, 일부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 많은(혹은 전부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난 '최선의 그보다 최악의 이병순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장이 된다는 것은, 앞으로는 특정 정치인에 줄을 댄 노골적일만큼 당파적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KBS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더 나아가 KBS 사장이 되려면 대선 때 유력 정치인에 줄을 대는 것이 쉽다는 인식이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난다면, 선거 때마다 회사 안에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움직임이 더욱 노골화될 것이 분명하다. 독립성이 훼손되고 나면 공정성과 객관성도 날아가는 것이고, 국민을 위한 방송보다는 정치권력을 위한 방송에 더욱 매진하게 될 것이다. '언론사'로서의 위상은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고, 그저 정치권력 눈치나 보며 당파성에 좌우되는 '국영방송사'로 퇴보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전파를 위임한 국민의 이익에도 위배되는 일이며, 한국 사회의 발전도 저해할 일이다. 그가 사장 자리에 앉는 것은, 이 공장의 미래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의 미래도 어둡게 할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과정상의 결정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집권이라는 결과물을 안게 된 MB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09. 10. 6. 18:13


지금이야 축구 대표팀 경기가 답답하게 풀릴 때면
"박지성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라고 탄식하지만,
박지성이 지금의 '유닛'이 되기 전에는
"홍명보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가 주된 탄식이었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감 때문에
그가 은퇴를 해야 했을 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축하의 마음보다 안타까움과 불안감이 앞섰다.
"아, 이제 한국 축구는 어찌 되나"... 뭐 그런 거.

하지만 홍명보가 가면 어딜 가겠나.
선수 시절 그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폭넓은 시야와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은
감독이 됐을 때 더 빛을 발하는 요인이니 말이다.
U-20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보고 있자면,
축구는 역시 '감독의 게임'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는 또한 한국에 새로운 축구 감독상을 심어주었다.
축구 감독이 섹시할 수도 있다는 점.
네덜란드의 반바스텐 감독이나 독일의 뢰브 감독처럼
우리에게도 능력 있는데다 잘생기고 새끈하기까지 한 
'명품 감독'이 있음을 세계 만방에 떨칠 수 있다는 점이 자못 자랑스럽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얼굴2009. 9. 22. 13:31


 현실은 그랬다. 서른 하나의 나이, 부상 잦은 유리몸, 라이벌 팀인 리버풀FC 출신, 게다가 무적 선수. '원더 보이'라는 전설적인 수식어는 그저 과거지사일 뿐, 냉혹한 현실 속의 마이클 오언의 위치는 딱 그정도였다. 그런 그의 영입, 나아가 C.호날두의 공백으로 남은 영광의 백넘버 7번 배정은 퍼거슨 경의 지나친 선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퍼거슨만은 알고 있었다. 98년 월드컵에서 그가 보여줬던 신기의 드리블과 골 결정력이 한 때의 우연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마이클 오언은 EPL, 아니 세계 축구 역사상 길이길이 남을 09-10 시즌 맨체스터 더비 1차전에서 가장 극적이고 화려한 방법으로 자신의 부활을 알렸다. 그의 영입을 두고 일었던 논란을 생각하면, 이 짜릿한 승리는 가히 퍼거슨의 마법이라 부를만 하다. 그는 마이클 오언도 살리고 팀도 살리고, 축구의 참된 매력도 살려냈다.

 오언의 별명 '원더 보이'는, 사실 그의 전성기가 너무 서둘러 찾아왔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소년을 벗어나 아저씨가 됐을 때, 그는 더이상 놀랍지 않아진 것으로 여겨졌다. 신기에 가까웠던 스피드와 드리블, 체력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이클 오언의 '놀라움'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이와 무관하게, 아니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더 노련해지는 위치선정과 골 결정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더이상 소년이 아니지만, 그가 선사할 놀라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원더 보이'를 뛰어넘은 그의 부활에 박수를 던진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