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09.11.20 어두운 미래 2
  2. 2009.11.18 韓放球樂部 4
  3. 2009.11.06 작별인사 2
떠듦2009. 11. 20. 18:33


 1. 앙리의 핸드볼
 "신의 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지만, 그건 반칙이었다. 현대 축구에서는 심판의 눈을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경기장의 구석 구석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는 전세계 축구팬들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앙리는 엔드라인 바깥으로 막 빠져 나가는 공을 자신의 속도로 어쩌지 못하자 왼손으로 툭 쳐서 방향을 돌려 세운 뒤 크로스를 올렸다. 분명한 반칙일 뿐더러, 명백히 의도적이었다. 그는 심지어 파렴치하게도 골 세리모니까지 펼쳤다. 반성을 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에서조차, 앙리는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앙리는 그렇게 이카루스가 되었다.
 
 아일랜드의 반발은 정당했으나, FIFA는 자신들의 '절대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재경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FIFA의 똥고집은 오히려 자신들의 권위를 갉아먹었다. '부정한 결과'에 납득할만한 사람은, 설사 프랑스 축구팬이라 할지라도 그리 많지 않다.

 98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리자라쥐는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자축 파티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이번 결과를 비판했다. 프랑스의 언론들도 '찜찜한 승리'에 찜찜한 논조를 보이고 있다. 이날 경기를 본 심판 3명의 나라인 스웨덴 역시, 자국 출신 심판들을 비판하며 이 경기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프랑스 체육 교사 협의회의 성명서이다. "부정행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예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례를 남기면,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이 무시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가 한참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스며들게 될 것이며 결국 그것이 자신들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2. '편법 재판소'
 전례는 이미 한국에 있었다. "입법 과정은 위법이나 그렇게 만들어진 법은 유효하다"는 '어불성설'의 식언을, 헌법재판소는 눈 하나 깜빡 않고 전국에 공표해 버렸다. '한국 최고의 사법 결정 기구'라는 국민들이 쥐어준 권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정치권의 눈치나 슬금슬금 보면서 가장 비열하고 가장 비겁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헌재와 그들의 판단은 한낱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위폐는 맞지만 통화는 유효하다"라든가 "컨닝은 맞지만 합격은 유효하다"라는 식의 패러디가 봇물을 이뤘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전국민에게 가치관의 혼란과 허탈함을 안겨줬다. 특히 "이번 헌재 결정은 19금"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생겼다.

 헌법재판관들은 자신들이 대체 대한민국의 미래에 무슨 짓을 하고 말 것인지 몰랐나 보다.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좇는 무자비한 정글의 습성이 한국 사회에 판을 쳐도 이제 할 말이 없게 됐다. 헌재는 기껏 정치적 시비를 벗어나려는 알량한 욕심에 한국의 건강한 미래를 엿바꿔 먹고 말았다. 


3. "You Know Who"
 그리고 이 사람. 이 사람이 사장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그가 사장이 되는 것 자체가 KBS의 미래를 좀먹기 때문이다.

 알려진대로 그는 이병순보다 여러모로 나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기자로서의 경력 면에서나,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 면에서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 면에서나, 그가 이병순보다 월등히 월등하다(사실 그 자신의 월등함보다는, 이병순 개인이 지닌 열등함이 워낙 큰 덕분이겠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최소한의 합리적인 의사소통조차 하지 못하는 이병순보다 그가 월등히 낫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하지만 그것 역시, 싸이코패스적이기까지 했던 이병순의 자폐 성향 때문이지 그의 소통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 배경이 없어 청와대에 충성을 다하려 했던 이병순과 달리, 그는 오히려 소신껏 회사를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물론, 일부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 많은(혹은 전부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난 '최선의 그보다 최악의 이병순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장이 된다는 것은, 앞으로는 특정 정치인에 줄을 댄 노골적일만큼 당파적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KBS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더 나아가 KBS 사장이 되려면 대선 때 유력 정치인에 줄을 대는 것이 쉽다는 인식이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난다면, 선거 때마다 회사 안에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움직임이 더욱 노골화될 것이 분명하다. 독립성이 훼손되고 나면 공정성과 객관성도 날아가는 것이고, 국민을 위한 방송보다는 정치권력을 위한 방송에 더욱 매진하게 될 것이다. '언론사'로서의 위상은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고, 그저 정치권력 눈치나 보며 당파성에 좌우되는 '국영방송사'로 퇴보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전파를 위임한 국민의 이익에도 위배되는 일이며, 한국 사회의 발전도 저해할 일이다. 그가 사장 자리에 앉는 것은, 이 공장의 미래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의 미래도 어둡게 할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과정상의 결정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집권이라는 결과물을 안게 된 MB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calvin.
Posted by the12th
카툰토피아2009. 11. 18. 15:01

회사에 야구팀이 만들어졌다.
야구 좋아라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의기투합 하더니
취재기자와 촬영기자들끼리의 야구팀을 만든거다.
유니폼도 맞춰 입고, 야구 장비도 사 들여서는 매주 일요일 모여 야구를 논단다.

부럽다.
하지만 운동에 젬병인 난 이런 데 잘 끼지 못한다.
타고난(!) 운동신경 탓에 단체 운동에 폐를 끼칠까 두려워서다.
한참 야구단 만드는 얘기에 주변이 들떠 있을 때
부러움에 한 다리 걸치고 싶어 그냥 얘길 꺼냈다.
"마스코트 같은 거라도 하나 그려드릴까요?"

그게 약속이 됐다.
마스코트보단 로고가 필요하다며 공식적으로 들어온 요청.
근데 야매로 배운 그림 실력으로
당최 야구팀 로고 같은 걸 만들어 봤어야 말이지.
아무런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은채 시간만 잡아먹다가
겨울용 야구 점퍼에 넣어야 하는 로고의 용도상
더 늦춰서는 안 되겠다 싶어 밤에 졸린 눈 비벼 가며 그려봤다. 

아니, 그렸다기 보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이미지를 모아다 꼴라쥬를 만든 셈.
그래도 처음 만들어본 것 치고 생각보단 어색하지 않아 다행이다. ㅋ 

calvin.

Posted by the12th
후일담2009. 11. 6. 12:26


 장례식이 치러졌던 5월 29일에, 난 사회팀으로 파견됐다. 국민장 특집 뉴스에 사회팀 일손이 많이 필요했던데다, 반면 이런 특집 뉴스의 경우 경제팀에선 딱히 할 일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난 이례적으로 차출을 반겼다. 경제팀 농식품 부문을 맡은 까닭에, 노짱 서거 정국에서 기자로서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려있던 참이었다. 개인적으로야 그의 삶을 마음에 새기고 그의 죽음이 지닌 뜻을 기렸지만, 기자된 입장에서도 무언가 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국민장 특집 뉴스에서의 사회팀 파견은, 나로선 직업적으로 그를 추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내게 할당된 아이템은 '시민 분향소 7일의 정리'였다. 굳이 촬영하러 나갈 일도 없었다. 국민장 기간동안 덕수궁 앞에서 찍어온 무수한 테이프들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료들을 꼼꼼이 새겨 보고 녹취를 정리하고 잘 구성하고 편집하면 될 일이었다. 난 한 박스 되는 테이프들을 순서대로 챙겨서 편집실에 틀어박혀 부지런히 그림들을 스캐닝했다.

 테이프에는 말로만 듣던 시민들의 취재 거부 현장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카메라를 내려놓은채 마이크를 켜 놓아 현장을 담아낸 그 촬영본에선, 차분한 어조로 왜 취재거부를 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흥분하지 않았고 이성을 잃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취재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쯤 되면, 도저히 그들의 의사를 거스른채 취재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다. 현장의 기자가 느꼈을 곤혹스러움과 자괴감은, 그 장면을 뒤늦게 바라보는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시민 분향소의 7일을 함축적으로, 그러면서도 의미있게 담아내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의미있는 녹취를 추리고 영상을 구성했다. 첫 문장이었던 "낮에는 국화가, 밤에는 촛불이"는, 시민분향소에 있던 시민들이 썼던 그 문구였다. 그 외에 그 현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길은 없었다. 그리고 노짱의 삶과 죽음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긴 의미를 담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서 서로를 돕는 모습은 고인이 꿈꾸던 세상을 닮았습니다"라고 시민분향소를 평가했다. 말 그대로의 "깨어있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고인은 지하에서라도 바라보고 흐뭇해 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실 나 역시 덕수궁 앞 분향소를 다녀와 봐 느껴봤지만, 현장의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분노'였다.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은 그 다음이었다. 덕수궁 돌담길 주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격문에는 분노의 감정이 압도적으로 표출돼 있었다. 난 그걸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해서, 내가 애초에 썼던 원고는 "슬픔과 안타까움, 자책감, 그리움, 먹먹함,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분노... 시민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였다. 데스크는 "정부에 대한 분노"를 거론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최종 원고에서 그 부분이 빠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클로징 멘트 역시 원래 내가 썼던 원고는 "지난 7일 동안은 사방이 막힌 서울 광장보다 차라리 이곳이 시민들의 광장이었습니다" 였다. 이 부분 역시 데스크 과정에서 한결 다듬어진 언어로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방송이 '있는 그대로의 민심'을 실어 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송의 파급 효과 때문에 그것이 '정제'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그렇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한다. 데스크와 짧은 커뮤니케이션 뒤에 난 데스크의 판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난 노짱을 향해 기자로서의 작별 인사를 건넸다. 1주일 내내 마음을 짓누르던 먹먹함, 상실감, 미안함도 그제서야 조금 걷어낼 수 있었다. 리포트 BGM에 사용한 음악의 제목처럼, 그렇게 벚꽃이 지는 것과 함께, 그 봄날은 끝이 났다.

calvin.

Posted by the12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