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09.10.19 용기와 기개 6
  2. 2009.02.27 part of the masterplan... 14
  3. 2009.01.29 파업 전야 4
카툰토피아2009. 10. 19. 22:58

 사람이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기란,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경우엔 삐딱하고 남의 장점을 좀체 인정하지 못하는 못된 성정 탓에 더욱 그러한데, 
 그랬기 때문에 이 공장에 들어와 5년동안 그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선배를 만나보지 못해 왔다.
 경래 형은 그런 내가 처음으로 '진심어린 존경심'을 마음 속에 품도록 했던 사람이다.

 그와는 <미디어포커스>의 마지막 6개월을 함께 했었는데,
 바야흐로 프로그램의 간판을 갈아치우려는 
 내외부의 불합리한 압박과 강요가 그야말로 극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 그는 젊은 기자들의 '좌장' 노릇을 하며
 막무가내였던 수뇌부를 상대하고 자칫 흔들릴 수도 있었던 내부의 중지를 바로 잡았다.

 거듭되는 강요와 회유에 그는 일관된 논리와 정당성으로 응대했는데, 
 그 때 경래 형이 보여주었던 것은 용기와 기개였다. 
 말이 좋아 용기와 기개이지, 조직 생활을 하면서 그걸 흔들림 없이 유지한다는 건
 말 그대로의 용기와 기개가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그의 용기와 기개를 닮고 싶어, 그려보았다.

 (포토샵 CS2에서 와콤 타블렛 인튜어스3로 선 작업 및 채색.)

calvin.
Posted by the12th
토막2009. 2. 27. 21:34

기자를 꿈 꾸기 시작했을 때, 난 대책 없이도 자신이 넘쳐 있었다.
참 치기 어리기도 하지. 어떤 분야에서라도 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심지어 스포츠부도
난 잘 할 수 있다고,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잡지 기자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닥 매력 없어 보였던 법조 기자도 시키면 할 거 같았다.
딱 한 분야만 빼고 말이다.

경제부 기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상해 보지 않은 내 모습이었다.
경제의 ㄱ도 모르는 놈이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개념들을 읊어대야 한다는 건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난 '숫자 공포증' 비슷한 것마저 있다. 숫자가 싫고, 경제가 싫다. 

그러니 경제팀 발령이 다 웬 날벼락이냐.
전혀 그려본 적 없는 1년동안의 내 모습에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그저 절대자가 그려놓은 어떤 거대한 계획의 한 부분인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냥 흐르는 대로 흘러 간다고 생각하며 담대해져야겠다.

calvin. 
Posted by the12th
얄라리얄라2009. 1. 29. 00:07


 기자가 어때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졌을 때, 가지가지 얘기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가령 글을 잘 써야 하고 취재를 잘 해야 하고 따위의 얘기들 말이다. 그 가운데 빠질 수 없는 한 가지는 양심이다. 기자의 양심. 윤리적으로 비교적 완벽을 기해야 하는 양심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 할 수 있는 양심이다. 그 양심이 도려내어진 기자는 한낱 글쟁이에 불과할 뿐, 더 이상 기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선 안 된다. 기자에게 양심이 없다는 것은 영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 해 8월 8일 이후 이 공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끊임없이 내 양심을 테스트하고 유린했다. 임기가 보장된 옛 사장이 별다른 잘못도 없이 정치꾼들과 다름없는 이사진에 의해 쫓겨나고 새 사장이 별다른 검증도 없이 정치질 하는 이들에 의해 본관 6층에 진입하는 과정 속에서 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뇌했다. 미디어포커스가 그 간판을 내리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면서도, 그리고 사장 교체 시기 싸움에 나섰던 동료들에 대해 징계 절차가 진행될 때에도 내 양심은 연약하게도 흔들렸다. 

 두 기자 선배의 파면과 해임 소식을 들었을 때, 난 그것이 기어이 내 양심을 겨누는 칼이라고 생각했다. '시범케이스'. "너도 까불면 얘들처럼 되는 수가 있어". 회사는 내 양심을 향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정해진 재심 절차를 거쳐 회사는 마치 큰 시혜라도 베풀 듯 두 사람의 징계를 회사에 겨우 발 정도는 담그고 있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심을 통해 번복될지언정, 그 시범케이스로서의 효과는 회사의 나머지 다른 수많은 이들에게 톡톡이 발휘하게 될 일이었다. 몸을 잔뜩 움츠러 들게 만드는 효과, 자신의 양심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효과 말이다.

 두 선배를 향한 징계의 칼날이, 기실 나와 KBS 구성원들을 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회사의 징계 발표는 그래서 더 내 몸서리를 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어이 서로 저 잘난 맛에 사느라 단결이 요원하다는 기자들을 '제작 거부'라는 단호한 결의로 내 몰았다. 자신의 양심에 거세를 요구하는 회사의 일방적인 칼부림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더 물러설 곳도, 도망갈 곳도 없는 외통수의 길에 빠져들고 나자 오히려 나아갈 길이 선명해 보인다. 고뇌하고 갈등하고 더러는 갖가지 핑계거리를 찾아 헤매던 비겁했던 내 양심도 견고해진다. 그 칼을 감히 휘두른 그들이 고마워진다.

 이번 싸움은 두 선배의 기자로서의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싸움이다. 또 양심을 지키려다 쫓겨나게 된 동료들을 무기력하게 떠나보낼 수 없는 우리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싸움은, 앞으로 공영방송사 기자로서 거리낌없이 일 할 수 있는 양심, 떳떳하고 당당한 대한민국 기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지금껏 해 보지 않은, 무척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내 양심을 시험하는 마지막 유혹이다. 하지만 끝내 우리가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을 때, 나의 양심은 한결 더 견고해져 있을 것이다. 단단해진 우리의 양심은 더욱 더 혼탁해진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자리를 키워 나갈 것이 분명하다. 

 유난스레 밤이 고요하다.

calvin.
Posted by the12th